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神哭), 아홉 개의 샘
“이제… 가야죠.”
박종윤의 목소리가, 지하 기지의 차가운 정적을 갈랐다. 그의 어깨는 이전보다 훨씬 더 무거워져 있었다. 그는 방금, 자신의 과학으로 친구의 죽음을 예언했다. 그리고 동시에, 0.00002%라는, 신의 오차율 같은 희박한 가능성을 목격했다. 그 숫자는 희망이기 이전에, 잔인한 희망 고문과도 같았다.
“어디로 말입니까.”
최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기억을 잃은 대가처럼, 모든 감정이 거세된 기계처럼 건조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꺼지지 않는 복수의 불꽃이 남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크로노스가 보여준, 그 0.00002%의 확률. 그걸 현실로 만들러 가야죠.”
박종윤이 대답했다. 그는 메인 스크린에, 한지운이 목숨을 걸고 보내온 ‘방패’의 역진법을 다시 띄웠다. 수억 개의 데이터 노이즈 속에서 추출된 황금빛 패턴. 그것은 서울의 지도 위에 겹쳐지며, 일곱 개의 빛나는 점을 표시하고 있었다.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화천회가 서울에 새겨놓은 일곱 개의 저주를 파괴하는 겁니다. 그들의 힘의 근원을 하나씩 잘라내고, 하늘의 저 흉터를 불안정하게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지운이가 돌아올 아주 작은 틈이라도 생길 테니까.”
“첫 번째 저주의 위치는?”
장서린이 물었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태블릿에 전투의 모든 변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이제, 공포에 떨 시간이 없었다. 눈앞의 비과학적인 현실은, 그녀에게 풀어야 할 가장 거대한 숙제였다. 박종윤은 지도를 확대했다.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 탐랑성(貪狼星)의 위치. 그것은 서울의 중심이 아니었다. 경기도 외곽. 지도 위에는, 그저 거대한 호수 하나만이 검푸른 색으로 표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신곡저수지(神哭貯水池)’.
“신이 우는 저수지라….”
최민준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뇌리에, 수십 년간 먼지 쌓여 있던 낡은 사건 파일 하나가 떠올랐다.
“이름 한번 불길하군.”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박종윤이 관련 데이터를 화면에 띄웠다.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 시대에 공업용수 확보를 위해 건설된 인공 저수지입니다. 문제는… 이 저수지 아래, 마을 하나가 통째로 수몰되었다는 겁니다.”
화면에, 댐이 건설되기 전의 낡은 흑백 사진이 나타났다. 위성사진과 지적도를 겹쳐 복원한, 이제는 사라진 마을의 모습.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 마을의 이름은, ‘구천리(九泉里)’였다. 아홉 개의 샘이 마르지 않는 땅이라는 뜻. 하지만 그 이름은 또한, 망자가 가는 곳, 황천(黃泉)을 의미하기도 했다.
“미제 사건 파일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최 형사가 말했다. 그는 박종윤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빛바랜 사건 보고서를 화면에 띄웠다.
“댐 건설 당시, 헐값의 보상금과 강제 이주 정책으로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했다고. ‘마을을 떠나느니, 차라리 물귀신이 되겠다’는 저주 섞인 시위가 끊이지 않았지. 그러던 어느 장마철 밤, 원인을 알 수 없는 대규모 산사태가 마을을 덮쳤고, 수십 명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대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서린이 사진을 확대했다.
“잠깐만요. 이 마을… 이상해요.”
그녀가 가리킨 곳. 마을의 집집마다, 지붕 위에 기이한 형태의 솟대가 세워져 있었다. 보통의 솟대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의 모습이라면, 이곳의 솟대는 모두 날개를 접고 땅을, 마을의 중심을 내려다보는 기괴한 형태였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장승이 서 있었다. 그 얼굴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아니라, 무언가 끔찍한 것을 보고 겁에 질린 채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었다.
“이건 단순한 민속 신앙이 아니에요. 이건… 무언가를 막기 위한, 강력한 결계의 형태예요. 이 마을은 처음부터, 무언가 ‘다른 것’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외부의 침입을 막는 게 아니라, 안의 무언가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가두는 형태의 결계라고요.”
“그렇다면….”
서화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는 지도를 보며, 구천리(九泉里)라는 이름의 진짜 의미를 깨닫고 있었다.
“화천회는, 이 마을의 슬픔과 원래부터 존재했던 악의를 이용해, 첫 번째 저주를 완성한 거군요. 그들은 저주를 새로 만든 게 아니에요. 이미 존재하던 지옥의 아가리를, 더 크게 벌려놓은 것뿐입니다.”
네 사람은, 각자의 무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서화는 자신의 낡은 가방에서, 물귀신을 막기 위한 볶은 팥과 천일염, 그리고 옻칠한 나무로 만든 방수 부적들을 꺼냈다. 그녀는 최민준과 장서린에게 작은 호신용 경면주사 주머니를 건넸다.
“물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이걸 몸에 지니고 계세요. 최소한의 방패는 되어줄 겁니다.”
장서린은 수중 탐사가 가능한 특수 시료 채취 도구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음파를 구분하는 소형 소나(음파탐지기)를 챙겼다. 그녀의 가방은, 과학과 오컬트가 기묘하게 동거하는, 이 팀의 정체성과도 같았다. 박종윤은 자신의 모든 컴퓨터 시스템을, 방수가 되는 군용 태블릿 하나에 압축해 넣었다.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정보와 친구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최민준은, 홀스터의 권총을 다시 확인했다. 그는 이것이 통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지만, 이것은 경찰로서의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10년 전 파트너에게 했던 맹세의 증표였다.
“출발하죠.”
최민준이 말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사냥꾼입니다.”
그들의 등 뒤, 모니터 화면 속에서. 하늘의 등대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외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밤 11시. 신곡저수지는, 검은 거울과 같았다. 달빛조차 삼켜버릴 듯한,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바람 한 점 없어, 수면은 기름을 부은 듯 고요했다. 그 표면 위로 떠오른 묽은 물안개는, 마치 수면 아래 잠든 영혼들이 내쉬는 마지막 숨결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기만적인 고요함 속에서, 네 사람은 느낄 수 있었다. 수십 년간 썩지 않고 응축된, 거대한 슬픔의 무게를.
“여기군요.”
박종윤의 차는, 저수지 옆 낡은 선착장 근처에 멈춰 섰다. 흙과 물이 뒤섞인 비릿한 냄새가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태블릿 화면에는, 붉은색 노이즈가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모든 데이터가… 비명을 지르고 있어요. 이곳의 자기장은 중력마저 왜곡하고 있습니다. GPS는 이미 먹통이고, 방사선 수치도 의미 없이 널뛰기하고 있어요. 마치… 거대한 자석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모든 물리 법칙이 붕괴하고 있습니다.”
“저것 좀 봐.”
장서린이 손가락으로 수면을 가리켰다. 그녀는 차마 맨눈으로는 그 광경을 보고 싶지 않다는 듯, 고성능 열화상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서만 바깥을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 속, 얼음장처럼 차가운 수면 위로, 수십 개의 하얀 손자국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물속에서, 수많은 익사체들이 이쪽 세상을 향해 차가운 유리창을 필사적으로 두드리는 것처럼 보였다. 과학적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명백한 ‘죽음’의 흔적이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이 현상을 설명할 과학적 가설을 떠올리려 애썼다. 메탄가스? 수온 차이로 인한 대류 현상? 하지만 그녀의 머리는, 그녀의 핏줄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수살귀(水殺鬼)들입니다.”
서화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썩어가는 나무 선착장 끝에 섰다. 그녀의 눈에는 열화상 카메라 없이도, 그 손자국들의 주인이 보였다.
“이 저수지에 갇힌, 구천리 마을 사람들의 원혼이에요. 살아있는 자의 온기를 느끼고, 자신들의 무덤으로 끌어들이려는 겁니다. 자신들의 외로움을 함께 나눌, 새로운 친구를 원하는 거죠.”
그녀는 미리 준비해 온 팥 한 줌을, 수면 위로 흩뿌렸다. 팥알이 닿은 곳마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물속에서, 수많은 원혼들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 그들의 원한은 너무나도 깊어 작은 주술로는 달랠 수 없었다.
“젠장….”
최민준은 허리에 찬 권총을 움켜쥐었다. 이 보이지 않는 적들 앞에서, 그의 무기는 무력했다. 그는 차라리 형체가 있는 괴물을 원했다. 쏠 수 있고, 벨 수 있는. 하지만 이 깊은 물속의 슬픔은, 그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모든 경험과 훈련을 비웃고 있었다.
“일단, 저주의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서화가 낡은 지도를 펼쳤다. 그것은 수몰되기 전, 구천리 마을의 지도였다. 바람 한 점 없는 이곳에서, 지도의 가장자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저주는, 언제나 가장 강한 원념이 깃든 곳을 중심으로 형성돼요. 마을의 중심.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던 곳.”
그녀의 손가락이, 지도 위의 한 점을 가리켰다. 마을의 유일한 교회이자 학교였던, 낡은 종탑.
“문제는….”
박종윤이 태블릿에 지도를 오버랩시키며 말했다. 간신히 복구한 소나(음파탐지기)가, 물속의 지형을 희미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 종탑은 지금, 저수지 가장 깊은 곳. 수심 50미터 아래에 있다는 겁니다. 댐의 수문 바로 앞, 물살이 가장 거센 곳에요.”
“잠수 장비도 없이, 저길 어떻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뎅- 멀리, 저수지 한복판에서. 둔탁하고, 불길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번.
그것은 공기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땅과 물을 통해, 뼈를 직접 울리는 듯한 저주파의 진동이었다. 마치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것처럼.
뎅- 두 번째 종소리. 고요했던 수면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중앙에서부터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 했다. 물속에서, 수백 개의 창백한 팔들이 솟아 나와 허공을 향해 뻗어왔다. 어떤 것은 아이의 팔이었고, 어떤 것은 노인의 주름진 팔이었다.
“젠장, 모두 차에 타!”
최민준이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선착장의 낡은 나무판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뜯겨져 나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들이 타고 온 차마저, 뒷바퀴가 들리며 물속으로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쇠가 긁히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소리가… 저들을 깨우고 있어요!”
서화가 외쳤다.
“저 종을 멈추지 않으면, 우리도 저들처럼 이 저수지의 일부가 될 겁니다!”
그 순간이었다. 네 사람의 등 뒤, 숲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다섯 번째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손님이 많이 왔구나.”
목소리는 늙었지만, 강철처럼 단단했다. 네 사람이 경악하며 돌아본 곳. 그곳에는, 낡은 사냥복 차림의 노인 하나가 서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그의 한쪽 눈은 오래된 상처로 감겨 있었지만, 남은 한쪽 눈은 매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구식 엽총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누, 누구시오!”
최민준이 경계하며 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노인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저수지의 소용돌이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얼굴에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연민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이 산의 마지막 남은 ‘산지기’다.”
노인이 말했다.
“그리고 저것은, 내 오랜 친구들이지. 내가 어릴 적, 함께 멱을 감고 고기를 잡던….”
그는 엽총을 들어, 소용돌이의 중심을 겨누었다.
“하지만….”
그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친구가 선을 넘으면, 가르쳐줘야 하는 법. 여기는, 산 자들의 땅이라고.”
탕-!
총성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화약의 폭음이 아니었다. 벼락이 내리꽂히는 듯한 굉음과, 맑은 징소리가 뒤섞인, 기이하고 장엄한 소리. 노인의 낡은 엽총에서 쏘아진 것은 쇳덩어리가 아니었다.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순백의 빛 덩어리였다. 빛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미친 듯이 요동치던 소용돌이의 중심에 정확히 박혔다.
키에에에에엑-!
저수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물처럼 비명을 질렀다. 빛이 닿은 곳에서부터, 물이 끓어오르며 검은 증기를 토해냈다. 허공을 향해 뻗어오던 수백 개의 창백한 팔들이, 그 빛에 닿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녹아내렸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했던 거대한 소용돌이가, 거짓말처럼 그 기세를 잃고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물속으로 끌려가던 자동차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다시 내려앉았다.
뎅-
물속에서 울려오던 종소리가, 마지막 발악처럼 한번 더 울리더니. 마침내, 멎었다.
정적. 고요가 돌아온 수면 위로, 짙은 화약 냄새와 함께 성스러운 향 냄새가 기묘하게 뒤섞여 감돌았다. 네 사람은, 이 모든 비현실적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저놈의 종소리가, 내 친구들을 미치게 만드는 게지.”
노인이 엽총에 다시 무언가를 장전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가 장전한 것은 총알이 아니었다. 햇볕에 바싹 말린 복숭아 나뭇가지를 깎아 만든, 작은 나무 탄환이었다. 탄환의 표면에는, 붉은 경면주사로 빼곡하게 범(梵) 자가 새겨져 있었다.
“어르신은….”
서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노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칠지만 맑은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산(山)의 기운. 수백 년간 이 땅을 지켜온,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힘이었다.
“이 땅의 기운을 다루시는군요.”
“다루는 건 아니야. 그냥... 달래는 거지.”
노인은 땅에 침을 뱉었다.
“수십 년간, 그리 살아왔어. 저 물 밑에 잠든 내 친구들이, 너무 외롭지 않도록.”
그의 유일한 눈에, 깊은 슬픔이 어렸다.
“헌데, 얼마 전부터 웬 놈들이 이 물에 더러운 걸 풀기 시작했어. 죽은 놈들한테까지 장난질을 치는, 천벌을 받을 놈들이지.”
그의 목소리에, 차가운 분노가 서렸다.
“내 친구들을… 괴물로 만들고 있어.”
화천회. 네 사람은 동시에 같은 이름을 떠올렸다.
“저희가, 그놈들을 쫓고 있습니다.”
최민준이 권총을 내리며 말했다.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어르신. 저 종을 멈출 방법을 아십니까.”
노인은 대답 대신, 갈대숲이 우거진 곳을 향해 턱짓했다.
그곳에는, 낡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작은 나룻배 한 척이 숨겨져 있었다.
“종을 멈추는 게 아니야.”
노인이 말했다.
“종을 울리는 놈의 심장을, 꿰뚫어야지.”
그는 저수지 한복판, 어둠이 가장 깊은 곳을 노려보았다.
“저 종탑 안에, ‘그놈’이 있어. 이 저수지의 새로운 주인 행세를 하는 놈이지.”
“그게 누굽니까.”
장서린이 물었다.
“누더기 신.”
노인은 짧게 대답했다.
“이곳에 잠든 모든 원혼들의 슬픔과 분노를 기워 만든, 끔찍한 조각보 같은 놈이지. 그놈이 종을 울려, 죽은 자들을 자신의 군대로 삼고 있어.”
“가야 합니다.”
서화가 결연하게 말했다.
“더 늦기 전에.”
네 사람은 노인을 따라, 나룻배에 올랐다. 박종윤은 차에서 간신히, 자신의 태블릿이 든 가방만을 챙겨 나왔다. 노인이 직접 노를 젓기 시작했다. 배는 소리 없이, 검은 거울 같은 수면 위를 미끄러져 나아갔다. 고요했다. 너무나도. 마치 방금 전의 광란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조심해.”
노인이 나지막이 경고했다.
“지금부터는, 산 자의 세상이 아니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 배 주변의 수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수많은 손들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대신.
쿵-
배 밑바닥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부딪혀왔다. 배가 통째로 들썩였다.
“이런….”
박종윤의 소나가, 화면에 거대한 형체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것은 물고기가 아니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뱀과도 같은 형체.
“이무기…?”
“아니.”
노인이 침을 삼켰다.
“저건… 구천리 마을 사람들이 신처럼 모시던, 저수지의 ‘주인’이었지.”
“화천회 놈들이, 저것마저 오염시킨 게야.”
수면 아래, 거대한 그림자가 배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속에서. 수십 개의 붉은 눈동자가. 배에 탄 다섯 명의 산 자들을,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