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증을 추가하면서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에게,
여권에 찍힌 도장은 하나의 추억이자 자랑거리일 수 있다.
내가 저 많은 나라를 다니고 이 넓은 세상을 누볐노라,
증명할 수 있는 그들의 기록이다.
지금은 점차 전자 출입국 심사대가 국가마다 도입되고 있고,
대한민국의 여권 파워는 상당하기에,
조금씩 도장이 사라져 가는 세상을 겪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들은 출입국 심사대에서 도장을 찍어준다.
나 또한 이런 도장 하나하나에 마음이 몽글거리던 때가 있었다.
여권에 도장을 받으면,
왠지 내가 이곳에 있었다는
하나의 증명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게 출입국 도장은,
우리 가족의 상처의 흔적이기도 하다.
내가 가족과 떨어져 보낸 시간의 증명.
우리가 함께하지 못했던 날들의 기록.
이를 잊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흉터로써,
내 마음속에 새겨진 흔적들이리라.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의 깨끗한 여권들을 함께 놓고 볼 때면,
사증까지 추가해 지저분해진 내 여권은,
이들을 두고 밖에서 고군분투했던 내 삶이 투영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작년, 영국으로 파견 나오기 직전 나의 여권이 만료되었다.
추가된 사증과 도장, 손때가 묻어 엉망이 된 오랜 여권을 보내주고,
그렇게 오랜 흉터를 지우고,
내게도 새로운 여권이 생겼다.
마치, 그동안의 상처는 잊고,
이제부터는 함께 그려나가자고 하는 듯하여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그 이후 1년, 우리는 열심히 함께 다녔다.
마치 그 전의 상처를 지우려는 것처럼,
쉴 새 없이 함께 도장을 채워왔다.
모르겠다 지금은.
언젠가 다시 내 일이 바빠지고,
너희도 같이 바빠져서,
나 홀로 세상을 표류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들에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