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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치료 시간에 주기적으로 좋은 감정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아픈 마음을 긍정적인 기분으로 치환하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좋은 기억을 생각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어린 시절에서 찾을 수 없다면 성인이 된 이후의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처음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았던 기억?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친구 조유미와의 추억? 혼자 떠났던 여행? 다들 좋은 기억이지만 '이것이다!'힐 만한 추억은 딱히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내 추억들을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하기를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종의 자서전 쓰기.
입꼬리를 나도 모르게 올리는 가장 좋은 기억은 최치규 프란치스코하비에르 신부님과의 기억이다. (프란치스코하비에르는 세려명이다. 천주교 이름이라고 여기면 된다.) 내가 다니던 성당에 재임하셨던 기간이 1982년 09월부터 1988년 09월까지인 것을 보면, 내가 신부님과 보낸 시간들은 취학 전 어린아이었을 때이다. 신부님은 어린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
당시 우리 집은 가겟집에 달린 작은 방이었고 엄마는 그 가게에서 옷가게를 했다가 접고 아버지가 페인트 가게를 하셨다. 집 앞은 바로 차도였고, 어린 나는 달리 뛰어놀 공간이 없어 거의 매일 성당에 놀러 갔다. 성당은 작고 예뻤다. 화단에 심은 꽃들과 개미들과도 이야기하며 놀았다. 병아리가 죽었을 때도 울며 성당 화단에 묻어줬다. 가끔은 병아리 무덤에 가서 병아리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그래도 매일 성당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신부님 방에 놀러 가는 일이었다!
난 신부님 방에 스스럼없이 들락거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성직자가 기거하는 공간은 신자들이 드나들 수 있는 구역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어린이 신자들이 신부님 방을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두근두근해진다. 난 신부님의 어린 친구로 특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신부님에게는 로사라는 언니가 있었다. 로사언니는 신부님 방을 청소도 해주고 밥도 해드리는 봉사자였다. 최신부님은 로사언니를 큰로사, 나를 작은로사라고 부르셨다.
언제나 크게 환영하며 반겨주셨고 잘 안아주셨고,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는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오줌을 싸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셨다. 신부님 침대에서 뛰며 방방놀이를 하기도 했고, “뭘 먹고 싶니?” 하고 물으시면, “떡뽁이요!!”라고 소리치던 나를 기억한다. 그러면 신부님은 "큰로사~ 우리 작은로사가 떡볶이 먹고 싶단다." 하시며 나와 함께 떡볶이를 드셨다.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떡볶이다. 특별히 나와 놀아주신 것은 아니지만 귀찮은 내색 없이 내가 신부님을 찾아가면 언제나 환대해 주셨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큰 사랑이다.
그 큰 사랑으로 내 어린 시절은 사랑이 충만했다. 학창 시절의 내가 겪은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긍정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이자 뿌리가 최치규 신부님과의 추억이다. 난 지금도 굳이 내가 심리적인 문제를 겪고 있음을 밝히지 않는다면 아무도 내 병을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내 글의 독자 중의 한명인 지인은, 날 '목소리만 긍정적인 우울한 사람'이라고 평가했지만) 어쨋뜬 내가 느끼는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열심히 살려는 의지와 나를 포기하지 않는 용기는 모두 신부님의 사랑 덕분인 것 같다.
언젠가는 최신부님께서 “로사야, 로사라는 성녀는 특별한 분이셨단다. 가족을 사랑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좋은 일을 한 분이야. 로사는 장미라는 뜻인데, 신부님은 성당에 수많은 장미꽃이 가득 핀 꿈을 꾸고 로사를 만났단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똑똑히 기억한다. 그때 그 따뜻한 기운을 말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좋은 일을 한 분' 무의식에 이 말이 남아서였을까? 난 정말 가족을 사랑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직업을 갖았었다. 가족을 위해 엄마의 투병생활 중 주보호자였으며, 사회복지사로 오래 일했다.
나는 호적상 이름 대신 '로사'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주변 사람들이 로사라고 불러주길 원했고, 내 물건들에는 로사라고 이름을 썼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친척들도 '로사'라고 불렀고, 가끔 친척들은 "로사 네 원래 이름이 뭐지?"라고 묻기도 했으니까. 내 이름은 로사이다.
상담과 자서전 쓰기를 통해 기억해 낸 나의 어린 시절 최치규 신부님, 불행하기만 했다고 느꼈던 나는 사랑받는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가족 간의 불화, 학대, 가정의 붕괴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가진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힘듦과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누구라도 분명히 좋은 기억이 있다. 그저 우리의 뇌는 좋은 기억은 잊고 나쁜 기억은 깊게 박는 습성을 가졌다. 이는 사람이 나쁜 기억을 기억함으로 다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뇌의 기능 때문이다. 상담선생님은 의식적으로 좋은 기억들을 찾아 자주 생각하는 훈련을 하라고 하셨다. 특히 감각에 관련한 좋은 기억이 효과가 좋다고 한다.
처음에는 좋은 기억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기억해 내고 나면, 가지에서 또 가지가 뻗듯 좋았던 기억들을 우리는 생각해 낼 수 있다. 이 훈련은 심리적 문제를 해소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