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하게 비장애인인 루비(CODA, Children Of Deaf Adults)와 그녀의 가족을 다룬 <코다>의 중반부까지는 청각장애라는 소재를 부수적으로 다룬 하이틴 성장 영화라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후반부에 이어진 세 개의 장면은 이 영화가 청각장애인들과 그 가족을 대하는 자세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스토리 플랫폼으로서 영화가 드라마나 소설에 비해 가지는 차별점은 간접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인 현 시점에서 극장이라는 공간이 아직까지 차별화를 가지는 부분이다. 시야를 채운 커다란 스크린과 다채널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음향은 관객의 2시간을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시각과 청각, 다가오는 자극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들에게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주인공인 루비(에밀리아 존스)의 노래에 귀호강을 거듭하던 와중에 음소거가 되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간은 2분 정도였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와중에 관객들은 잠시 혼란에 빠진다. 극장에서 일했다면 음향 사고라 생각하고 영사실로 달려갔을 그 시간은 의도에 따른 연출이었고 이때부터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달라졌다. 영화는 소리가 없을 때 가장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빛났던 세 장면을 조명했다.
1. 교내 음악회에서 루비의 노래를 듣는 가족들
루비의 가창력을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이 장면에 흐르는 정서는 감동이나 환희가 아닌 불편함이다. 음악회에 방문한 그녀의 청각장애인 가족에게 이 장소는 그저 불편하고 답답하다. 중간 좌석에 앉은 그들은 사회자와 합창단의 입모양이 보이지 않아 답답해하고 노래가 끝났을 때 박수를 치는 타이밍은 옆에 앉은 사람을 따라 하기에 한 박자가 늦다. 자연스럽게 공연에서 관심이 멀어지고 아버지인 프랭크(트로이 코처)와 어머니인 재키(말리 매트린)는 저녁 식사에 무엇을 먹을지 얘기한다. 그런 와중에 공연의 클라이막스인 루비의 듀엣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 카메라는 루비의 모습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공연을 바라보는 그녀의 가족들의 시점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잠시 영화에서 소리가 사라진다.
2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카메라는 프랭크와 재키의 모습을 비춘다. 그들은 딸이 많은 관객들의 주목을 받는 그 시간 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어떤 이는 어깨를 들썩거리고 또 어떤 이는 몰입한 듯 흥얼거린다. 심지어 어떤 관객은 두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렇게 딸의 노래를 간접적으로 접했던 그들은 공연이 끝났을 때 다른 관객이 일어나서 박수를 치는 걸 보고 한 박자 늦게 일어나 기쁜 얼굴로 소리가 나지 않는 반짝이 박수를 하기 위해 양손을 흔든다. 영화가 주목한 건 음악의 감동이 아닌 감동을 공유할 수 없는 불편함이었다.
2. 루비의 노래를 손으로 듣는 프랭크
이어진 장면에서 집에 돌아온 루비와 가족들 중 프랭크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잠시 밖에 있다 들어간다고 한다. 픽업트럭에 걸터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그의 옆에 루비가 앉고 프랭크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루비가 망설이듯 아카펠라로 노래를 부르자 프랭크는 손바닥을 루비의 목에 대며 진동을 느낀다. 그리고 진동을 더 강하게 느끼기 위해 크게 불러달라고 하자 루비의 목소리는 시골마을의 고요한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장면 묘사만으로 감동은 충분히 전달된다. 청각장애인에게 손은 발화를 위한 중요한 의사 수단이다. 프랭크가 손이 루비의 목을 감싸안는 건 루비의 노래를 목의 울림으로 간접적으로 느끼기 위해서이며 동시에 노래를 좋아하는 둔감했던 아버지가 딸을 이해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다. 그 표현이 어떠한 설명 없이 노래를 부르는 루비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을 감고 손의 감각에 집중하는 프랭크의 모습에 무반주 노래에 관객들의 울음소리로 배경음이 채워진다.
3. 음대 입시 실기시험에서 수화로 노래를 부르는 루비
실기시험장에서 긴장으로 목소리를 떨던 루비가 2층에 몰래 들어와 자신을 지켜보는 가족을 위해 수화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비장애인이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청각장애인 가족에 둘러싸여 지낸 루비에게 수화는 제1 언어에 가깝다. 외국어를 배운 사람이 아무리 유창하게 해도 원초적인 감정의 표현은 모국어로 하듯 그녀의 입시를 도와주는 음악교사 베르나르도가 노래를 부를 때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이 아닌 수화로 표현한다. 그녀의 내면을 제일 잘 전달할 수 언어인 수화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루비의 모습은 수화를 사용하는 그녀의 가족과 음성언어로 소통하는 세상 둘 다 연결되어 있는 그녀 자신을 표현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더없이 어울리는 장면이다.
그녀가 부른 'Both Sides Now'의 가사 역시 같은 맥락이다. 농인과 비농인의 삶을 동시에 살아가는 그녀가 삶을 다채로운 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줬다는 깨달음이 담겼다. 이는 원작인 <미라클 벨리에>에서 주인공이 부르던 노래가 가족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를 표현함으로써 가족에서 벗어나는 자립을 강조했다면 <코다>에서 루비는 지금까지 가족과 함께한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욕이 담긴 영화들은 가끔 지나치게 많은 걸 보여주려다 관객에게 아무런 감흥 없이 피로감만 준다. 훌륭한 영화들은 가끔씩 보여주지 않는 미학을 펼치기도 한다. <코다>의 경우에는 그게 들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들리지 않는 순간, 이 영화는 무엇보다 많은 것을 들려준다.
극장에서 일할 때 접했던 장애인 관객 중에는 청각장애인 관객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마주치는 그들 중 어떤 이는 단정한 차림이었으며 또 어떤 이는 타투에 금발 머리를 하기도 했다. 직접 눈으로 마주치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보는 영화는 대부분 자막이 있는 외화였으며 손짓으로 주고받는 그들의 대화가 눈앞에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재밌는 영화를 봤을 때 흥분에 빠져 나누는 우리의 대화와 다르지 않았다. 사실 그들이 아닌데 말이다. 그저 우리가 보지 못 했던 우리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