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균열의 너머
시간이 멈췄다.
아니, 지운의 심장이 멎었다.
문틈 너머의 그것.
어둠과 하나가 된 채, 그것은 미동도 없었다.
기괴하게 꺾인 팔다리.
바닥에 끌릴 듯 긴 머리카락.
그것은 분석대 위 청동 거울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환각.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헛것이다.
지운의 이성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의 본능은 알고 있었다. 그의 터질 듯한 심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저것은 실재한다.
김 교수의 눈동자에 공포를 새겨 넣었던 바로 그것이다.
순간, 그것의 고개가 돌아갔다.
우두둑.
뼈가 어긋나는 소름 끼치는 소리.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점이, 지운을 향했다.
눈동자인지, 혹은 그저 구멍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지운은 느꼈다. 저것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그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몸이 얼어붙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띵-
복도 저편에서 엘리베이터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야간 순찰을 도는 보안팀이었다.
그 소리에, 그것이 반응했다.
스르륵.
마치 연기처럼.
그것은 몸을 일으키는 대신, 그대로 바닥으로 녹아내렸다.
분석대 아래의 어둠 속으로. 아무런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운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등이 차가운 복도 벽에 부딪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손전등 불빛과 함께 보안팀 직원이 다가왔다.
“방금 비명 같은 소리가… 한 박사님?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지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보존과학실 문을 가리켰다.
“안에… 안에….”
보안팀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문을 열었다.
찰칵.
실내등이 켜졌다.
텅 비어 있었다.
깨진 비커 조각만이 바닥에 흩어져 있을 뿐.
분석대 위에는 청동 거울이 고요히 놓여 있었다.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닙니까.”
직원의 목소리는 걱정 반, 의심 반이었다.
지운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것이 사라진 분석대 아래. 바닥에 떨어진, 길고 검은 머리카락 한 올.
그리고 그 옆에 희미하게 남은, 젖은 자국.
그는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보안팀 직원을 밀치듯 지나쳐, 분석대로 향했다.
청동 거울의 표면. 뿌옇던 거울 한가운데에, 작은 손자국 하나가 찍혀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짚은 듯한, 기이할 정도로 작은 손자국.
그 주변으로, 물기가 서려 있었다.
지운은 주머니 속 한지를 꺼내 들었다.
『죽은 자의 것을 산 자가 탐하지 말라.』
이 경고를 보낸 자. 그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CCTV… 지금 당장 10분 전 CCTV 기록 보여주십시오.”
“네? 박사님, 그건 절차가…”
“책임은 내가 집니다. 당장 보여주세요.”
지운의 기세에 눌린 직원이 마지못해 보안실로 그를 안내했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박물관 곳곳을 비추고 있었다.
시간을 돌렸다. 보존과학실 앞 복도.
지운이 문을 열고 나온다. 복도는 텅 비어있다.
그가 바닥의 편지를 줍고는 복도 끝으로 뛰어간다.
아무도 없었다. 편지를 두고 간 사람도, 그것의 형체도.
CCTV에는 오직 한지운, 혼자뿐이었다.
“보셨죠, 박사님. 아무도…”
“됐습니다.”
지운은 보안실을 나섰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과학과 이성의 세계에 생긴 균열. 그 너머를 보았다.
이제 그는 혼자였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오직 증거만이 남아있었다. 주머니 속의 머리카락 한 올.
그리고 이 기묘한 경고가 적힌 한지.
그는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와, 한지를 분석대 위에 펼쳤다.
현미경으로 종이의 섬유질을 살폈다.
보존과학 전문가인 그에게 종이 분석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닥나무 섬유의 배열.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들어진 수제 한지.
그리고 섬유질 사이사이에 미세하게 박혀있는 것.
“이건… 쑥…?”
한지를 만들 때 쑥을 섞어 넣는 공방은 전국에 단 한 곳뿐이었다.
인사동의 작은 골목에 위치한, 오래된 필방.
그리고 그 필방에 종이를 납품하는 곳은 단 한 군데.
지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에 처음으로 이성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깃들었다.
그것은 광기에 가까운 집념이었다.
인사동.
그곳에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