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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Aug 27. 2021

브런치에서 군대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D.P.>, 한준희&김보통


 삶은 생각보다 부조리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여기서 포인트는 삶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먼저 경험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얘기해주려고 한다. 나랑 세 살 차이 나는 형은 당연하게도 초, 중, 고, 대학교를 나보다 먼저 들어갔기에 경고하듯 말했다. 중학교는 초딩 때와는 다르단다. 고등학교는 완전 빡세. 대학교도 은근히 선후배 군기 잡는 사람들 있다. 뭐 그런 얘기들. 대학 졸업 후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선배들이 학교에 놀러 올 때면 '학교 다닐 때가 편하다'라면서 사회생활의 치열함을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싶어서 밥 한 끼 얻어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비슷한 레퍼토리를 반복해서 듣게되니 말은 살짝 흘려들으면서 직장인이 사주는 비싼 고기를 얻어먹다. 그런 와중에 직장에 갓 들어간 한 선배는 고기를 사주면서 담담한 말투로 '대학 생활도 힘들지. 과제랑 시험에, 취업준비까지. 너희도 힘들겠다.'라고 했는데 살면서 들었던 정말 멋있는 말 중에 하나다. 언젠가 해 보고 싶었지만 백수가 되어버린 마당에 할 일이 없다. 친한 후배들은 다 졸업해버렸고.


 선험의 썰은 대부분 실제 겪었던 경험을 포장한다. 선택적 기억력 덕분에 극단적인 형태로 포장될 때가 많다. 그래서 썰로 들었던 걸 직접 경험하면 대부분 '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네'라는 생각이 든다. 삶은 생각보다 그렇게 모질지 않고 돌이켜보면 언제든 숨 쉴 여유 정도는 있었다.


 군대 이야기는 과거 악명 높은 썰의 주요 소재였다. 실제로 힘들기도 하고 겪었던 입장에서도 이 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약 2년 동안 살다오는 것이기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입대일이 정해지고 여기저기 술자리에 돌아다니면 복학생 형들은 각자의 썰을 풀었다. 대부분 X 같은 경험들이고 이후의 군생활에 도움이 되었나 돌이켜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입대 전의 두려움만 가중되었을 뿐. 참고로 나도 군생활은 힘들었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지옥 같지는 않았다. 이야깃거리로 할 만한 건 입대일에 훈련소 앞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다가 TV에서 속보로 뜬 김정일이 죽었다는 뉴스를 본 것 정도일까?


 군대 이야기는 종종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데 <블랙 호크 다운> 같은 영화는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이야기고 실제 군생활을 소재로 한 <용서받지 못한 자>는 너무 어두워서 전역한 나도 보고 나면 우울해진다. 반면 예능이지만 <진짜사나이>는 군생활을 마치 잘 꾸며 놓은 모델하우스 같이 연출해서 실제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의 흔적 같은 건 볼 수 없다.


 8월 27일, 그러니까 오늘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을 시작한 6부작 시리즈인 <D.P.>는 군대 이야기를 다루면서 지나치게 암울하거나 포장하지 않아서 좋다. 주인공인 안준호(정해인)가 내무반에서 악질 선임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탈영병을 잡는 D.P. 보직을 받고 아버지 군번 선임(전년도 같은 월 입대, 12개월 선임)인 한호열(구교환)과 콤비를 이루면서 이야기에 유머러스를 더하고 숨 쉴 여지를 준다. 군인이지만 머리를 기르고 부대 밖에서 근무를 하는 그들은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면서 군대 안에서는 병사 1에 불과하지만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한 사람의 삶의 흔적을 좇는다.


 융통성이 부족하지만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준호와 장발에다 건들거림이 몸에 배었지만 맡은 임무는 나름 성실히 수행하는 호열, 꼰대 간부 같지만 최소한의 선은 지키려는 수사단 부사관 범구(성균),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출세지향적이고 부사관을 은근히 무시하는 대위 지섭(손석구) 같은 인물들로 이야기의 개연성을 잡는다. 에피소드 별로 등장하는 탈영병들의 사연들 역시 공감할 수 있으며 뻔함에서 벗어나 예상을 조금씩 빗겨나가는 이야기 전개는 흡입력이 있다. 서사의 중심에는 암울한 준호의 가정사와 군생활이 있지만 거기에 완급조절을 하듯 호열로 인해 생성되는 유머러스한 분위기는 보는 이를 우울감에 빠트리지 않는다.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해서 말하면 군대에 갔다 온다고 개가 사람이 되어 오지 않는다. 군대에 가든 말든 개 같은 사람은 여저히 개 같고 인간적인 사람은 여전히 인간적이다. 하지만 사람이 들어가서 짐승에 가까운 행동을 할 수 있는 곳이 군대다. 준호는 탈영병 잡는 일은 하지만 탈영병 본인이나 혹은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에게서 인간성을 찾는다. 하지만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짐승과 달리 인간의 행동 요인은 가끔씩 그의 예상에 벗어나기에 준호와 호열은 탈영병들을 잡기 위해 옷도 갈아입지 않고 며칠 밤을 찜질방에서 지낸다.


 이야기에 나오는 내무 부조리와 악마 선임, 부사관과 장교의 은근한 기싸움, 세상 쓸데없는 부대 정비 같은 요소들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극 공감할 요소다. 반대로 군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도 듣기 싫었던 군대 얘기보다는 훨씬 재밌는 스토리텔링으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좋은 소재로 뻔하지 않은 인물과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는 넷플릭스 시리즈지만 결말이 빈약할 때가 많았다. 아직 3화가 남았기에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품으면서 잠시 쉬었던 정주행을 재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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