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수 없는 약속의 무게
"희망은 좋은 것입니다. 아마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명대사입니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특히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 뱉어내는 희망은 종종 가장 끔찍한 재앙이 됩니다.
리더들은 약속을 좋아합니다.
"우리 회사, 5년 안에 상장할 거야. 그때 되면 너희 모두 부자 만들어 줄게."
"이번 프로젝트만 성공하면, 내가 책임지고 너 승진시켜 줄게."
그들의 눈은 반짝이고, 목소리에는 확신이 차 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그들도 진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진심의 유효기간은 너무나 짧고,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습니다.
약속이 깨지는 순간, 리더는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며 비겁한 변명 뒤로 숨지만, 그 약속을 믿고 자신의 인생을 건 팔로워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립니다.
이것은 '희망 고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으로 타인의 현재를 착취하고, 미래를 저당 잡는 리더의 무책임함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그리고 그 달콤한 독배를 마신 사람들의 영혼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우리는 똑똑히 목격해야 합니다.
펜실베니아의 제지회사를 무대로 하는 한 시트콤의 에피소드는 팬들 사이에서도 '가장 보기 힘든 에피소드'로 꼽힙니다. 그만큼 불편하고, 처참하며,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지점장이 된 지 얼마 안 되었던 마이클은, 지역의 한 초등학교 빈민가 학생들을 찾아가 충격적인 약속을 합니다.
"너희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 전원의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 주겠다!"
아이들은 환호했고, 선생님들은 감격했습니다. 그날부터 아이들은 '스캇의 아이들'이라 불리며, 가난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들에게 마이클은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운명을 바꿔줄 구세주였습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고, 마이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그를 학교로 초대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마이클은 어떻습니까? 그는 억만장자는커녕, 자신의 집 대출금조차 갚지 못해 허덕이는 평범한 월급쟁이일 뿐입니다. 10년 전의 약속은, 그저 기분이 좋아져서 내뱉은 허세였고, "10년 뒤면 내가 부자가 되어 있겠지"라는 막연한 낙관론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학교 강당에 들어섭니다. 아이들은 그를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마이클 스캇 씨, 당신이 우리의 꿈을 이뤄주셨어요!" 그 순수한 눈빛들 앞에서, 마이클은 마침내 입을 엽니다.
"미안하지만... 난 돈이 없어. 대학 등록금을 내줄 수 없어."
강당은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입니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빛이 사라지고, 절망과 분노가 차오릅니다. 선생님들은 경악합니다. 10년이라는 시간, 아이들이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그들이 품었던 미래가 단 한마디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입니다.
마이클은 울먹이며 말합니다.
"대신... 노트북 배터리를 줄게."
이 황당하고 비참한 결말은, 책임 없는 선의가 얼마나 끔찍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잔혹동화입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노트북을 사준 것도 아니고, 고작 '배터리'를 내밀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는 악당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영웅이 되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 없이, 기분에 취해 남발한 약속은 '사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의 10년의 희망을 도둑질했습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스캇의 아이들' 사례는 바로 '스톡옵션'과 '상장'에 대한 약속입니다.
대표는 열정적으로 말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힘들지만, 3년 뒤에 상장하면 우리 모두 돈방석에 앉을 거야. 그때까지만 조금만 더 고생하자. 내가 약속할게, 너희들 인생 책임진다고."
직원들은 그 말을 믿고, 낮은 연봉을 감수하며 밤낮없이 일합니다. 주말도 반납하고, 청춘을 회사에 바칩니다. 그들에게 회사의 성장은 곧 자신의 성공입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 상장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5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는 여전히 어렵거나, 혹은 대표만 배를 불리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지쳐서 물어보면 대표는 말합니다.
"시장이 안 좋아. 1년만 더 기다려봐."
이 희망 고문은 끝없이 반복됩니다. 결국 10년 뒤, 회사는 상장에 실패하거나 헐값에 매각됩니다. 직원들의 손에 남은 것은 휴지 조각이 된 스톡옵션 계약서와, 병든 몸, 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의 세월뿐입니다.
대표는 말합니다.
"나도 최선을 다했어. 사업이라는 게 원래 마음대로 안 되는 거야."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직원들에게 '리스크'를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장밋빛 미래'만을 보여주며 그들의 현재를 착취했습니다. 이것은 비즈니스 실패가 아니라, 도덕적 파산입니다.
대기업에서도 비극은 일어납니다. 팀장은 팀원들에게 은밀한 약속을 건넵니다.
"이번에 티오가 딱 하나 났어. 김 과장, 자네가 이번 프로젝트만 잘 마무리하면 무조건 자네 차례야. 내가 본부장님한테 다 얘기해 뒀어."
김 과장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다른 팀원들을 제치기 위해, 혹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추진합니다. 동료들과의 관계가 나빠지고, 가정에 소홀해지더라도 "승진하면 다 보상받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하지만 인사 발령 당일, 승진자 명단에 김 과장의 이름은 없습니다. 대신 전혀 예상치 못한, 본부장 라인의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팀장은 김 과장을 불러내 술을 사주며 말합니다.
"아이고, 이번에 위에서 갑자기 낙하산이 내려와서...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내년엔 진짜 확실해. 내년엔 무조건이야."
그는 자신의 무능력을 '정치적 상황' 탓으로 돌리며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내년이 되면 똑같은 약속을 또 다른 '희생양'에게 속삭일 것입니다. 그에게 약속은 지켜야 할 부채가 아니라, 부하 직원을 통제하고 부려먹기 위한 가장 값싼 '가상 화폐'일뿐입니다.
가장 약한 고리인 비정규직, 인턴사원들에게 행해지는 약속은 더욱 잔인합니다.
"열심히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게."
이 한마디에 그들은 모든 부당한 대우를 견딥니다. 정규직들이 기피하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야근 수당도 없이 일하며, 온갖 갑질을 웃으며 받아넘깁니다. 그들에게 정규직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계약 종료 시점이 다가옵니다. 회사는 말합니다.
"경기가 어려워서 TO가 안 나네. 계약 연장하고 1년만 더 지켜보자." 혹은, "수고했어. 좋은 경험 했잖아."라며 그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 또 다른 '희망의 노예'를 채워 넣습니다.
이것은 시스템을 이용한 합법적인 사기입니다. 애초에 정규직 전환 계획이 없었음에도, 단지 인건비를 아끼고 말을 잘 듣는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거짓된 희망'을 미끼로 던진 것입니다.
왜 리더들은 감당하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할까요? 그들이 뼛속까지 악인이어서일까요?
첫째, '현실 감각의 결여'와 '낙관 편향' 때문입니다.
시트콤 속 마이클 스캇처럼, 많은 리더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합니다.
"나는 할 수 있어. 10년 뒤면 나는 성공해 있을 거야."
그들은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그리고, 그 환상을 팩트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리더의 헛소리는 팔로워에게는 현실이 됩니다.
둘째, '순간의 위기 모면'과 '인정 욕구' 때문입니다.
당장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거나, 동기 부여를 해야 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미래의 보상'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약속을 할 때 직원들이 보내는 환호와 존경의 눈빛에 중독되어,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허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중에 욕을 먹더라도, 지금 당장 영웅이 되고 싶은' 유아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허무맹랑한 약속의 늪에서 우리는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요?
첫째, 약속의 '근거'를 집요하게 확인하십시오.
리더가 달콤한 미래를 약속할 때, 감동하지 말고 의심하십시오.
"상장하신다고요? 그렇다면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투자 유치 현황은 어떻게 되나요?"
"승진시켜 주신다고요? 그렇다면 인사팀의 승진 규정이나 TO 현황과는 어떻게 매칭이 되나요?"
근거 없는 낙관론에는 냉정한 팩트 체크로 대응해야 합니다. 리더가 구체적인 대답을 못 하고 "나만 믿어"라고 한다면, 그것은 100% 거짓말이거나 헛된 꿈입니다.
둘째, '조건부 계약'을 맺으십시오.
말뿐인 약속을 문서화하거나, 단계별 보상을 요구하십시오.
"3년 뒤 상장이 목표라면, 1년 차, 2년 차 목표 달성 시마다 중간 정산(보너스나 스톡옵션 베스팅)을 해주십시오."
"프로젝트 성공 시 승진이 어렵다면, 그에 상응하는 연봉 인상이나 안식월 휴가를 보장한다는 메일을 주십시오."
미래의 큰 보상을 잘게 쪼개어 현재의 보상으로 치환하는 것, 그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셋째, '플랜 B'를 항상 준비하십시오.
회사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합니다. 회사가 상장에 실패하더라도, 내가 여기서 쌓은 경력과 포트폴리오만으로도 다른 곳으로 이직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나의 운명을 회사의 성공이나 리더의 약속에 '올인'하지 마십시오. 회사는 망해도 나는 살아야 합니다. 당신의 진짜 자산은 스톡옵션 증서가 아니라, 당신의 실력 그 자체입니다.
시트콤의 에피소드 마지막, 마이클 스캇은 분노하는 아이들 틈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옵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눈빛, 배신감과 절망으로 얼룩진 그 표정은 평생 그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약속은 말로 하는 것이지만, 그 대가는 삶으로 치러야 합니다.
리더 여러분, 지킬 수 없는 약속으로 직원의 환심을 사려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가벼운 혀가 누군가의 10년을, 누군가의 청춘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습니다. 줄 수 있는 것만 약속하고, 약속한 것은 목숨을 걸고 지키십시오. 그것이 리더의 무게입니다.
그리고 직장인 여러분, 리더의 입술을 보지 말고 그의 발을 보십시오. 그가 말하는 미래가 아니라, 그가 지금 딛고 있는 현실을 보십시오. 화려한 약속보다 더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늘 하루 통장에 찍힌 야근 수당과, 당신이 완성한 보고서 한 장의 가치입니다. 희망은 타인이 주는 선물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만들어가는 현실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