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
스토너는 <스토너>라는 책의 주인공이다. 농가에서 태어나 농업대학으로 진학했지만 2학년 때 들은 영문학개론 수업을 계기로 진로를 바꿔 미주리 대학 영문학 교수가 되었다. 4년 간 잠시 거치는 통과점에 불과하리라 생각했던 대학은 그의 종착점이 되었다. 1891년에 태어난 그는 세상을 떠난 해인 1956년까지 교단에 섰으며 직위는 조교수에 머물렀다.
스토너는 그의 이름(Stoner)과 같이 돌 같은 사람이다. 산속에 틀어박힌 돌과 같이 자신의 서재, 연구실에 틀어박혀 문헌을 읽는 것으로 그의 삶 대부분을 요약할 수 있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든 사나운 비가 내리든 묵묵히 받아내는 돌과 같이 삶의 흐름에서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았다. 몇 가지 예외적인 일이 있다면 농업종사자인 부모를 따라 농업을 전공하지 않고 영문학을 전공하여 교수가 된 것, 그의 아내 이디스에게 청혼한 것, 같은 대학 강사 드리스콜과 사랑에 빠진 것 정도다.
스토너의 부모는 그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농부가 되지 않은 것에 실망했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들이 떠난 뒤에도 미주리의 한 시골 농장에서 살아 왔던 방식을 유지하며 때가 되었을 때 죽음을 맞이했다.
스토너의 순간적인 끌림으로 세인트루이스에서 온 이디스에게 반해 청혼을 했다. 하지만 아내로서의 이디스는 결혼 생활 내내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그를 존중하지 않았다. 때로는 증오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강박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기에 그가 죽는 날까지 옆에 있었다.
스토너는 이디스와의 사이에서 딸 그레이스를 낳았다. 그레이스는 어머니인 이디스보다 스토너의 성격을 더 닮았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다. 그녀의 양육은 처음에는 순전히 스토너의 몫이었다. 충동적으로 아이를 낳은 뒤 관심을 끊은 이디스에게 어떠한 힐난도 없이 스토너는 학교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를 돌봤다. 그러나 다시 시작된 이디스의 변덕으로 둘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며 자란 그레이스는 잘 모르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고, 결혼 후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그래도 스토너는 비록 술일 지라도 딸이 삶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생겨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친정에 온 그녀에게 본인은 잘 마시지 않는 술을 내줬다.
스토너의 친구이자 미주리 대학 문과대 학장인 고든 핀치는 대학원생 시절부터 긴 시간 그와 함께 했다. 친구와 직장 상사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했다. 그는 스토너가 죽기 직전까지 함께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죽기 직전 스토너는 정신적인 혼란을 일으켜 마지막으로 본 친구에게 '데이브'라고 불렀다. 데이브 매스터스는 둘의 대학원 동기로 1차 대전 때 군에 지원했다가 참전한 첫 전투인 프랑스에서 전사했다. 30년을 넘게 함께 한 친구로부터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때, 고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토너의 동료이자 영문학 학장인 로맥스는 스토너를 끔찍이 싫어했다. 그러나 스토너는 로맥스도, 로맥스가 보이는 증오에도 관심이 없었다.
스토너는 같은 대학 강사이자 대학원생인 캐서린 드리스콜과 두 번째 사랑을 했다. 그 관계는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녀의 집에서 그들은 만났으며 관계를 갖고, 또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스토너는 이디스와 결혼했지만 드리스콜과는 연애를 했다. 하나는 결과로서의 사랑, 하나는 과정으로서의 사랑이었다. 허나 둘의 관계는 다른 이들에겐 그저 불륜이었다. 학교에 소문이 났고 그들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캐서린은 떠났고 스토너는 따라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그녀가 쓴 책을 읽은 스토너는 첫 장에 'W. S에게'라고 적힌 것을 보았다. 스토너의 이름(first name)은 윌리엄(William)이다.
책을 통해 스토너의 삶을 따라간 나는 답답했다. 페이지를 넘기면 뒤에 무언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는 뒷페이지가 얇아질 수록 허무함으로 덮이고 있었다. 주인공에게 기대하는 행동을 그는 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갈 뿐인 그의 생애에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아직은 무언가 있을 것 같은 남은 나의 삶도 실제로는 그와 별 차이 없을까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경주의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앉아 그의 임종을 함께하며 책을 덮었다. 임종의 순간 그는 스스로가 삶에 무엇을 기대했는지 자문했다. 답은 내리지 않은 채 자신이 쓴 단 한 권의 책을 어루만지며 눈을 감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남은 건 감동이 아닌 먹먹함이었다. 먹먹함은 허무함과 안타까움과 아주 조금의 벅차오름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 먹먹함에 결론을 내야 했다. 그래야 책을 덮고 울렁거리는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출생과 결혼, 죽음에 이르는 짧지 않은 삶. 그의 생애는 역사를 품었지만 역사는 그를 품지 않았다. 시간이라는 커다란 흐름 속 미세한 줄기와 같은 삶에서 생애의 의미는 오직 그만의 것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그 의미는 공감의 대상이 될 순 없었다. 시간을 들여 쥐어짜듯 결론을 냈다. 뱉어 놓으니 썩 나쁘지 않았다.
스토너는 내 안에 있는 우리의 원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