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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Jul 18. 2017

영화가 현대사를 품는 방식

<택시운전사>, 장훈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80년 5월, 서울에 사는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은 한 손님을 받는다. 독일에서 온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는 광주로 가기 위해 10만원을 지불하고 택시를 잡는다. 서로 말이 거의 통하지 않는 만섭과 피터가 직접 들어간 광주는 뉴스에서 본 모습과 달랐다. 무자비하게 총을 쏘는 군인과 저항하는 시민. 그 사이에서 만섭은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과 서울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딸을 저울질 한다.


 이야기 속 역사는 사실(fact)에 기반한 창작(fiction)이다. 특히 드라마나 소설보다 더 한정된 분량의 영화는 특성상 한 인물, 한 사건에 초점에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할 수 밖에 없다. 감독은 전하려는 메시지를 중심에 두고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한다.


 현대사는 거기에 더해 정치적인 함의를 가진다. 다양한 집단, 개인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같은 사건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된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감독은 영화를 통해 그 정치적 함의를 어떻게 이야기로 표현하는가? 그 점을 생각해보았다.


영화는 현대사를 어떻게 품는가?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다. 평범한 시민이었고, 학생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5.18 연설 일부다. 동시에 <택시운전사>가 5.18을 다루는 방식이다. 거듭된 군부 정권에 대항하는 시위가 한창이던 1980년 5월, 그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생계를 더 신경쓰는 만섭은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유리된 개인이었다. 사건의 외곽에서 이를 바라보는 관찰자였다. 5.18을 취재하러 온 피터의 탑승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참여자로 변할 계기를 주었다.


 어렵사리 들어간 광주에서 만섭이 바라본 풍경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연설문의 일부처럼 광주시민들은 폭도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과 학생이었다는 점. 대표적인 인물로 광주에서 활동하는 택시기사 태술(유해진)과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에 들어간 재식(류준열)이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인 만섭과 더 이방인인 피터에게 망설임 없이 호의를 베푼다. 그들의 영역에 들어간 만섭은 자연스럽게 동질감을 느낀다.


 그런 그들이 무자비한 군인의 총에 쓰러지는 모습은 만섭이 보게 된 광주의 또다른 풍경이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 주먹밥을 나눠줬던 여자가 피를 흘리며 누운 모습을 본 만섭은 10만원을 들고 서울로 돌아가 싶은 소시민이지만 이웃의 불행을 무시할 정도로 무심하지도 않았다. 송강호라는 걸출한 배우는 이 지점에서 나타나는 내면의 갈등을 표현했다. 그의 연기에는 눈앞의 현실을 무시할 때 얻는 소시민적 안정,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 역사적 소명이 깔려 있었다.


 <택시운전사>의 만섭이 <변호인>의 송우석이 보여준 내적 변화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또한 같은 배우인 송강호라는 점에서, 감독의 메시지는 사실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명확해진다. 무자비한 공권력에 대한 보통시민의 저항과 기저에 깔린 타인에 대한 공감이다.


 아쉬웠던 건 후반부에 180도로 변한 만섭의 극적 변화다. 10만원을 받기 위해 동료 기사의 손님을 가로챌 정도로 속물이었던 만섭이 후반부에는 목숨을 걸고 피터를 공항까지 옮겨주고 수리비마저 받지 않겠다는 정의로운 인물이 된다. <택시운전사>가 수퍼히어로물이었다면 납득할 수 있지만 만섭은 날라다니는 슈퍼맨이 아니라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서민이다. 그런 그가 보여주는 극적인 입장변화는 과연 공감 가능한가? <시빌워>에서 압도적 힘을 지닌 슈퍼히어로끼리도 서로의 가치 차이로 갈등하는 모습을 보았던 관객은 소시민에서 영웅으로 되기까지의 짧은 시간에 그려진 만섭의 극적인 내면 변화는 이해하기 힘들다. 초반부에 송강호가 살려낸 속물적이지만 인간미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뚜렷한 사명감을 가진 영웅으로 만들어버리면서 이야기가 캐릭터를 짓눌러버린 셈이다.

 

영화 속 현대사를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공감은 만섭이 광주시민들에게 하는 것뿐 아니라 화면 밖의 우리도 만섭과 광주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 영화 속 광주는 처참하고 총을 쏘는 군인과 이를 지시하는 사람들은 매정하다.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단순 구도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 속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단순히 아픔을 공감해야 하는가? 아니면 5.18이라는 사건에 대해 한 명의 시민으로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혹은 영화는 그저 오락물에 불과하니 극장을 나온 뒤 잊으면 그만일까.


 이 지점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이성적인 판단보다 일방적인 공감을 강요하는 것 같아 아쉽다. 만섭을 살리기 위해 광주의 택시기사들이 가족의 생계와 직결된 자동차를 군용차량에 꼬라박을 때 감정적 강요는 선명했다. 오히려 만섭이 광주를 빠져나갈 때 검문을 한 군인이 서울 택시를 내보내지 말라는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냥 내보낸 이유에 대한 설명을 좀 더 했으면 어땠을까? 더군다나 단순한 단역이 아닌 엄태구라는 배우를 활용한 카메오였던 만큼, 반대 진영인 군인들에게도 인간성을 부여했으면 편향적인 감정적 강요에서 이성이 개입할 여지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사를 다룬 영화는 이성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인 5.18 이기에 더욱 그렇다. 같이 보던 친구가 흘린 눈물이 왠지 모르게 씁쓸하게 느껴졌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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