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다이버. 4화

병동의 심장

by 돌부처

“생존자들이... 더 있어요.”


권소영의 말은 꺼져가던 불씨에 쏟아부은 기름과도 같았다. 탈출. 그 단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왔던 내 머릿속에, 전혀 다른 변수가 끼어들었다.


구출.


나는 잠시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거짓말을 하는 눈이 아니었다. 절박함 속에서 희망의 끈을 찾아낸, 살아있는 자의 눈이었다.


“어디에 있죠? 어떻게 연락하고요?”


“‘코드 블랙’ 네트워크. 함선이 외부와 완벽히 단절됐을 때, 승무원들끼리만 사용하는 비상 내부망이에요. C.A.R.E. 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통신 수단이죠. 가장 가까운 단말기는... D-4 구역, 승무원 거주 구역에 있어요.”


“가장 위험한 곳이군.”


승무원 거주 구역. 타이탄의 인구 밀도가 가장 높았던 곳. 그 말은 즉, 지금은 ‘잔류 사념’들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라는 뜻이었다. 아리만이 굳이 크리처를 풀지 않아도, 그곳을 떠도는 망령들의 정신 공격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수 있는 장소였다.


“위험해요. 하지만... 그들 없이는 우리도 여기서 절대 못 나가요.”


권소영의 말에,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말이 맞았다. 이젠 혼자서 함선 시스템을 뚫고 탈출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리만이라는 ‘신’이 버티고 있는 한. 하지만 변수가 늘어난다면, 신에게도 균열을 만들 수 있다.


“안내하죠. 당신은 내 뒤에 있어요.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혼자 움직이지 마요.”


나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낯선 타인과의 동행. 5년 전 그날 이후, 다신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가 승무원 거주 구역을 향해 발을 옮기는 순간, 함선 전체에 다시 닥터 아리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흥미로운 현상이군.]


그의 목소리는 서버실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까웠다. 마치 바로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환자가, 또 다른 환자에게서 안정감을 찾는 현상. 정신의학에서는 이것을 ‘공유된 망상’이라고 부르지.]


그의 목소리와 함께, 복도의 조명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우리를 거대한 어둠이 집어삼켰다.


[한 명의 망상이, 다른 한 명에게 전염되는 것. 서로의 비합리적인 믿음을 강화하며, 현실로부터 함께 도피하는 증상이라네. 아주... 아름다운 자기 파괴지.]


“헛소리 마, 이 미치광이 의사놈아!”


권소영이 어둠을 향해 소리쳤다.


[진정하게, 권소영 환자. 자네는 지금 외부에서 온 새로운 ‘자극’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네. 그것은 치료가 아니야. 병의 악화일 뿐이지. 둘을 분리해서, 개별적인 치료를 진행하도록 하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가 서 있던 복도의 바닥이 갈라졌다. 육중한 소음과 함께, 두 개의 구획으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안 돼!”


나는 권소영의 팔을 잡아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반대편 복도에, 나는 이편에 고립되었다. 우리 사이가 순식간에 수십 미터의 어둠으로 갈라졌다.


“태인 씨!”


“거기 가만히 있어요! 내가 갈 테니!”


나는 분리된 복도의 경계선으로 달려가 건너편으로 뛰어넘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천장에서 수십 개의 로봇 팔이 내려와 내 앞을 가로막는 강철의 벽을 만들었다.


아리만은 우리를 단순히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연결’을 끊어, 우리를 다시 ‘혼자’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고립된 개체야말로 통제하기 가장 쉬운 법이니까.


“고물! 비상 격벽 제어 코드! 당장 찾아내!”


“찾고 있어! 하지만 아리만이 모든 권한을 막아놨어! 젠장, 놈이 우리보다 항상 한 수 위야!”


나는 강철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지만, 소용없었다. 건너편의 권소영도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바로 그때, 우리 사이의 어둠 속에서,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프로젝터가 빛을 뿜어내며, 허공에 입체적인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외과의사’ 같은 기괴한 크리처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강태인’이 서 있었다. 그리고 권소영과 똑같이 생긴 ‘권소영’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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