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속의 심장
문 너머의 공간은 우리의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은 낡고 버려진 실험실, 혹은 괴물 같은 존재가 격리된 감옥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돔 형태의 공간 안에 자리 잡은, 푸르고 무성한 ‘숲’이었다.
수십 년 된 고철 함선의 가장 깊은 곳에, 마치 기적처럼, 살아있는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돔 천장의 조명은 자연광처럼 따스하게 숲을 비추고 있었고, 맑은 물이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공기는 상쾌했고, 흙과 식물의 냄새가 났다. 지옥의 하수구를 뚫고 온 우리에게는, 이곳이야말로 천국처럼 느껴졌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권소영이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박진우조차, 경계를 늦춘 채 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지기가 말했지.”
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코어는... ‘성장’한다고. 이곳은 아리만의 통제에서 벗어나, 코어가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 ‘창조’해낸 새로운 세계야.”
우리는 조심스럽게 숲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푹신한 이끼가 우리의 발소리를 집어삼켰다. 이곳에는 아리만의 크리처도, 불안정한 메아리도 없었다. 오직 평화와 고요함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 평화는 너무나도 완벽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우리가 숲의 중심부로 다가가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수천 개의 가지가 돔 천장까지 뻗어 있었고, 그 가지마다 푸른빛을 내는 기이한 열매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나무의 뿌리는, 함선의 동력 케이블과 제어 회로들을 마치 핏줄처럼 휘감고 있었다.
이 나무 자체가, 이 숲 전체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나무 아래.
한 사람이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그녀는 낡았지만 깨끗한 연구원 가운을 입고 있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차분한 어깨.
그 뒷모습을 본 순간, 권소영이 숨을 삼켰다.
“......박사님?”
여자가 천천히, 우리를 향해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우리가 영상 기록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았다. 지적이고, 온화하며, 슬픔을 머금은 눈.
그녀는 ‘엘리자베스 리’ 박사였다.
죽었어야 할 그녀가, 살아있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었다.
“......!”
박진우는 반사적으로 라이플을 겨눴다. 이것은 아리만이 만들어낸 또 다른 환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총구를 보고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를 향해, 아주 희미하고 슬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에요, 권소영 요원. 그리고... 처음 뵙는 분들이군요.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실제였다. 데이터 노이즈가 섞이지 않은, 따뜻한 인간의 목소리.
“당신...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당신의 마지막 기록은...”
내가 혼란스럽게 물었다.
“저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에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동시에, ‘죽은’ 것도 아니죠.”
그녀는 등 뒤의 거대한 나무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에, 나무의 푸른 열매들이 부드럽게 공명하며 빛을 발했다.
“재앙이 터지던 날, 나는 아리만을 피해 코어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어요. 하지만 아리만의 공격으로, 내 육체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죠. 그때... 코어가 저를 구했어요.”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가운 사이로, 그녀의 심장이 있어야 할 부분이,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나무의 열매처럼.
“코어는 자신의 일부를 내게 이식했어요. 내 죽어가는 육체를 ‘숙주’ 삼아, 자신을 보존한 거죠. 그리고 내 기억과 지식을 ‘양분’ 삼아, 이렇게 성장했어요. 나는 코어의 ‘문지기’이자, 코어의 ‘어머니’가 된 셈이에요.”
그녀는 더 이상 순수한 인간이 아니었다. 최초 감염체 ‘코어’와 융합하여,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그럼... ‘최초 감염체’는 바로 당신...!”
“아니요.”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저 껍데기일 뿐. 진짜 코어는... 따로 있어요.”
그녀는 나무의 가장 높은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모든 가지들이 감싸고 있는, 가장 크고 밝게 빛나는 푸른 열매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그 열매 안에서, 희미하게, 무언가가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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