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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Jun 28. 2017

어쩌면 멜로

<박열>, 이준익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사는 조선 청년 박열은 인력거를 끌고, 시를 쓰고, 일제 저항운동을 한다.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는 그의 시를 읽고 감명받아 그와 동거하기로 한다. 둘은 같은 조직에서 활동한다. 어느 날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고 많은 사상자가 생긴다.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일제는 조선인들을 모함한다. 일본인은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을 죽이고 다닌다. 그런 와중에 박열과 동지들은 경찰에 잡힌다. 조선인 학살이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한 일제는 박열에게 천황 암살미수범이라는 모함을 한다. 그는 부인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흥에 겨운 재판이 시작된다.  


Good

# 능숙한 완급조절, 가슴 뜨거워지는 웃음

 일제시대, 법정, 재판, 투옥. 이런 소재지만 이야기엔 웃음이 녹아있다. 검사와 밀당하는 듯한 박열, 그가 하는 말에 일일이 반응하는 어리숙한 검사. 말로 주고받는 그들의 저항방식은 자연스럽게 웃기다. 웃다 보면 어느새 가슴이 뜨거워진다. 전작인 <황산벌>과 <라디오스타>의 완급 조절을 기억하는 관객은 충분히 그 기대를 충족할 수 있다.


# 박열뿐 아니라 가네코 후미코

 전작 <동주>가 윤동주 아니라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지 않은 송몽규도 주목한 것처럼 <박열>에서 후미코는 어떤 면에서 박열 이상으로 의미가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3.1 운동에 감명받은 아나키스트 일본인. 시대의 여성상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그녀는 영화가 일제 저항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했다. 또한 친구지만 성격과 삶의 이력에서 대치구도에 있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관계처럼, 동지애와 남녀 간의 애정이 묘하게 섞인 듯한 박열과 후미코의 관계는 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봐도 충분히 흥미롭다. 투옥, 심문, 재판의 과정에서 검사와 간수를 사이에 두고 밀당하는 둘이 하는 건 연애다.


Bad

# 후반부에 흔들리는 균형

 영화는 후반부에 거듭되는 박열의 연설로 관객을 '아 이제 끝날 때가 되었으니 진지해져야지'라고 뜬금없이 상기하게 한다. 주제의 숭고함은 어쩔 수 없지만 분위기 변화가 다소 뜬금없다. 특히 재판장 들어가지 못한 조선인 동료들이 '우리는 듣고 있다'라며 전부 다 같은 톤으로, 합창하듯 소리치는 장면 박열과 후미코의 유쾌한 재판을 보고 있던 관객의 들썩이던 어깨를 확 하고 누른다. 저항을 다뤘지만 박열과 후미코라는 개인에 집중했던 서사는 다시 민족이라는 주체로 넘어간다. 그러니 이야기의 균형이 흔들린다. 전쟁을 시종일관 유희적으로 다룬 <황산벌> 마지막에 갑자기 전쟁의 참혹함을 말하는 것처럼 분위기의 전환이 급작스럽다. 웃음과 메시지 전달 사이에서 실을 타 넘듯 균형을 타던 영화는 이 부분에서 미끄러진다.


# 박열은 영웅이어야만 했다

 뜻밖의 발견인 후미코에 비해 아쉬운 박열이 있다. 인텔리 캐릭터를 주로 맡은 이제훈의 망나니 연기는 반만의 성공이었다. 조금은 어색하던 욕하고 장난치던 연기가 익숙해질 무렵, 그는 문득 깨달은 듯 영화 말미에 영웅적인 모습을 보였다. 익살 투성이 박열은 이 순간 민족을 대표해서 재판관을 향해 일장 연설하는 민족 투사로 변한다. 영화는 영웅을 만들어내선 안된다. 그냥 특정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영웅적인 면모를 납득 가능하게 표현하면 된다. 아쉽지만 감독은 만들어내려 한 것 같다.



Memorable Scene


 후미코가 검사로부터 고백받은 장면이다. 사실 검사는 박열이 한 말을 전했을 뿐이었다. 내용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라'였지만 그걸 들은 후미코의 반응은 마치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고백받은 것 같았다. 그 표정에서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영화를 보면 이해가 가능한 맥락이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영화는 볼 이유가 있다.


※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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