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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que H Sep 22. 2024

어느 날부터인가 날 찾지 않는 너에게

내 빈자리가 당연해지는 순간이 왔다.

모든 이별은 힘들다.

누군가와의 이별이 직업인 나 조차도,

아직 때때로 찾아온 이별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며,

찾아올지도 모르는 이별을 막기 위해 발버둥 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이별은 더욱 힘들고 무거운 일일 지도 모르겠다.

하루 잘 놀고 고작 며칠 헤어지는 삼촌, 이모를 문까지 따라나가,

엉엉 울며 우는 아이들.

고작 온종일 일하고 돌아올 뿐인데,

아침 문간에서 아빠 바짓단을 부여잡고 놔주지 않는 아이들.


아이들의 순수함은 작은 이별조차도 우리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곤 한다.




출장을 떠나본 부모라면 누구든 잘 알 것이다.


처음 아기들은 부모가 밤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리가 무엇을 말하건, 어떤 이야기를 하건,

아무리 우리가 매일 출근을 하는 직장인이더라도,

아이들에게 부모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는 존재니까.


아이를 낳고 처음 출장을 가던 날을 기억한다.

코로나로 아이가 두 돌을 조금 남겨놓고 출장을 나갈 수 있었는데,

아이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나를 배웅했다.

나 혼자 마음 아파하고 말걸음이 무거웠을 뿐.


출장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는 문 앞까지 나와서 나를 마중했다.

그리고 그날은 잠들 때까지 나를 꼭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후 며칠 동안 출근길이 힘들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아이는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 했고,

나는 아이에게 아침마다 꼭 돌아오겠다고 달래고 달래 가며 떼어놔야만 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출장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내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나도, 딸도 이런 짧은 이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나가는 나를 붙잡지 않는다.

또 어느 날부터인가는 잠잘 때 아빠가 없더라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며칠이나 아빠가 보이지 않더라도

더 이상 딸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는 바쁜 사람.

아빠는 집에 없는 사람.

아빠는 가끔 나를 보러 오는 사람.


그렇게 딸의 마음속에 내가 조금씩 옅어져 감을 느낄 무렵,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균열이 커질 무렵,

처음 중동 지역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내가 다녀온 출장지는 한국과의 시차가 5시간이었다.

새벽에 일어나도,

이미 딸은 어린이집에 가고 없었다.


딸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내가 현지에서 근무를 하느라 바빴다.

내가 퇴근을 하면, 이미 딸은 잠든 뒤였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가까이 되는 출장 기간 동안,

서로 단 한순간도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혹자는 그게 당연하다 할 수도 있다.

7-80년대를 살아온 산업역군들에게는 일상이었던 일이고,

다들 그렇게 키우는데 왜 너만 유난이냐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알고 있다.

아이가 태어난 날, 이 아이와 무슨 약속을 했는지,

내가 어떤 삶을 살기로 했는지 아직까지 잊지 않았다.


그렇게 난 너의 삶에 다시 내 자리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아마도 이 순간이,

내 커리어의 가장 큰 전환점을 마주하게 만든,

결정적인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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