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모처럼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메뉴는 맛있는 삼겹살입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적막합니다.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정치 유튜브를 보며 혀를 차고, 엄마는 인스타그램에서 최신 건강식품 정보를 봅니다. 중학생 아들은 에어팟을 꽂은 채 틱톡 숏폼을 넘기며 킥킥대고, 초등학생 딸은 태블릿으로 로블록스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밥 먹자"라는 말 외에는 대화가 없습니다. 아니,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곧 끊깁니다.
"아빠, 요즘 누가 그런 얘길 해요? 꼰대같이."
"너는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니? 뉴스 좀 봐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각자의 화면 속으로 도피합니다.
이 풍경, 낯설지 않으시죠? 우리는 흔히 이것을 스마트폰 중독이나 사춘기의 반항 탓으로 돌립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훨씬 더 깊고 구조적입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공통의 서사가 붕괴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주범은 바로 AI 알고리즘입니다.
과거를 떠올려 볼까요?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국민 00이 있었습니다. 국민 드라마, 국민 가수, 국민 예능. 전 국민의 50%가 같은 드라마를 보고, 다음 날 학교나 회사에 가면 그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세대가 다르고 성별이 달라도, 우리에게는 공유하는 경험이라는 교집합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하나의 사회로 묶어주는 접착제였습니다.
하지만 AI 시대는 이 접착제를 녹여버렸습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틱톡의 AI는 기가 막히게 내가 좋아할 만한 것만 골라서 보여줍니다. 이를 초개인화라고 합니다. 편리하죠. 내 취향을 저격해 주니까요.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각자만의 알고리즘 감옥, 혹은 디지털 독방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50대 아빠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정치 평론과 골프 영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10대 아들의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게임 스트리밍과 1분짜리 밈 영상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식탁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어도, 그들의 뇌는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행성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서로가 접하는 정보의 교집합이 0에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AI가 쌓아 올린 현대판 바벨탑입니다. 성경 속 바벨탑 사건에서 신은 인간들의 언어를 뒤섞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AI는 우리의 관심사와 현실 인식을 뒤섞어 버렸습니다. 같은 한국어를 쓰지만,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생각 없는 외계인"으로 보고, 자식은 부모를 "말 안 통하는 화석"으로 봅니다. 단순히 문화 차이가 아닙니다. 서로가 기반하고 있는 사실과 세계관 자체가 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 파편화 현상은 가정의 불화를 넘어 사회적 재앙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상식이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해 봅시다. 보통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식입니다. 그런데 이제 공통된 지식이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상식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소리입니다. 반대로 10대들에게는 상식인 밈이나 챌린지가, 3050에게는 암호문입니다.
상식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토론이 불가능합니다. 합의도 불가능합니다. "이게 맞아"라고 주장하면 "내 알고리즘 세상에선 아니던데?"라고 반박합니다. 각자가 믿는 진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끼리끼리 뭉칩니다. 나와 같은 알고리즘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단톡방으로 숨어들어 서로의 생각만 재생산합니다. 이를 에코 체임버 효과라고 합니다. 그 안에서 혐오는 증폭되고, 타인에 대한 이해심은 증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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