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공황장애를 인정하고 치료를 시작하면서 잘 치료하겠다는 의욕은 넘쳤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출근했다. 지하철을 타기 직전에 약을 먹었다.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스카프나 마스크, 눌러쓰는 모자를 사용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공황장애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책을 여러 권 구입해 꼼꼼히 읽었다. 하지만 공황장애를 앓는 이들에 비해 관련 서적이나 가이드, 자료는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또 이론적인 부분(생리적으로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어떤 약은 어떤 효과를 내고 하는 등)은 안다고 별로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건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이제 더 이상은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성인이 되었기에 학생 때처럼 가만히 무기력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난 생계를 이어나가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우연히 본 유튜브에서, 몸과 정신은 연결되어 있어 몸을 건강하게 움직이면 정신도 건강해진다는 강의를 들었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신을 차분하게 하는 운동이 요가라고 이효리가 그랬고 난 요가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운동하는 요가원에 갈 엄두가 안 났다. 대신 유튜브의 여러 요가를 따라 했다. 처음에는 몸이 굳어 제대로 따라 할 수 있는 자세가 없었다. 스트레칭에 가까운 말만 요가를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지금도 아침에 눈뜨자마자 요가를 계속하고 있다. 쭉쭉 몸을 펴고 움직이고 근육들을 풀어주면, 긴장으로 굳어있던 몸이 한결 가볍다. 아침요가는 하루를 살아낼 에너지를 준다. 꾸준히 할수록 긴장된 몸이 풀어지는 효과를 봤다. 불안으로 긴장된 몸을 풀어주면 불안도 낮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자기 전에 요가로 몸을 풀어주면 더 깊은 잠을 잘 수 있었고, 수면 중 공황발작증세도 현저하게 줄어든다.
처음에는 스트레칭으로 시작했다. 유튜브의 서리요가를 제일 많이 따라 했다. 서리는 "나는 언제 늘어요? 자세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요."와 같은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며 "그냥 하면 됩니다."라고 했다. 정말 그냥 하면 된다. 여러 효과를 볼 수 있다. 서리요가는 화면을 보지 않아도 소리만으로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 준다. 물론 다른 콘텐츠들도 좋다. 그저 나와 잘 맞는 콘텐츠가 있을 뿐이다. 요가소년은 목소리가 차분하고 좋아 마음이 놓인다. 같은 콘텐츠를 여러 번 하다 보면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자극을 경험할 수 있다. 몸에 자극은 집중도를 높여주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도록 도와준다. 또 꾸준히 하다 보면 유연해지면서 안 되던 동작들이 될 때가 있다. 그때 쾌감이 크다.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기분전환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꾸준히 요가를 한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내 몸이 유연해지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만들어 줬다.
요가를 따라 하면서 명상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호흡에만 집중하면 지금 여기에는 숨을 쉬는 내 호흡기와 내 몸만이 존재한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강한 불안은 순간적으로는 잠잠해지는 것을 느꼈다. 불안은 그 불안을 가만히 조용히 지켜보고 있으면 작아졌다. 이때부터 내 마음을 조용히 지켜보기를 자연스레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순간적인 불안들은 잠잠해졌지만 명상을 하다 보니 살기 위해 잊으려 노력했던 찌꺼기들이 무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와 윗물을 완전히 흐리고 있는 혼란의 상태가 되는 날들이 생겼다. 불안이 아니라 분노가 나를 괴롭혔다. (분노도 꾸준한 명상으로 결국에는 가라앉았다.)
첫 심리상담치료에서 한 시간을 넘게 내 안의 것들을 모두 토하듯이 쏟아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다른 내담자들과는 달랐을 것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라포가 형성되지 않은 상담가에게 첫 상담부터 질문을 받지도 않고 막 쏟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이미 조용히 지켜보기를 통해서 내 속의 아픈 것들이 드러나고 있었고 한껏 부풀어올라 터지기 직전의 감정상태로 상담선생님을 만났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이 전문가라는 사실과 절박한 내 상태가 날 터지게 했다. 명상 때문이었다고 여긴다. 어쩌면 명상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음의 상처는 드러내기를 통해서 치유된다. 다만, 혼자서는 너무 힘들다는 것과 적절한 타이밍에 마음을 이끌어줄 존재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심리상담치료를 하길 참 잘했다.
지금의 나는 공항상태가 발현될 조짐을 느끼면 눈을 감고 깊은숨을 쉬며 숫자를 센다. 명상이 언제나 효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효과는 분명히 있다.
매일 눈뜨자마자 요가를 하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옷 만 벗고 요가를 했다. 명상과 요가가 날 수렁에서 건져내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점에서 나는 나를 높이 평가한다.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커다란 사건들이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물론 죽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은 한순간 지나가는 감정이다. 마치 금단현상과도 같은 습관에 의한 감정이다. 그 강렬한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기도를 한 적도 있었지만 그건 진심은 아니었다. 살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도 있지 않은가!
과격한 운동은 추천하지 않는다. 나는 공황장애를 치료하면서, 여러 가지 운동을 배웠다. 프리다이빙, 수영. 테니스, 골프, 복싱 등을 했다. 프리다이빙은 공황장애가 있으면 하면 안 되는 스포츠이다. (처음에 수강할 때 공황장애 등의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설문도 한다. 난 강사에게 사실대로 공황장애가 있음을 알렸지만, 강사는 그럼 문제가 복잡해지니, 그냥 설문지에 없다고 쓰라고 했다) 난 배웠던 스포츠들을 모두 좋아했다. 하지만 공황장애로 인한 한계들에 모두 부딪혔다. 프리다이빙은 레벨이 높아지자, 더 깊이 더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난 숨을 참는 것에 대한 공포를 물 안에서 느꼈다. 프리다이빙 중 공황증세를 느끼고 그 뒤로 두려워서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수영과 테니스, 복싱도 마찬가지다. 심장박동을 빠르게 만드는 스포츠는 공황장애 환자에게는 맞지 않는다. 수영 테니스 복싱 모두 재밌었지만 운동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면 불안이 덮쳐왔다. 공황발작 시 젖은 물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 때문에 수영과 프리다이빙은 시작 전 날 더 긴장하게 했다. 수영은 30분 하고 나면 도망 나왔고 복싱도 공황발작을 일으키게 했다. 그나마 너무 어려워서 짧은 레슨시간을 가진 테니스를 가장 오래 한 것 같다. 경험하면서 알게 된 것은 공황장애에는 정적인 운동이 훨씬 잘 맞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가나 필라테스를 추천한다.
뜨개질도 내가 많은 도움을 받은 취미생활이다. 시간이 날 때면 대부분의 모든 시간을 뜨개질이나 글쓰기를 하며 보냈다. 뜨개질은 반복적이고 정적인 활동이다. 그러면서도 한코라도 더하거나 빠지면 다시 되돌려야 하기에 속으로 콧수를 세게 된다. 어떤 면에서 명상과 일맥상통한다.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뜨개질에 집중하면 생각이 사라지고, 나는 오롯하게 뜨개질하는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다. 하지만 한계는 있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한 편으로 그냥 미뤄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면하기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상담선생님은 "우리의 목표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이며, 그 감정을 바라보아도 괜찮아지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너무 힘들 때는 외면하기를 하는 정도의 여유를 나에게 준다. 그 여유는 또다시 감정을 직면하는 힘을 만들어 주었다.
TIP.
1. 꾸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뜨자마자, 잠들기 전, 30분씩 요가를 추천한다. 특히 수면 중 악몽이나 공황발작을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잠들기 전 전 요가가 큰 도움이 된다.
2. 감정을 외면하고 내 생각을 돌리기 위한 몰입의 행위를 찾아내보자. 임시방편의 효과가 있다. 우울증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