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대와 성비, 출신지역 등 광주의 다양한 인구통계학적 수치를 바탕으로 선별된 100명의 시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 작품은 무대 위에 광주사회의 축소판을 구현해 낸다. 시민들의 소소하지만 친숙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제껏 숫자에 불과했던 건조한 통계 수치와 대중의 익명성 속에 숨겨진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목격하게 되는 새로운 관극경험을 만나게 될 것이다.
100명의 연극 아닌 연극, 그 안의 가장 진실한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
100% 광주는 지금까지 내가 본 어떤 연극보다 더 흡입력 있었다. 커다란 스토리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100% 광주는 연극을 통해 미지의 사람과 삶을 통과하게 된다는 지점을 새로운 시도로 보여주었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빠져들 듯 감상하게 되었다.
우선 연극의 프롤로그가 시작되며 뜻 모르게 우연히 광주에 있었을 뿐인 통계상의 사람들과 통계 지수라는 수학적인 개념이 실제가 되어 연극화될 것이라는 예고에 감탄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100명의 광주 시민들이 자신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나열하는 장면에서는 짧은 소개에서도 스스로를 캐릭터 라이징 하여 처음 보는 이들에게 자신을 무엇으로 보여주려 했는지에 집중하여 감상하자 즐거움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물건을, 누군가는 좋아하는 취미를 자랑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것이 작가에 의해 문법이나 필요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닌 스스로 내가 나를 설명하고자 한 의도라는 점에서 그들의 말이 진실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뜻 없이 무대에 오른 살아 있는 인물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관객에게 어떤 캐릭터로서 시행해야 하는 의무나 행동이 없는 상태이다. 그럴 때에서야 정말 진실한 이야기가 터져 나오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내가 저 자리에 서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을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소개하고 보여줘야 한다면 나는 무엇을 활용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어지는 연극에서는 대답 여하에 따라 직접 몸을 움직이며 광주를 살고 있는 ‘나’라는 100명의 사람들을 점점 구체적으로 구축하게 되는 형태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질문자의 말에 일제히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오징어 게임이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과 100% 광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번호로만 분류되며 하나의 캐릭터화가 되어 있다. 하지만 100% 광주에서는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옷과 소품을 들고 나와 자신을 소개한다. 하나하나의 답변이 그 사람을 형성하고 1시간 40분 내내 알게 한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진정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자본주의의 폐해라는 주제부로 밀어 넣어진 캐릭터를 만나게 되었지만 이곳에서는 살아있는 인간을 만나게 된다. 나중에는 내가 정감이 가는 몇 사람을 마주하고 연극 내내 그 사람은 어떤 답변을 했을지 팔로우하게 된다. 물론 연극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면 더 그러했겠지만 나는 단지 스크린 너머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임에도 100명의 친구를 만들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본질이라 함은 이런 것이며 사람을 연극을 통해 만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통계화될 수 있는 간단한 질문 이후에 점점 세세한 질문이 계속되며 무대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사회인 동시에 개개인으로 수없이 파편화되었길 반복하며 다양한 주제를 말해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아픈 지점을 단순히 소재가 아닌 외부의 것으로 밀어놓고 사람에 집중하여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그럼에도 5‧18 민주화운동을 완전히 없었던 일로 치부하지는 않는다. 일상적인 질문에서 시작해서 5‧18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질문은 툭툭 나오며 5‧18 민주화운동을 단순한 주제보단 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삶의 전부가 아닌 일부분만을 차지하는 하나의 요소로 짚고 넘어간다. 사실 후반부에 관객에게 질문을 하며 이 연극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내용일 것이라 생각하고 참여했느냐는 질문에 관객석에 50% 정도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을 때 나 또한 정곡을 찔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안산 하면 세월호, 광주 하면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하나의 문법이 우리의 머릿속에 파고들어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살아 있는 이만큼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연하지만 어쩌면 당연하지 않았던 소재나 요소로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그 안의 살아 숨 쉬는 하나하나의 사람들을 봐야 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정치색, 성인지 감수성 등 개인마다 똑같을 수 없는 다양화된 질문이 반복되며 무대 위 100명의 사람들은 어떤 질문에는 함께 누구보다도 단단히 합쳐졌다가도 어떤 질문에는 간단히 선을 사이에 두고 멀어지며 다가갈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춤추고 싶은 분?이라는 질문에 다 함께 기차놀이를 하며 하나가 되고 100명이나 되는 대가족의 가족사진처럼 함께 포즈를 취하고 한 장의 사진 안에 담기기도 한다. 나중에는 관객들과의 질문을 통해 무대와 관객석의 구분이 사라진다. 예, 아니오로 나눠지는 구분선 하나만으로 그어진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연대가 그곳에 있다. 이것이 실제 사회와 인간관계가 아닐까. 어떨 때에는 유연하게 서로의 공통점을 매개로 하여 착 달라붙기도 하면서도 어떤 때에는 하나의 문장으로 인해 선이 그어져 서로를 향해 넘어갈 수 없게 되는. 그렇기에 이 연극의 무대가 더욱 진실한 사회이자 사람들의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