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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Jun 11. 2017

전하고 싶은 마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목소리의 형태>, 야마다 나오코


※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부디 저와 이야기할 때는
이 노트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귀가 들리지 않아요.




 똑같이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쇼짱'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이시다 쇼야(石田将也)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매일 즐거운 일을 찾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강물에 뛰어들고 친구들과 레슬링을 하고 동네 개한테 싸움을 걸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그의 기행을 보고 즐거워 했다. 그도 그런 주목을 즐겼다. 니시미야 쇼코(西宮硝子)는 그런 그에게 주목을 끌 수 있는 대상에 불과했다. 전학 첫 날 담임 선생과 교실 앞에 선 그녀는 노트를 펼쳤다. "부디 저와 이야기할 때는 이 노트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귀가 들리지 않아요". 쇼야는 그 순간 소리를 질렀다. 즐거움의 비명이었다. 처음에는 관찰했다. 쇼코는 반 아이들에 녹아드는 것 같았다. 노트를 통한 대화는 이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그런 노트가 여러 권 쌓일 터였다. 그러나 갈등은 노트 한 권이 채워지기 전에 시작되었다. 초등학생에 불과한 아이들은 그녀와의 소통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른 존재에 대한 그들의 마음은 배려와 호기심에서 '불편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순간 쇼야의 장난이 시작되었다. 잘 들리지 않는 그녀의 발음을 흉내내고, 칠판에 그녀를 놀리는 글을 쓰고,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쇼코는 그런 그에게 화내지 않고 심지어 웃기까지 했다. 악이 오른 쇼야의 장난은 점점 심해졌다. 같이 웃고 즐기던 반 아이들도 그가 그녀의 보청기를 떼서 집어 던지는 장난을 시작하자 슬슬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값비싼 보청기가 계속 분실되고 고장나는 일이 잦아지자 쇼코의 엄마는 학교에 문제를 제기했다. 범인을 찾기 시작했고 모두들 한 사람만을 지목했다. 같이 동조하거나 옆에서 웃고 즐기던 아이들도 선생님의 호통에 오직 쇼야만이 잘못했다고 했다. 선생님을 필두로 공개재판이 시작되었다. 곧이어 쇼야가 쇼코에게 했던 그 장난은 그대로 쇼야에게 돌아왔다. 물가에 던져진 책가방 속 물건을 줍던 쇼야는 그 속에서 쇼코의 노트를 발견했다. 사실 괴롭힘의 대상이 쇼야로 바뀐게 아니라 한 명 늘어난 것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쇼코도 괴롭히고 있었다. 교실로 돌아온 쇼야는 쇼코가 책상에 쓰여진 험담 가득한 낙서를 지우고 있는 걸 봤다. 그 책상은 쇼야의 것이었다. 그는 그녀를 밀쳤다. 쇼코는 처음으로 그와 싸웠다. 그녀는 곧 전학을 갔다. 그는 그녀에게 노트를 돌려주지 못했다.



<쇼야의 마음>


 왕따 주동자라는 이력은 중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그를 따라다녔다. 때문에 3년 내내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선 그는 고립의 길을 택했다. 시선을 내리깔고 얼굴을 마주하는 걸 포기했다. 고 3이 되고 새학기가 되었을 때,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어렸을 적 그의 어머니가 대신 지불한 보청기 값 170만 엔(한화 약 1700만 원)을 식탁 위에 두고 생을 마감할 생각이었다. 벚꽃이 만발한 4월의 중순이었다. 자살을 하기 전에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쇼코에게 노트를 돌려주러 가야했다. 이를 위해 미리 수소문한 그는 그녀가 다니는 수화 학교에 갔다. 쇼코를 발견한 그는 노트를 건넸다. 그리고 말을 건넸다. 목소리가 아닌 손으로. 지난 6년 동안 수화를 배웠다. 초등학생 때 그녀와 둘이 있던 날 그녀가 손으로 건넨 말이 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그녀가 했던 말을 6년이 지난 지금, 그는 똑같이 그녀에게 했다. 그녀의 대답을 들었을 때, 쇼야는 좀 더 살아보기로 했다.


나와 너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쇼코의 마음>


 쇼야가 다시 찾아 왔을 때 그녀는 겁이 났으나 그가 수화를 시작하자 마음을 열었다. 친구가 되자고 했을 때 그녀는 웃으며 받아들였다. 친구가 된 쇼타는 그녀를 위해 뭐든지 하려고 했다. 그녀는 쇼야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꽤나 즐거웠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부탁도 했다. 고마움이 섞인 마음은 '이성에 대한 호감'으로 나아갔다. 평소 풀어내리던 머리를 묶어 올리고 보청기를 낀 귀를 드러낸 날, 그녀는 입을 열어 쇼야에게 고백했다. 그러나 발음이 부정확한 그녀의 말을 쇼야는 알아듣지 못 했다. 그래도 둘은 같이 보내는 시간을 서서히 늘려갔다. 그러나 그녀는 몰랐다. 그녀를 위해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을 한 명씩 다시 만나야 하는 쇼야의 괴로움을. 머릿 속엔 그녀로 가득하지만 손을 잡을 수 없는 쇼야의 죄책감을.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지난 날 잊었던 생각을 떠올렸다. 자신과 엮인 사람들은 불행해진다는 것을.



 임신 중 감염으로 인한 선천적 청각 장애를 가진 그녀는 태어날 때 부터 들을 수 없었다. 보청기를 끼면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었지만 명확하지 않았다. 장애아를 받아들이지 못한 친가로 인해 어머니는 이혼했다. 그런 어머니는 어떻게든 쇼코가 보통 사람처럼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쇼코는 학교에서 매일매일 괴롭힘을 당해도 웃음을 지었다. 그런 날은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돌아와서 죽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동생은 그런 그녀를 위해 어느 날 부터 죽은 동물의 사진을 찍어 방안에 잔뜩 붙여놓기 시작했다. 그런 사진을 보면 그녀가 죽고 싶어하는 마음을 거둘 줄 알았다. 어머니는 가기 싫어하는 쇼코를 계속해서 학교에 보냈다. 쇼코는 어머니와 동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학교에서는 웃음을 지었다. 계속 웃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참고 힘들어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랬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그녀의 주위에는 어딘가 불편한 웃음이 가득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쇼야도 과거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때때로 그런 표정을 지었다.


 쇼코는 자신이 없어지면 다들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을 거란 결론을 냈다.





 파스텔 빛 화면 구석에서도 주제 의식을 전달하기 위한 연출로 가득했다. 특히 빛으로 반사되는 봄의 정경이 감성적인 그림을 만들었다. '소통' 자체가 필사적인 이들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저녁 노을이 지는 열차로 묘사되어 주제의 무거움을 덜었다. 7권의 만화책을 2시간 가량의 애니메이션으로 압축하면서 생략한 부분이 있지만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스토리 전개의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애니메이션 자체의 음향과 색감을 추가한 연출로 원작에서 느낄 수 없는 감성을 새겼다. 2시간의 러닝타임 끝에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둘이 서로를 이해했을 때 얻는 감동은 관객의 가슴 깊은 곳에 남는다.


 전해지지 않은 듯 했던 마음은 사실 긴 시간을 거쳐 서로에게 조금씩 닿고 있었다. 스토리 주요 얼개와 같이 흐르는 쇼야의 감정 변화, 객체로 느껴지던 쇼코가 후반부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또 한 명의 주체로 역할을 하는 건 소소한 반전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주제는 화해에서 소통으로 나아갔다.


 서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했기에 얇은 깔때기 구멍으로 조금씩 나오던 물이 이윽고 컵안을 가득 채우듯 서로를 이해해 갈 수 있었다. 그 결실로 나온 쇼야의 고백은 어떤 사랑 고백보다 순수하고 진실했다.



있잖아, 네가 살아가는 것을
(내가) 도울 수 있게 해줘


 보는 내내 섬세한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눈부신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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