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길

by 돌부처

서울의 밤거리를 가르는 검은 세단 안은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윤도진은 핸들을 꽉 쥔 채, 타이어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거칠게 차를 몰고 있었다. 엔진 소리는 으르렁거리는 맹수 같았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유성처럼 보였다. 목적지는 북악산 스카이웨이. 하진이 영적인 감각으로 감지한 옥새의 이동 경로를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놈들의 속도가 빨라요. 벌써 삼청동을 지나고 있어요.”


조수석에 앉은 하진은 눈을 감은 채 옥 조각과 사인검을 양손에 쥐고 영적인 추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펼쳐진 서울 지도 위에는, 붉은 점 하나가 뱀처럼 굽이치는 도로를 따라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 점은 단순한 위치 표시가 아니었다. 수백 년 묵은 왕조의 권위와, 그것을 더럽히려는 사악한 욕망이 뒤엉킨 검붉은 덩어리였다. 옥새는 비명을 지르며 끌려가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10분 안에 따라잡을 수 있어. 형사 양반, 더 밟아! 엔진 터지면 내가 물어줄 테니까!”


뒷좌석의 이강우가 창문을 내리고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소리쳤다. 그는 이미 전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자동 권총 한 자루와 특수 제작된 성수탄이 들려 있었다. 그의 눈은 사냥감을 쫓는 늑대처럼 번뜩였다.


“꽉 잡아요! 급커브입니다!”


윤도진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꺾었다. 차가 미끄러지듯 코너를 돌았다. 타이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반대편 차선에서 오던 택시가 경적을 길게 울리며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근데 말이야, 아가씨. 백면 그놈이 옥새를 가져가서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단순히 왕 노릇 하려는 건 아닐 거 아니야. 요즘 세상에 옥새가 무슨 효력이 있다고. 대통령 도장 훔치는 게 더 빠르지 않아?”


이강우가 탄창을 확인하며 물었다. 그의 질문은 투박했지만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조선 시대의 옥새는 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에 갇힌, 박제된 역사이자 골동품일 뿐이었다. 법적인 효력도, 정치적인 권위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상징이에요.”


하진이 눈을 뜨며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깊은 우물처럼 어두웠다.


“옥새는 단순한 도장이 아니에요. 수백 년간 한반도를 지배해 온 왕조의 정통성과, 백성들이 왕에게 보냈던 경외심과 복종의 에너지가 응축된 그릇이죠. 영적인 세계에서는 ‘상징’이 곧 ‘힘’이고 ‘법칙’이에요. 백면이 옥새를 손에 넣고 오염시킨다면, 그는 이 땅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지박령들과 잡신들에게 자신이 새로운 왕임을 선포할 수 있어요. 그들의 복종을 강요할 수 있는 명분을 얻는 거죠.”


“아하, 그러니까 귀신들의 대통령이 되시겠다? 투표도 없이 날로 먹으려고 하네. 독재자 나셨구만.”


이강우가 혀를 찼다.


“단순히 귀신들뿐만이 아니에요. 옥새에는 국운(國運)을 좌우하는 힘이 있어요. 그걸 이용하면... 서울의 지맥을 자신의 뜻대로 비틀고 조종할 수 있어요. 인왕산 호랑이 요수처럼 잠들어 있던 재앙들을 깨우거나, 지진을 일으키거나, 전염병을 퍼뜨리거나,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까지도요.”


하진의 말에 윤도진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백면의 계획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치명적이었다. 그는 단순히 힘을 과시하려는 게 아니라, 이 땅의 주인이 되려 하고 있었다.


“저기다! 놈들의 차가 보여!”


이강우가 소리쳤다. 전방 200미터 앞,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검은색 밴 한 대가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번호판도 없는 대포차였다. 밴에서는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도로를 뒤덮고 있었다.


“붙습니다! 충격에 대비하세요!”


윤도진이 액셀러레이터를 바닥까지 밟았다. 엔진이 터질 듯한 굉음을 내며 차가 튀어 나갔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밴의 뒷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검은 복면을 쓴 사내 두 명이 나타났다. 그들의 손에는 소음기가 달린 기관단총이 들려 있었다.


두두두두두!


총구가 불을 뿜었다. 총알이 아스팔트에 박히며 불꽃을 튀겼다.


“젠장! 고개 숙여!”


윤도진이 차를 지그재그로 몰며 총알을 피했다. 앞 유리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가고 사이드미러가 박살 나서 날아갔다.


“이 새끼들이 진짜! 서울 한복판에서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야? 매너가 없네!”


이강우가 창문을 내리고 상체를 내밀어 응사했다.


탕! 탕! 탕!


이강우의 사격 솜씨는 일품이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정확하게 조준했다. 밴의 타이어를 노리고 쐈지만, 놈들의 운전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밴은 요리조리 총알을 피하며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타이어는 방탄 처리가 된 듯했다.


“하진 씨! 뭔가 방법이 없습니까? 이대로 가다간 놓치겠어! 놈들이 산속으로 들어가면 끝장입니다!”


윤도진이 다급하게 외쳤다.


“잠시만요...!”


하진은 사인검을 꺼내 들었다. 좁은 차 안에서 긴 검을 휘두를 수는 없었지만, 검의 기운을 빌릴 수는 있었다. 그녀는 창문을 내리고 검을 밖으로 내밀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때렸다.


“사인검이여, 사악한 기운을 쫓아라! 놈들의 발을 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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