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사람의 정말 작은 일탈
성향과 습관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일탈아닌 일탈을 했던 그날 이후로 업무 스위치의 존재를 인식했다고 해서 자유자재로 그것을 사용하게 되진 않았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 나의 삶을 훨씬 윤택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열쇠라는 걸.
하지만 걱정과 불안이 만들어내는 안개는 스위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했다.
나의 모습은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지만, 지푸라기를 잡고 올라왔다가도 다시 스스로 내려가서 허우적대고 있는 꼴이었다.
그렇게 입사 1년 차가 되어갈 때 즈음, 해고 사유로 사수가 돌연 그만두게 되었다.
잡일 정도의 일만 도맡아서 하다 이제야 뭔가 시작되려던 차였다.
업무 선배인 동시에 정신적 지주였던 사수의 부재는 내게 큰 대미지를 입혔다.
사수 없이 프로젝트를 잘 마칠 수 있을지 벌써부터 눈앞이 아득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상황에 어떤 생각을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다만, '내가 더 잘 해내야 한다'라는 생각에 속이 울렁거리고 있었다.
그러건 말건 프로젝트는 진행되었고, 진행 중에도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동시에 시작되었으며, 업무 능통자의 빈자리로 인한 업무 증가량은 주말 출근을 불러일으켰다.
주말 출근에 수당은 없었다.
추가 근무에 대한 마땅한 보수를 바라는 것이 말로만 듣던 MZ 세대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내가 어떤 생각이 들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꼼짝없이 주말에 출근을 하고, 무수한 수정요청을 수용하기 위해 밤을 새워서 작업해야 했다.
어쩌다 쉴 수 있는 주말이 와도, 다음 주 근무에 대한 걱정이 서려와 늘 불안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그분의 빈자리를 잘 메우고 있는 걸까?'
온통 회사에 대한 생각으로 주말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 생활을 몇 개월 반복하자, 피로가 누적되는 것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한 번의 알람으로도 쉽게 일어나 스트레칭하던 습관은 온데간데없고, 두 어번의 알람으로 겨우겨우 눈을 뜨다 다시 잠들어 늦잠을 자거나,
똑같은 시간을 자고 출근했는데도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잠이 쏟아졌으며,
퇴근 후 잠이 들 때는 누운 지 5분도 채 안 되어서 바로 빨려 들어가다시피 잠이 들었다.
만족스러운 휴식을 하지 못하니 가뜩이나 예민한 성향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됐다.
내게 필요한 것이 뭘까.
하루가 다르게 푸석해져 가는 나를 보며 언니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업무 시간이 끝나면 신나지 않아? 회사에 대한 생각을 그만하고 싶지 않아?"
"응. 그게 안 돼서 너무 힘들어. 사람들은 일과 휴식을 잘 나눠서 살아가는데, 나는 자꾸 일이 전부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 퇴근하면 그다음 날이 불안해. 그래서 매일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일을 하게 돼. 내가 과한 불안감을 가진다는 건 알고 있어. 그래서 쉽게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 나는 왜 이러는 걸까?"
"내가 보기에 넌, 정말 성실한 것 같아. 일에 대한 책임감도 크고. 좋은 거야."
"이게 좋다고? 일을 잘해놓고도 뭔가 찜찜해서 잠도 잘 못 자고, 놀면서도 업무 생각을 하는 게?"
"받는 만큼만 일하면서 업무를 마치면 칼같이 퇴근하는 사람과, 매일 자기가 만족할 정도로 노력해서 업무를 마치는 사람. 누가 더 평판이 좋을까? 그리고 누가 더 성장 가능성이 있을까?"
"... 당연히 후자지."
"그래. 맞아. 그래서 너의 성향이 나쁜 게 아니라는 거야. 하지만 너는 정도가 심해서 조절이 잘 안 되는 것뿐이지."
"..."
"다른 사람들처럼 일과 휴식을 나눌 줄 몰라서 자괴감에 빠지지는 마. 그 사람들이 책임감이 없다는 말도 아니고, 너한테 책임감을 버리라는 말도 아니야. 우선순위를 정해서 무엇을 더 챙겨야 하고, 그것을 챙겼을 때 부수적인 게 따라오는지를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부수적인 거?"
"응. 너의 삶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언니의 말에는 내가 염려하던 모든 것들이 들어있었다.
내심 '과할 정도로 일에 대한 걱정이 많은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또다시 들었다간,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정의될 것 같은 기분이 있었다.
책임감을 버리라는 말도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어쩌나. 내가 그게 안 되는 사람인 것을.
그 간 억지로라도 쏟아온 노력과 정성 들이 부정될 때마다, 꽤나 괴로웠다.
언니의 '조절이 잘 안 되는 것일 뿐, 나쁜 성향이 아니다'라는 말은 무척 따뜻해서 콸콸 들이킨 냉수로도 해소가 되지 않던 그간의 답답함을 녹여 내려주었다.
다급하게 업무 스위치를 꺼본다.
- 달칵.
가장 우선으로 두어야 할 것이 생각나고야 말았다.
발 뻗고 잘 수 있는 마음 상태.
마음이 잔잔해야 입맛이 돌고, 입맛이 돌아야 밥을 잘 챙겨 먹고 기운을 차리는 것이었다.
아, 내게 필요한 것은 차단이었다.
주말은 주말답게, 휴식은 휴식답게, 업무는 업무답게.
각각의 환경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다른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든다.
업무 스위치만이 아니다.
자유자재로 내면의 스위치를 사용한다는 것은 꽤 중요한 것이었다.
불필요한 감정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 더 깊은 곳까지 잠식해갈 때, 온몸이 굳어져 버리기 전에 서둘러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아아, 이제야 알았다.
이 또한 자해였구나.
이젠 '이대로는 안돼' 싶을 때, 용기 내어 읊조릴 수 있다.
잠시 내려놓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기에.
'All is well'보다 강력한 나만의 주문.
"차단하겠습니다."
- 달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