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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Jun 08. 2021

이혼이 결혼의 실패는 아니라고

<결혼 이야기>, 노아 바움벡



 영화는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 두 부부가 서로의 장점을 얘기하면서 시작한다. 화면은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부모로서 자상한 면, 상대를 향한 배려심 같이 누가 봐도 장점인 점도 있지만, 고집이 세고 집안일이 서투른 점까지도 그들은 서로의 매력으로 본다. 스토리를 모르는 관객은 이 도입부에 속아 잔잔한 가족 영화를 기대할 수 있지만 러닝타임이 8분쯤 되었을 때 니콜이 건조한 목소리로 이제 그만하자는 말이 삽입되면서 화면은 이혼 조정 상담실에 나란히 앉은 그들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잔잔한 배경음악은 뚝 끊기고 상담실의 공허한 소리만이 맴돈다. 영화는 자, 이제부터 시작이야라고 말하듯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찰리와 니콜은 20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고 10살 남짓한 자녀가 있다. 찰리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극단의 감독이고 잡지의 표지에도 여러 번 나왔다. 천재 소리를 자주 듣기도 한다. 니콜은 LA에서 어린 나이 때부터 배우로 활동했지만 찰리와 결혼한 후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었고 아들인 헨리가 어느 정도 큰 후에도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같은 극단의 배우 활동으로 경력을 제한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여있던 갈등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기에 니콜은 이혼이라는 결정을 했고 찰리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니콜은 헨리를 데리고 LA로 가고 이혼 소송을 시작한다. <결혼 이야기>라는 제목을 비꼬듯 영화 내내 그들은 이혼을 얘기한다.


 변호사 선임부터 법정다툼까지 LA의 이혼제도를 보고 싶다면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이혼 과정은 세세하게 나오고 헨리의 양육권과 재산 분할까지, 정말이지 미혼이라면 결혼이라는 환상을 철저히 깨트릴 정도로 그들의 모습에서 결혼의 낭만은 없다. 만일 영화를 본 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냐고 물어볼 때 긍정과 부정, 두 가지의 선택지로 답을 한정한다면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서로에게 여전히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30년 남짓 산 그들이 10년 가까이 함께했기에, 이미 서로가 상대의 일부가 되었고 이혼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그런 모습이 드러난다. 집에 전기가 나갔을 때 니콜은 찰리에게 의지하고 여전히 찰리의 머리카락은 니콜의 가위질에 익숙하다.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어도 말싸움이 끝났을 때는 서로를 끌어안고 위로한다.


 이 둘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니콜의 미닫이 현관문을 서로가 반대편에서 잡고 닫을 때다. 전기가 나가 자동으로 닫히지 않는 현관문을 양쪽에서 잡고 밀면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바라본 시선은 상대에게 머물러 있지만 문이 닫히면서 교차하던 시선은 단절된다. 이 장면은 마치 한 때 가족이었던 그들이 이혼 과정을 통해 서로를 마주 보면서 관계를 끝맺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들은 반대편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천천히 문을 닫는다


 노아 바움벡 감독의 자전적인 내용이 담긴 이 영화의 말미에서 니콜과 찰리는 각자 다른 장소에서 노래를 부른다. 뮤지컬 The Comapny의 삽입곡이기도 한 니콜이 부르는 'You coud drive a person crazy'와 찰리가 부르는 'being alive'. 니콜은 노래는 답답한 남자를 내치고 후련해지자는 내용이고 찰리의 노래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건 쉽지 않지만 혼자인 것은 제대로 사는 게 아니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특히 찰리가 노래를 끝낸 뒤 내뱉는 공허한 숨소리와 멍한 시선에서 먹먹함이 감돈다.


https://youtu.be/TW8IaLXvOgk


 어쩌면 영화는 그들의 이혼 과정을 통해 10년의 결혼생활 동안 보지 못 했던 서로의 속마음을 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 건지 모른다. 세 번째 봤을 때 그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어떤 관계의 끝을 마주했을 때가 되어서야 그 관계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찰리는 니콜이 왜 그렇게 LA로 돌아가고 싶었는지, 그 열망을 늦게서야 이해했고 헤어진 뒤에야 뉴욕의 삶을 정리하고 LA로 이사 온다. 니콜 역시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시간 함께했기에 쉽지 않은 그들의 이별은 서로를 되돌아보고 그들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혼이 결혼의 실패는 아니라고, 영화는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주장한다.


 연극적인 연출로 대사와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 덕분에 넷플릭스 작품임에도 주연인 애덤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은 오스카 후보에 올랐다. 같은 해 후보로 나온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와 <주디>의 르네 젤위거의 연기가 너무도 훌륭했기에 대진운이 안 좋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그들은 수상하지 못했지만 니콜의 변호사로 열연한 로라 던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부부만이 공유할 수 있는 섬세한 감정선을 표현한 그들의 연기는 인상적인 몇몇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2시간 16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부담되고 이야기 특성상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보기에 불편할 수 있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영화다.


관련 주제로 무비 살롱을 진행했습니다.
CINEEND X 남의집 프로젝트 in 2021. 5. 31 18:30

https://naamezip.com/detail/9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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