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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May 22. 2017

설경구의 눈과 임시완의 입술

<불한당>, 변성현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의견을 표할 때 중립은 안전하지만 비겁한 선택이 되기 쉽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 전략으로서 중립을 선택하는 이유는 객관적인(으로 보이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일리 있게 받아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립은 편리한 전략이다.



Good


- 경찰의 잠입 수사, 조직 내의 권력다툼이라는 뻔한 설정에서 돋보이는 건 이야기의 주체인 두 사람의 내면과 관계에 집중한 부분이다. 이는 유사한 내용을 다루는 <신세계>와 <무간도>가 뒤바뀐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을 둘러싼 상황에 집중했다는 점과 차별성을 가진다. 외부보다 철저히 내면을 파고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조직 밑바닥에서 시작한 덕분에 배신과 보복이 일상인 한재호(설경구)와 잠입한 경찰이지만 정에 흔들리는 젊고 열정적인 조현수(임시완)란 캐릭터가 그리는 관계는 분명 매력적이다. 한재호는 조현수의 순수함과 열정에, 조현수는 한재호의 인간적인 면모에 끌리지만 경찰과 조폭이라는 각자의 위치 때문에 긴장감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관계에서의 끌림과 긴장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건 일반적인 멜로 영화 이상의 감정선이었다. 칸에서 주목한 것도 이 부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 액션 역시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다. 복잡한 상황과 세밀한 심리묘사 가운데 통쾌한 액션은 영화의 완급을 조절한다. 폭력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듯한 한재호의 광기 어린 액션은 <배테랑>에서 황정민이 보여준 느낌 그 이상이다. 액션을 돋보이게 하는 능동적인 카메라 구도는 역동적이고 능숙하다. 항만 창고에서 벌인 액션신은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한동안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았다.



- 교도소에서의 과거와 조직에서의 현재. 교차 편집은 두 인물의 심리 변화를 능동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도구다. 심리묘사가 포인트인 영화에서 순차적인 시간 구성을 따라갈 때 오는 지루함을 연출로 극복하려 한 포인트는 분명 효과를 발휘했다.



Bad


- 주연 외의 주변 인물의 매력이 부족했다. 우선 밑도 끝도 없이 나쁜 경찰들. 은어와 욕설 투성이 대사를 내뱉는 수사팀장 천인숙(전혜진)은 기존의 남성 경찰 캐릭터 몇 명을 짜깁기 한 것 같다. 암흑가 보스 전문 배우인 이경영도 <신세계>, <내부자들>에서 나온 모습의 변주에 지나지 않았다. 그 외의 캐릭터들도 평면적인 NPC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김희원이 맡은 고병갑 캐릭터가 단순한 넘버 쓰리 역을 넘어 얄팍한 권력욕과 순박함이 잘 섞여 감초 같은 역할을 했다는 점은 위안이다.


- 이야기를 잇는 연결고리가 아쉽다. 조현수가 교도소 잠입 수사라는 희생적인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에서는 시종일관 그를 압박한다. 그가 잠입 수사를 한 동기인 어머니가 사고로 죽었을 때도 수사팀장은 뜬금없이 경찰 기록을 지우고 전과자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한다. 당근을 보여주기만 하다가 주머니에 넣고 채찍으로 계속 때리는 형국이다. 마치 그가 배신을 하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 <미생>에서 발화했다고 생각한 임시완의 연기는 <불한당>에서는 그 꽃을 피우지 못했다. 교도소에 수감된 양아치 범죄자를 연기하는 경찰의 역할인 그는 두 역할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필요한 연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열정 가득한 젊은 경찰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조직 행동대장도 될 수 없었다.

 




결국 남은 것은...

설경구의 눈과 임시완의 입술이다.


 설경구는 눈빛 하나로 광기와 회한을 동시에 담았다. 그러나 임시완은 거친 말을 내뱉지만 그 말을 내뱉는 입은 여전히 배역을 온전히 소화 못하고 곱상한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 했다. 관계와 내면에 집중하는 느와르라는 가능성을 남겼지만 이를 위한 정교한 스토리라인과 개연성은 아쉽다.


※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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