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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Nov 15. 2016

친구의 썸남

 형 친구는 언제 소개해 줄 거야?


 서울에 올 일 있으면 내 방에서 묵곤 하는 동네 동생 S는 매번 곤란한 말을 꺼낸다.


 들어주기 쉽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내가 친구가 얼마 없다는 것. 또 하나는 내 친구들도 나랑 성향이 비슷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호기심보다 불편함을 더 크게 느낀다는 점이다. 레스토랑에서 접시닦이 하다가 만난 녀석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내 친구들 중에서는 조금 별난 부류다.


 실제로 S 자신도 사람 소개하는 걸 좋아해 나한테 자기 친구를 자주 소개해줬다. 밥 먹을 때 부르거나 술자리에 합석하는 식으로. 그 상황을 즐기진 않았지만 제 나름 신경 써서 그런 자리를 만들어준 녀석을 무안하지 않게 신경썼다.


 성향이 너무 달라서 같이 지내기 불편한 점도 있지만 서울에 올 일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미리 연락하는 녀석을 보면 평소 인간관계에 있어서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이런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며 말해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S는 청주에 살면서 서울 생활 5년이 넘어가는 나보다 서울에 아는 사람이 많다.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늘 그렇듯 S는 서울에 올 일 있다고 미리 연락을 했고 토요일에 내 방에 묵으면서 같이 술 한 잔 하기로 했다. 전화를 끊은 뒤 주기적으로 내어지는 과제물을 하듯 부를 만한 친구를 찾아봤다.


 연락 안 하는 사람은 숨겨 버릇하기에 카톡 친구 목록에 20명 남짓 남은 프로필 사진을 훑어보았다. 프로필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반이었고 나머지 반 중의 반은 음식 사진. 참고로 나는 요즘 읽는 책의 표지. 그러던 중 입모양을 이상하게 하고 셀카를 찍은 H가 눈에 들어왔다. H도 내 친구치고는 제법 사교적이고 둥글둥글 한 성격이다. 마냥 밝은 성격이라기보다 '노력형 긍정인'이라고 할까. 그 점이 오히려 좋았다. 마냥 밝은 사람은 피곤하다. S 얘기를 꺼냈을 때 자기를 부르라고 한 적도 있다.


 물어보니 H는 알겠다고 했다. 이걸로 S에게 친구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아는 사람을 소개하는 게 나도 처음은 아닌 게 작년 즈음에 녀석을 엄마가 일하는 식당으로 데려갔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생전 안 하면서 '친구 없니?'라고 진지한 얼굴로 걱정한 적이 있으니까. 나중에 녀석은 친구 대신 엄마를 소개하는 스물일곱 살 때문에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자기 집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아부지가 형 보고 싶어 한다면서. 알겠다고 했지만 별로 생각 없었다, 친구든 여친이든 부모님 만나는 건 불편하다.




 오전에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저녁이 되자 땅바닥을 촘촘히 적시고 있었다. 새내기 시절 '비 오는 날엔 파전'이라고 주문을 외듯 말하고 다녔다. 우리 학교 근처는 홍대나 신촌같이 다른 데 사는 애들이 놀러 올 만큼 상권이 발달하지 않았지만 딱 하나 유명한 게 있다면 '파전 거리'였다. 어디 가서 회기에 산다고 말하면 대부분 "아, 거기 파전 거리 유명하죠?"라는 말을 한 번씩 한다. 요즈음에는 일 년에 서너 번이지만 새내기 때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갔었다. "파전에 막걸리?" "콜!!!" 이런 식으로. 그때 같이 파전을 먹었던 애들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파전에 막걸리 어떠냐?"

"좋지, 형."


 S와 나는 그렇게 파전집으로 갔다. H로 부터는 세 시 즈음에 톡이 왔는데 썸남한테 갑자기 연락이 와서 그리로 간단다. 읽고 답장은 안 했다. 직장인에게 주말은 소중한 시간이란 건 이해하지만. S도 실망했지만 으레 그렇듯 별로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말버릇처럼 "그래, 여자 없는 외로운 사람들끼리 놀자고!" 씩씩하게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맞장구치고 싶진 않았다.


 분명 중간고사 기간일 텐데 파전집에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대부분 커플이었고. 남남은 우리 둘 뿐이었다. 파전집이 원래 이런 분위기였나? S와 '왜 우리는 여자가 없는 걸까'라는 없는 애들끼리 의논해봤자 의미 없는 대화를 대충 이어가다가 H에게 안 한 답장이 신경 쓰이고 S의 아쉬움도 달래줄 겸 전화기를 들었다. H는 전화를 받자마자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 오빠 얘기 좀 들어봐, 오늘 뭔 일이 있었는지 알아?"


 "몰라."

 "하여튼 말본새 하고는... 암튼 들어봐."

 "응, 말해봐."


 내용인즉슨 썸남과 데이트 중에 있었던 일인데, 썸남의 차를 타고 가다가 앞 쪽에 스마트폰을 뒀는데 썸남이 그걸 보았더란다. 몰래 본 건 아니고 자기 눈 앞에서. 돌려 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너 뭔가 나한테 숨기는 거 있는 거 아냐?'라는 식으로 안 돌려주고 훑어봤다고 했다. 거기까지 듣고 내 머리 속에선 이미 아웃카운트가 세 번 울렸지만 그녀는 아직 풀리지 않은 감정을 내뱉고 있었다.


 경찰이라는 그녀의 썸남에 대해서는 이 전에도 종종 얘기는 들었지만 사실 별 관심 없었다. 거기다 이번에 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앞으로 절대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동시에 신기하기도 했다. 어떻게 상대가 싫다고 하는 행동을 그렇게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걸까.


 그녀에겐 스마트폰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민감한 일이었고(전남친 사진 남은 것도 신경 쓰였고) 아마도 그에겐 그게 별 일 아니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의 폰을 달라고 하면 거리낌 없이 줄 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이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적인 영역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싫다'라고 한 행동을 억지로 한 것은 별개의 문제다.


 때때로 나에게 아무렇지 않은 게 상대에게는 민감한 부분일 수 있다는 것. 이해는 할 수 없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다. 싫어하는 상대의 반응을 봤더라면 더더욱. 그는 그걸 몰랐을 테고 나에게는 그게 놀라웠다. 화성인을 처음 본 놀라움과 비슷한 정도였다.


 문제는 상식과 편견을 구분하지 못한 데에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서로의 스마트폰을 보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편견을 그는 상식이라고 여긴 것 아닐까. 상식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사람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에 행동에 거리낌이 없어진다. 편견은 그 자체로 나쁜 것도 아니고 경험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겐 불가피하지만 자기가 갖고 있는 게 편견인지 상식인지 구분을 못 할 때 누군가에게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다.


 그녀는 말해놓고 풀렸는지 그때서야 왜 전화했는지 물어봤다. 전화에 열중했던 나는 그제야 눈 앞의 S가 보였다. 본의 아니게 상대를 앞에 두고 전화기를 놓지 않는 무례한 행동을 해 버렸다. S는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큼직한 덩치에 비해 눈 앞의 테이블은 조그매 보였다.


 "야, 너 산적같이 생긴 애가 취향이랬지? 지난번에도 널찍한 남자 등짝 사진만 열 개 넘게 보냈고."

 "응, 갑자기 왜?"


 참고로 난 그 보답으로 정유미와 닮은 여자애 사진을 마구 보냈다.


 "전에 말했던 동네 동생, 지리산에 사는 산적같이 생겼는데 통화 좀 할래?"

 "음... 잠깐만 기다려봐."


 3분 넘게 아무 말 없기에 끊을까 하던 차에 그녀는 다시 말을 내뱉었다.


 "영상통화로 바꿔, 오빠."

 "... 알았다."


 S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기다리는 동안 할 게 없어 주위를 둘러보다가 맞은편에 앉은 커플이 보였다. 한창 싸우고 있었다. 남자는 억울하단 표정을 짓고 여자는 팔짱을 낀 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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