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공황장애는 흔한 질병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은 공황상태를 경험한다고 한다. 물론 단발성으로 겪는 공황상태는 병이 아니다. 오히려 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사이렌이 울린 것뿐이다. 이렇게 흔한 증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황장애를 유명한 사람들이 앓거나 남의눈을 많이 의식하는 소심한 사람들,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 의지가 약한 사람이 생기는 병 정도로 알고 있는 것 같다. 편견이다. 그 누구라도 공황장애를 앓을 수 있다.
정확하게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단순한 불안이 아닌 정말 죽을 것 같은 극심한 불안으로 신체적인 발현(두통, 숨 막힘, 소화불능, 어지러움, 과호흡, 손떨림, 식은땀, 감각의 이상. 현실의 비현실화 등등 그 증상은 정말 여러 가지이다.)이 짧은 시간 안에 최고조에 이르며 본인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상태이다.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나의 불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백한 이유이다. 하지만 꼭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거나, 별 스트레스 없이도 공황장애는 생길 수 있다. 내 경험들이 곧 공황장애의 이유는 아니라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우울증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감을 계속 느낀다면 당연히 우울하지 않겠는가! 다만, 불안해서 우울한 것만이 아니라, 우울증으로 불안을 경험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사소한 자극에도 공황 상태가 되기도 한다.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심계항진) 식은땀이 나거나 숨을 쉬기 어려우며 다리가 마비되는지 걷는 것이 이상한 기분이 된다. 이런 증상이 십분 안에 최고조에 이르면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고 ‘정말 죽는 건가?’하는 두려움이 날 집어삼키는 공황발작을 경험한다. 이렇게 발작을 경험하고 나면 반나절은 기력을 못 쓰고 온몸에 힘이 빠져서 잠만 잔다.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진다. 보통은 다음 날까지도 컨디션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다.
치료를 꾸준히 받기 전에는 소화가 전혀 되지 않는 기분, 먹기만 하면 체하고, 침조차 삼키기 어려워 먹는 것을 큰 고통으로 느꼈다. 지금도 나는 침을 잘 삼키지 못한다. 그래서 공황장애 초기에 거의 대부분의 환자들이 10kg씩 쏙쏙 살이 빠진다. 상상해 보라.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사활을 걸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그러지 않고도 다이어터들이 원하는 10kg 이상 감량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을 느끼고 짊어져야 가능한 일이겠는가! 흔한 질병이지만 앓는 이는 굉장히 고통스럽다.
공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광장공포증도 경험하는데,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못하거나 사람이 많은 곳을 가지 못한다. 나는 심각한 공황발작을 지하철에서 경험했다. 퇴근길 만원인 지하철 안이었지만 사람들은 나를 둘러 동그란 원을 만들며 피했다. 마치 구경거리가 된 기분으로 매우 수치스러웠다. 계속해서 침을 질질 흘리며 트림을 하고 몸이 크게 흔들거렸다. 간질로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마 그 누구도 나에게 괜찮은지 묻지 않았다.(아마 못했을 것이다) 그 뒤로 대중교통은 나의 공포의 대상이다. 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황발작을 할까 두려워(예기불안) 그 불안이 발작을 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숨이 막히고 두려워진다. 두려워서 두려워지는 것이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은 수치스러웠다. 통제하기 어려운 발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고 보여주고 싶지 않아 그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것이 싫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언니는 나를 보고 첫마디에 “너 얼굴이 반쪽이야!!”라고 소리쳤다. 차마 “다이어트에 성공했어!!”라며 웃지는 못했다. (그럴 수 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난 소심하게 “그냥 좀 아파”라고 했을 뿐이다. 그 뒤로도 난 오랜 시간 가족들에게 내 병을 숨겼다. 만약 나에게 믿을만한 가족구성원이 한 명이라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날 싫어하는(증오하는) 언니, 언니와 짝자쿵이 잘 맞는 여동생, 13살 차이가 나는 너무 어린 슈퍼막내 남동생,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중에 한 명이라도 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나의 고통을 좀 헤아려주는 마음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그 기대가 우울증을 더 부추겼다.
룸메이트 언니가 아버지와 식사를 같이하면서 내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그때 난 잠시 화장실에 갔다.) 아버지는 '엄마가 없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라고 대답하셨단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 모임이 있었고, 저녁 약을 먹어야 했기에 늦게까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진 못했다. 저녁 약은 매우 독해서 먹으면 30분 안에 잠이 든다. 잠을 자지 않는다면 매우 몽롱하고 어지러워 집이 아닌 곳에서는 먹기 어렵다. 약을 먹어야 해 집에 간다는 나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예뻐지는 약 먹니?”
웃으며 “네”라고 대답하고 집에 돌아왔지만, 누가 봐도 피폐해져만 가는 딸에게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말이었을까를 되새겨보게 된다. 난 내 병을 가족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기대하는 순간 실망감이 커진다.
한 번은 귀갓길에 공황발작을 했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는 도보로 10분이 되지 않는다. 역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 단지인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여러 번 길에 주저앉았다. 걸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당시 나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정신력으로 이기겠다며 노력하던 때다. 매일 두려움에 떨었지만 지지 않겠다는 오기로 출퇴근했다. 하지만 그날은 집에 도착해 현관문도 열지 못했다. 여러 번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비밀번호가 제대로 눌리지 않았다. 나는 완전한 패닉상태였다. 집 안에 있던 룸메이트 언니가 계속되는 도어록 소리에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무너지듯이 쓰러져 서럽게 울었다. 나는 '고장이 났다'며 오열했다.
그래 나는 고장이 났다. 심신이 모두 망가져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앓아오던 불안장애로 손발은 늘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늘 경미한 수준의 몸의 떨림을 만성적으로 갖고 있었다. 그 뒤 공황발작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완전히 고장 나버린 것이다. 공황발작 전에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 같은 기분으로 사는 줄 알았다. 가끔 이 사실이 굉장히 아프다. 치료를 꾸준히 하고 불안이 없는 상태를 경험하자, '다른 사람들은 불안이 없는 상태로 살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 시절을 보냈겠구나'하는 마음에 심장이 시리곤 한다. 그러면 난 엄마가 정말 너무 미워진다.
TIP.
1. 공황장애는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 사실은 공황을 경험하는 당사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발작을 목격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라. 그냥 가만히 둬주는 게 난 개인적으로 좋다. 약을 먹고 30분 이내로 발작은 가라앉는다.
2. <공황장애 인지행동의 치료와 실제>에서는 비록 연구가 많지는 않지만, 공황장애가 유전적 요인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