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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May 08. 2022

항상 엔진을 켜둘께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달려갈게요

 지난번에 데이트 비용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쓰면서 어쩌다 보니 동승자에게 기름값을 구걸하는 결론으로 끝맺었다. 그럼에도 반응이 좋았는지 일람이 자주 뜨길래 다시 읽어보니 연애 글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무미건조하고 계산적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낭만 가득한 연애 글을 써볼까 한다. 박태준 웹툰에 나오는 그 낭만 말고.


 대부분이 그럴 테지만 나는 자가용 데이트를 할 때 웬만하면 집 앞까지 데리러 가고 끝난 뒤에도 데려다주는 편이다. 상대가 편하길 바라는 마음이 첫 번째고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좋아하는 게 두 번째다. 배려심보다 내 욕심을 앞세워서 말하면 두 번째 이유가 더 크다. 나누는 대화도 좋고 대화 사이의 침묵도 좋아한다. 심야 라디오 DJ 역할을 자처하듯 정지 신호 때마다 신청곡을 받거나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트는 것도 좋아한다. 평소에는 답답한 빨간색 신호등이 그때는 설렘의 신호가 된다. 전방 주시 의무에서 벗어나 옆사람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상대의 얼굴은 달리고 있는 도로의 조명 빛에 따라 다채로운 색으로 빛난다. 그 빛나는 잔상들은 기억 한켠에 머물러 있다가 불현듯 떠오른다.


 동승자, 특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의 운전은 노동보다는 즐거움에 가깝다. 내 차는 아쉽게도 자율주행 기능까지는 없지만 엑셀과 브레이크를 적당한 타이밍에 밟고 핸들을 돌리는 수고로 원하는 목적지에 안전하게 데려다 줄 정도는 된다. 그 시간 동안 1평 남짓한 우리의 공간을 다양한 주제의 대화로 채운다. 대부분은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로 시작하고 다음 달에 결혼하는 친구 이야기, 진상을 부리는 직장 상사 같은 스몰토크로 빌드업을 한다. 대화가 잘 풀리는 날에는 속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오직 둘만 있는 공간이라 가능한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올해 봤던 영화 중 <드라이브 마이 카>가 유독 강렬하게 남은 건 그 감성을 건드렸기 때문일 게다.


 나에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각오와 비슷하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건 자동차와 기름, 그리고 달려갈 수 있는 시간이다. 자동차와 기름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고 대부분 시간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 그 외에도 운전에 집중할 수 있는 집중력과 졸지 않을 체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운전하는 동안 상대가 전화만 해준다면 잠 기운은 달아나고 상대의 목소리에 설레하며 엑셀을 밟는다. 가끔씩 목소리에 홀려 과속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거리까지 나는 달려갈 수 있을까? 딱히 정해두지 않았지만 한 시간 이내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고, 두 시간은 조금 벅차지만 망설임을 들키지 않은 채 달려갈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천안에서는 차가 막히지 않는 심야시간 기준으로 서울과 인천, 경기도, 강원도 춘천, 전라도 전주, 그리고 가까운 서해 바다 정도일 게다. 아직은 시도해 본 적 없지만 그냥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을 듣는다면 동해든 서해든 그날 바로 달려가 보는 경험도 해보고 싶다.


 중고로 샀지만 별 문제 없이 잘 굴러가던 내 차가 작년 겨울 초입 즈음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다. 공업사를 두 번이나 간 끝에 배터리 교체 후 문제를 해결했다. 이는 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엔진을 켜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뜻한다.


<항상 엔진을 켜둘께>, 델리 스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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