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임을 끝냈다. 21년 12월부터 시작했으니 1년 7개월 만이다. 올해 5월 이후에는 모임을 안 열었으니 1년 반 이 조금 안 되는 기간이다. 그 시간동안 100회 이상 모임을 열었고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왔다. 스무 번 넘게 오신 분도 있었다. 서울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천안에서 영화모임을 계속 열 여력이 안 되었는데도 쉽게 끝을 맺지 못 했다.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걸 시작하는 시기가 되어서야 지금 나의 여력을 냉정하게 돌이켜보게 되었고 영화 모임을 여는 천안집도 지난 달 말에 뺐으니 끝내려면 지금이 적기인 듯 했다. 인스타에 공지를 올렸고, 연이어서 오픈 카톡에도 공지를 올렸다. 다들 조용히 나갈 줄 알았는데 방문해주신 분중 더러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씀해주신 분들도 있었다. 끝내는 게 새삼 아쉬워졌다. 끝은 항상 아쉬움과 후려움이 동시에 남는다. 나는 최선을 다했던 걸까? 조금 더 노력하면 무언가를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미련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작에 집중하기로 했다.
시작한 것
독서모임 커뮤니티이자 현재 재직 중인 트레바리 파트너에 지원했고 다행스럽게도 합격하여 바로 모임을 오픈할 수 있었다. 책과 영화를 같이 본다하여 북씨(Book-Ci)라는 카테고리에 키워드(Key Word)라는 부제가 붙었다. [북씨-키워드]. 처음에는 고전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모임을 하고 싶어 [북씨-클래식]으로 하고 싶었으나 고전이 과연 매력적으로 느껴질까 걱정되어 조금 비틀었다. 모임을 하고 나면 다양한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인사이트를 얻지만 끝나고 오는 길에 무슨 대화를 했는지 정리가 안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시작과 끝을 한 단어로 하는 건 정리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클럽이다. 영화는 애초에 생각했던대로 고전 위주로 <졸업>을 골랐으며 책은 상대적으로 쉽게 읽히는 <노르웨이 숲>으로 첫 책으로 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영화는 고전, 책은 잘 읽히는 것으로 했으나 영화가 고전이 아닌 경우, 책을 잘 안 읽혀도 메시지가 깊은 걸로 했다.
16명을 모집해야 하는데 한 달 전에 오픈하고 2주가 지나도 한 사람도 들어오지 않았다. 과연 열리려나 걱정하고 기획 셀에서 다양한 프로모션을 했지만 폐지/순연을 결정하는 열흘 전까지도 좀처럼 모이지 않았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딱 일주일 전 주말에 사람이 모이더니 급기야 클럽 순위에서도 1위를 했다. 다행히 클럽에 사람이 다 찼고 첫 번째 모임까지 열 수 있었다. 첫 번째 모임의 책인 <노르웨이의 숲>은 시간이 지난 뒤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중학생 때 이후로 약 20년 만에 다시 읽은 책은 <상실의 시대>에서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인 개정판이 나왔고 당시의 다양한 성교 장면으로 자극적이었던 내용은 30대인 지금의 나에게 무덤덤하게 다가왔다. 오히려 책 속에 드러난 다양한 죽음들이 인상적이었다.
첫 모임이라 다들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일종의 모더레이터 역할을 하는 파트너인 나는 장작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해야했지만 마치 바람을 불어야지만 불이 붙는 것처럼 내가 계속해서 질문을 하며 대화를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돌게 할 수 없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다음에는 좀 더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가는 방법을 고민해볼 일이다.
호의와 적선
살면서 뻔뻔하고 염치 없기 싫어 누군가의 호의를 올곧게 받아들이지 못한 때가 많았다. 아쉬운 게 많은 삶이라 호의가 마치 빚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생 때 그런 게 심했는데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선배가 술을 사줘도 최저 시급의 알바비를 받는 주제에 술값에 보태겠다고 기어코 만원 지폐 한두 장씩 자리에 놓고가곤 했다. 예전에 드라마나 만화 같은 곳에서 돈 없는 애들이 눈치 없이 빌 붙어 먹는 캐릭터들이 있었는데 현실고증이 충분히 된 걸까 싶었다. 현실의 나는 오히려 부족했기에 남들에게 티내지 않으려고 어딜가든 빚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호의도 올곧이 받아들이지 못 했다.
그런 것이 30대에 들어서 돈도 벌고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기게 되니 누군가의 호의를 올곧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언제든 갚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거기다 다른 이들에게 간간이 호의를 베풀 수도 있게 되었다. 취직이 늦은 친구에게 밥과 술을 사주거나,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소한 재능기부를 한다거나 말이다. 하지만 1년이 조금 넘게 일을 쉬면서 이래저래 경제적으로 아쉬워지니 다시 누군가의 호의가 부담되기 시작한다. 그 호의가 빚처럼 느껴지니 내 삶의 여유가 퍽 없어졌다는 걸 느낀다.
호의가 적선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상대가 베푼 호의에 공감과 이해가 결여되었을 때다. 바닥에 던진 돈도 돈이지만 그 돈을 주울 때 감사함보다 내 처지에 대한 비루함이 더 크다. 손에서 손으로 건네는 천 원과 바닥에 던져진 만 원, 과연 어떤 것에 더 감사를 느낄까? 그렇기에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일이 생길 때 그의 처지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그에게 비루함보다는 감사함과 안도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그런 호의를 베풀어야겠다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