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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Jun 14. 2017

여러모로 과하다

<하루>, 조선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Good

- 복잡한 설명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제목과 예고편처럼 하루가 반복된다는 주요 설정에 별다른 설명이 들어가지 않는다. 시작한 지 10분 안에 루프에 들어간다. 타임루프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 반복되는 급박한 상황 속 행동변화에 집중한다. 90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에 여러 가지 설명을 붙이면 보고 나서도 뭘 봤는지 기억이 안 남는다. 군살을 잘 뺀 영화다. <끝까지 간다>가 연상되는 연출이었다.


- 그렇다고 아무 내용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 영화 중 제일 유명한 타임루프 물인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는 차별성을 가졌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타임루프 과정에서 주인공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면, <하루> 타임루프를 반복하는 인물이 한 명이 아니라는 설정을 추가해 루프 안의 인물들이 서로 엮이게 된 비밀을 찾는 과정을 다뤘다. 중반부를 넘어서면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이 있다.


이런 취향을 가진 분은 보세요

# 영화를 보는 제 1의 목적은 스릴이다

# 세상사도 복잡한 데 영화 볼 때 이런저런 생각하는 거 싫다

# <하얀 거탑>의 김본좌가 머릿속에 어른거린다



Bad

- 과하다, 설정도 감정도. 타임루프에 빠져 혼란스러운 건 알겠지만 감정선이 너무 과하다. 특히 변요한은 등장 시작할 때부터 화면 밖에서 김명민의 멱살을 잡으며 등장한다. 시종일관 흥분, 혼란, 절규 투성이의 그의 연기는 열연(熱演)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만 자연스럽지는 않다. 좋은 연기는 보는 관객이 공감 가능할 수 있게 자연스럽게 감정선을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흥분하며 소리 지르는 주인공을 앞에 두고 관객은 하품을 하게 된다. 거기에 피, 침, 눈물, 콧물, 땀, 암튼 몸에서 나올 수 있는 분비물은 다 튀는데, 카메라는 굳이 또 그걸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침이랑 피랑 콧물이 섞이면 어떤 형태로 변하는지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면 불필요한 카메라 워킹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 감독의 데뷔작이니까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투름과 같이 와야 할 신선함은 없고 진부함만 남았다. 초반 10분을 보며 벙찔 수밖에 없었다. 저 화면 구성에, 저 음악에, 저 연기라니. 타임루프를 시작하기 전 10분이 좀 끔찍하다. 반항끼 넘치는 딸, 일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던 아빠, 촐싹대는 동료, 뭐 그런 거. 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것도 최근이 아니라 10-20년 전쯤에 본 것 같다. 같이 안 놀아 준다고 아빠 말 안 듣고 매번 죽는 딸을 10번 정도 보고 나면 슬슬 '왜 굳이 구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얄팍한 캐릭터가 진부하다. 긴 배경 설명이 아니라도 짧은 회상씬과 대사로 캐릭터의 개연성을 형성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게 아쉽다. 딸과 친구들 세 명이 정면으로 잡히는 장면은 '매직 키드 마수리'나 '요정 컴미'가 떠오른다. 그랬던 딸내미가 마지막에 모든 걸 다 이해하는 기특한 딸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 감독은 개연성이라는 단어를 잠시 잊은 것 같다. 가족과 부성애라는 주제를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극적인 인물 변화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이 없었다. 극 말미에 아내가 뱃속의 딸의 이름을 묻는 변요한의 대답을 보면서 속으로 '설마, 설마, 하루는 아니겠지'라고 속으로 비명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보면 안다.


이런 취향을 가진 분은 실망할 걸요?

# 절제되었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호하는, 이를테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홍상수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

# 아무리 그래도 영화라면 최소한의 개연성은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 배우들의 피부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클로즈업이 부담스러운 사람.


다행이다, '하루'가 끝나서. 덕분에 영화도 끝나서.


※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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