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soon Apr 20. 2022

내 차에 기름 좀 넣어주오

데이트 비용에 관한 고찰

 30대는 20대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관념이 더 확고해진 상태라 친구들끼리 데이트 비용에 관해 얘기를 나누면 각자의 기준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다 보니 다양한 친구와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되서 자체적인 통계가 생겼다. 대부분 연애 초반에는 남자가 더 많이 내는 편이다. 하지만 연애 중반부(약 100일 전후)에 들어서면 어느 정도 분담이 된다. 5대 5를 딱 맞춰서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나눠서 계산하는데 남자가 6, 여자가 4에서 혹은 7대 3 정도가 일반적이다. 대략적으론 이렇지만 각자의 수입, 소비성향, 나이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만일 둘 중 한 사람이 일정한 수익이 없는 경우 (고시생, 프리랜서 등) 데이트 비용은 한쪽으로 편중될 확률이 높다.


 물론 재밌는 의견도 더러 있는데, 20대 후반 여자인 친구 한 명은 소개팅할 때 상대방이 별로면 무조건 자기가 밥을 산다고 한다. 상대에게 빚진 느낌 없이 빨리 끝내고 싶어서란다. 반면 30대 초반 남자인 한 친구는 주로 자기가 사는 걸 선호하는데 뭔가 관계의 주도권을 가진 듯한 느낌이 좋아서란다. 데이트 통장을 쓰는 경우도 꽤 있었다. 전 회사의 친한 30대 중반 남자 선배의 경우 데이트 통장을 사용했는데, 여자친구가 회계 쪽 일을 하던 사람이라 장거리 연애 시, 서로를 만나러 가는데 드는 교통비까지 정산해준다고 했을 때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나의 경우 역시 일반적인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처음에는 내가 좀 더 내다가 6대 4정도의 비율로 나뉘어서 낸다. 예외적인 경우도 더러 있어서 한 때 회사 사정으로 유급휴직을 하는 동안 급여의 70%만 받은 적 있는데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가 이를 의식해서 좀 더 낸 적도 있었고, 반대로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여자친구를 만날 시절에는 8대 2 정도로 내가 많이 냈던 것 같다. 내가 더 많이 내는 것에 불만인 적은 없었고 오히려 여행 갈 때 숙소 비용 같은 건 절반씩 분담하려는 여자친구를 보면서 소소한 감동을 느꼈다. 지금까지 연애를 할 때 경제적인 문제로 크게 아쉬운 적은 없었다.


 나는 경제적인 관념 역시 그 사람의 매력을 따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한 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된장녀, 김치녀 같은 말들은 혐오감만 조성하는 듯해서 선호하지 않지만 데이트 비용을 전혀 안 내려고 하는 사람은 나에게 호감을 느껴서라기 보다는 배가 고프거나 술을 마시고 싶어서 날 만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돈을 내는 것 자체보다도 '나는 너와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표현으로서 지갑을 여는 행위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자본주의적 사고인가 싶지만 현대 사회에서 돈은 중요한 가치 판단의 한 기준이니 어쩔 수 없다.



 최근에는 운전하면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문득 기름값 얘기가 나왔다. 자차를 몬지도 벌써 4년 차에 접어든 지금 데이트 시 차는 필수적이다. 편의성은 물론이고 코시국에는 노마스크로 있을 수 있는 몇 없는 공간이다. 차는 이동수단이자 프라이빗한 공간이기도 해서 나누는 대화에는 진솔함이 곧잘 담기기에 차에서 나누는 대화를 좋아한다. 이제는 누군가와 썸을 탈 때면 같이 드라이브를 하거나 술자리를 갖는 게 필수 코스처럼 되었다. 관계 초반에 솔직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차 안의 대화는 서로가 시선을 마주 보지 않기에 상대를 덜 의식하고 속내를 터 놓을 수 있어서 좋아한다.


 데이트를 하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소에 들를 때 가끔씩 옆자리 상대가 기름값을 내준다는 말을 할 때가 있는데 이때 나는 살짝 뭉클해진다. 나에게 있어 대화 상대가 있을 때의 운전은 노동보다는 데이트의 즐거움 중 하나지만 그래도 운전의 노고를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서다. 이 말을 했을 때 친구 역시 많은 공감을 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이 어느 영화에 나오는지는 몰라도 이 말 자체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 시대에 당신을 위한 운전이 내 호의임을 인정 받는 것 같아 기름값을 내준다는 말은 더 없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물론 요즘 기름값은 소고기 값만큼 비 건 알고 있지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연인과 주유소에 같이 갈 일이 있으면 가끔씩 지갑을 한 번 펴주세요. 그러면 상대는 당신의 호감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혹은 운전해줘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가 당신을 향한 그의 호감을 더욱 확고하게 할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에게도 풔킹스페셜한 누군가가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