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나의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들
비가 내린다.
서울은 비가 오고 있다.
비가 많이 쏟아지면 방충망 청소를 할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다. 다행인 걸까, 가만히 책상 의자에 앉았다.
탁했던 공기가 흘러내려 가고 초롱초롱한 공기가 가득 찬 바깥을 머금고 싶어 창문을 열었다.
투둑.투둑.
적당한 빗소리가 참 좋다. 지금 보니 빗방울이 금속 울타리를 때리는 소리가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엊그제는 또다시 돌아온 나의 생일이었다. 생일 때마다 일부러 주변에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두근거렸다. 이번엔 누가 나의 생일을 기억해 줄까? 어떤 것을 경험하게 될까? 하고. 먼저 말을 하면 축하해 줄 사람들은 많았지만 나보다 먼저 챙겨주는 사람들이 누구일지, 몇 명이나 될지 궁금했다.
최근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중간에 여행을 다녀와서 맥이 끊긴지라 다시 손을 붙이는 것이 많이 어려웠다. 포트폴리오는 늘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왜 이것밖에 안되지? 이걸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 수많은 채찍으로 나를 후려치게 하는 문서다.
그 사이 나의 생일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12시가 넘어가고, 어두운 내 방 안에서 핸드폰 불빛이 눈을 부시게 해서 그제야 알았다.
'생일 축하해'
내가 그렇게 궁금해하던, 나보다 먼저 챙겨주는 사람들이 건네는 축하.
가슴이 뭉클한다.
선물이 제때 오지 못해서 조금 늦어도 되냐는 쭈뼛쭈뼛한 질문들과, 너에게 어울릴 것 같아서 준비했다는 선물들.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시간이 남아서가 아닌, 시간을 내서 직접 쓴 편지.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 중 하나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었던 관계들과 식어갔던 감정들에 회의를 느끼곤 했었다. 과거에 집착하고 현재에는 나태해지는 내가 미웠다. 괜찮아지다가도 한 번씩 아팠다. 긁고 상처가 나고 아물고 또다시 긁어대는 바람에 딱지가 덕지덕지 생긴 나. 그리고 그 위에 폭신한 담요를 덮어주는 사람들.
이날의 모든 것들의 온도가 36.5도를 넘는지, 뜨겁게 느껴진다.
그중에서는 내게 가장 필요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던 말도 있었다.
어른이 되어 만난 세상은 다치며 변화하고 포기할 줄도 아는 것이 답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쭉 지켜오던 굳건한 마음을 버리는 방법을 더 많이 배웠다. 덜 아픈 쪽으로 선택하도록 성장하고 말았다.
그것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었는데 오래된 친구의 편지 속 한 구절이 겨우겨우 얼려두었던 나의 세상을 녹였다.
'너에게는 엄청난 힘이 있다고 생각해.
오래도록, 그 마음이 잠깐 다치더라도 너의 따뜻한 마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도 사람에게서 치유를 받을 수 있다, 뼈저리게 느껴지는 하루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저렸다.
28년 만에 이런 생일은 정말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