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제록 (禁祭錄)] - 52화

왕의 눈물

by 돌부처

박종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천천히 의자를 돌려, 어둠 속에 선 왕을 마주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문장을 내뱉었다.


“…시신이… 한지운 박사의, 아버지입니다.”


정적.

박종윤이 뱉어낸 말은 소리가 되어 공기 중에 흩어지지 않았다. 대신, 납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연구소 전체를 짓눌렀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멎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왕의 뒷모습을 보았다. 폭풍 같은 분노, 혹은 세상을 무너뜨릴 듯한 슬픔. 그 어떤 격렬한 반응이라도 터져 나오리라 예상했다. 친구의 아버지가, 저 미지의 존재 때문에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 당연한 반응이어야 했다.


이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었다. 뱃사공이 왕에게 보내는,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답신이었다. 왕이 ‘소유물’을 건드렸으니, 나 또한 너의 ‘근원’을 건드리겠다는 선전포고. 인간의 가장 깊은 슬픔을 이용한, 가장 비열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왕은, 미동도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길가의 돌멩이가 굴러가는 것을 본 것처럼, 무심하고 냉정했다. 그에게 ‘아버지’라는 단어는,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잊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리의 조합일 뿐이었다.


“그래서.”


왕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 시체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지… 지운아….”


박종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너… 들었어? 아버지… 아버님께서….”

“시끄럽다.”


왕이 손을 들었다.


“그 하찮은 필부의 감상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짐이 묻는 말에 대답하라.”


그 순간이었다. 툭. 왕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이 육체의 주인이었던 영혼이 멋대로 반응한 것이다.


‘아버지….’


한지운의 목소리였다. 왕의 의식, 그 가장 깊은 심연에 갇혀 있던 그의 영혼이, 충격으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기억의 파편들이, 폭풍처럼 그의 정신을 휘몰아쳤다. 어린 시절, 서툰 걸음마를 지켜보던 아버지의 미소. 그 주름진 눈가의 따스함. 처음으로 박물관에 데려가, 유물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던 크고 투박했던 손. 자신의 연구를 인정해주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무뚝뚝한 뒷모습.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깊은 걱정과 사랑.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귀찮다는 듯 끊어버렸던 자신의 차가운 목소리. 그것이 마지막이었다는, 찢어지는 후회.


“크… 으윽….”


왕의 입에서, 그의 것이 아닌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몸을 휘감던 검푸른 패기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서, 위태롭지만 선명한 순백의 빛이 터져 나왔다. 한지운의 영혼이, 왕의 지배에 저항하고 있었다.


“감히!”


왕이 포효했다.


“이 몸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는가! 고작 필부 하나의 죽음 따위에!”


그는 자신의 의지로, 한지운의 기억을 억누르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슬픔과 죄책감. 개얌이에게 주었던 ‘맛없는 기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하고 순수한 감정의 폭풍이 그의 존재를 뒤흔들었다. 그가 그토록 경멸하던 인간의 감정이, 이제 그의 가장 큰 약점이 되어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지운아!”


박종윤이 외쳤다.


“정신 차려! 지금이야! 싸워!”


왕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검푸른 빛과 순백의 빛이 서로를 집어삼키려 격렬하게 충돌했다. 손등의 옥 매미 문양이, 비명을 지르듯 뜨겁게 타올랐다.


“안 돼….”


서화가 신음했다. 그녀는 이 싸움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두 개의 의지가 충돌하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한지운의 영혼이 먼저 부서져 버릴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왕에게 기어갔다. 그녀는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멈춰요… 제발….”


그녀는 왕이 아닌, 한지운에게 애원했다.


“지금 당신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나요. 당신의 복수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어요.”


‘복수….’


그 한마디가, 혼돈의 폭풍 속에 가라앉던 한지운의 의식을 붙잡았다. 그래. 복수.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자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자들. 그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슬픔이, 분노로 변했다. 순백의 빛이, 차가운 강철의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는 왕의 힘을 밀어내는 대신, 그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복수를 위한, 도구로서.


“호오….”


왕이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이제야 좀, 왕의 그릇다워졌구나.”


폭풍이 멎었다. 지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순백도, 검푸른 색도 아니었다. 두 개의 색이 기묘하게 뒤섞인, 깊고 차가운 비취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한지운도, 왕도 아니었다. 두 개의 존재가 위태롭게 하나가 된, 새로운 ‘무언가’였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서화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의 손길은 이전처럼 거칠지 않았다.


“고맙다, 파수꾼.”


그가 말했다.


“덕분에, 길을 찾았다.”


그는 박종윤을 돌아보았다.


“신하.”

“네.”

“저 버러지에게 연락하라.”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흔들림이 없었다.


“시신이 있는 곳으로 길을 열어 왕의 행차를 방해하지 말라, 그리 전하도록 하라.”


박종윤은 수화기를 든 채 잠시 망설였다. 이것은 미친 짓이었다. 경찰에게, 그것도 살인 사건 현장에, 유력한 용의자가 직접 가겠다고 통보하는 꼴.

상식과 법률, 그 모든 것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등 뒤에서, 비취색 눈동자의 왕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단순한 감시가 아니었다. 그의 영혼을 꿰뚫고, 뇌 속의 모든 생각마저 읽어내는 듯한 절대적인 압박감이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최민준 형사의 번호를 눌렀다.


“최민준 형사님 되십니까.”


수화기 너머, 최 형사의 목소리는 피곤과 분노로 잠겨 있었다.


“누구신데 내 번호는….”

“한지운 박사 건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박종윤은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말했다.


“지금 그분께서, 아버님의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가십니다.”

“뭐?”

“길을 막지 마십시오. 누구든 그분의 앞을 막아서면… 왕의 행차를 막는 자는 죽습니다. ”

“지금 나랑 장난해? 당신 어디야, 당장….”


박종윤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그는 왕을 돌아보았다.


“전했습니다.”

“가상하구나.”


왕은 짧게 대답했다. 그는 의식을 잃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서화를 향해 턱짓했다.


“저 계집 또한 챙기거라. 아직은 쓸모가 있을 터이니.”


왕은 그녀를 부축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저 짐을 옮기듯 명령할 뿐이었다. 박종윤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서화를 조심스럽게 부축해 일으켰다. 왕은 그들의 뒤를 따랐다. 박종윤은 자신의 차를 연구소 지하의 비밀 출구로 가져왔다. 평범해 보이는 검은색 세단이었지만, 내부는 최첨단 장비로 개조되어 있었다. 그는 서화를 뒷좌석에 태우고, 왕을 위해 조수석 문을 열었다.


“길을 열어라, 나의 신하.”


왕이 차에 오르며 명령했다. 박종윤은 운전석에 앉아, 차량에 내장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켰다.


국과수 주차장. 최민준 형사는 방금 끊긴 전화를 든 채, 허탈하게 서 있었다.


“왕의 행차…?”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웃음기는 없었다. 그의 감(感)이, 그의 온몸이 경고하고 있었다. 온다.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거대한 무언가가.


“팀장님! 전 병력, 국과수 정문으로 집결시켜 주십시오!”


최민준 형사는 복도를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 끝에 묻어나는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코드 제로! 반복합니다, 코드 제로! 실탄 사용 허가 요청합니다!”


그는 무전기를 든 채, 부검실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방 안에는, 차가운 금속성 소독약 냄새와 함께 그녀의 절망이 공기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장서린은 멈춰버린 메스 손잡이 위로 핏줄이 하얗게 돋아날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부검대 위에 누워있는 끔찍한 미라, 그리고 서류 위에 놓인 피해자의 운전면허증에 번갈아 꽂혀 있었다.


한정호.

그녀가 대학 시절, 뻔질나게 드나들던 성북동 낡은 양옥집의 주인이었다. 언제나 무뚝뚝했지만, 아들의 연인에게는 따뜻한 찻잔을 내어주던, 한지운의 아버지.


“박사님, 당장 여길 떠나야 합니다.”

“무슨 소리예요, 형사님?”

“그 ‘아들’이, 지금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최 형사의 말은, 망치였다. 장서린의 마지막 남은 이성을 부수는. 그녀의 손에서 메스가 땡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운 선배.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의 핵심 용의자가 되어, 자신의 아버지가 기이한 시신으로 발견된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그 순간이었다. 국과수 건물 전체의 불이, 퍽- 소리를 내며 일제히 꺼졌다. 비상 전력마저 들어오지 않았다. 완벽한 정전.


그리고 정문 쪽에서, 수십 대의 자동차가 연쇄적으로 충돌하고 경적을 울리는 굉음이 지옥의 합창처럼 들려왔다. 박종윤이 만든, 혼돈의 시작이었다. 부검실의 창문 너머로,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아수라장이 된 도로를 비웃듯, 단 한 대의 검은 세단이 중앙선을 넘어 유유히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붉은 카펫 위를 걷는 왕처럼. 차는 국과수 정문 앞에 멈춰 섰다.


“왔군….”


최 형사는 권총을 고쳐 쥐었다. 그의 등 뒤에서, 장서린이 숨을 삼켰다. 그녀의 눈에, 차에서 내리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한지운. 그녀가 기억하던, 조금은 어수룩하고 책만 알던 학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몸을 휘감고 있는, 거대한 검푸른 기운. 그녀가 평생을 부정하고 도망쳐왔던, 무당의 피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지운은 정문을 막아선 경찰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가 손을 들자, 굳게 닫힌 철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다. 그는 홀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의 대리석이 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길을 열라.”


그의 목소리가, 건물을 울렸다.


“아비의 마지막 길을, 아들이 배웅하러 왔다.”


그의 앞을 막아서려던 경찰들이, 보이지 않는 압력에 밀려 양옆으로 쓰러졌다. 그 누구도, 감히 그의 앞을 막아서지 못했다. 최 형사는 그 모습을, 부검실 문틈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쏘지 않았다. 그의 감(感)이 말하고 있었다. 총알 따위는, 저 존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뚜벅. 뚜벅.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 그것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마침내, 부검실의 문이


쾅-


소리와 함께 열렸다. 문 앞에, 지운이 서 있었다. 그의 비취색 눈동자가, 방 안의 세 사람을 천천히 훑었다. 최민준 형사. 그리고… 장서린.

하지만 그의 눈빛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마치 처음 보는 가구를 보는 듯한, 무심하고 차가운 시선.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부검대 위에 누워있는 하얀 천에 닿았다.


“모두.”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겨울의 것이었다.


“물러나라.”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부검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방 안의 수증기가 미세한 얼음 결정이 되어 떠다니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최민준 형사는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의 이성은 방아쇠를 당기라고 외쳤다. 눈앞의 남자는 명백한 용의자이자, 상식을 벗어난 위협이었다. 하지만 그의 감(感)은, 그의 영혼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쏘지 마라. 저것은 총으로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저것에게 총알은, 성난 신에게 던지는 돌멩이와 같을 뿐이다.'


“한지운 씨.”


최 형사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갈라졌다.


“당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멈추십시오.”

“네놈이, 감히. 짐에게 가르침을 주려 하는가?”


왕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는 최 형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의 비취색 눈동자는 오직, 부검대 위에 놓인 하얀 천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부검대를 향해 걸어갔다.


뚜벅.

뚜벅.


그의 발소리가, 얼어붙은 정적을 깨뜨렸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장서린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과학자로서의 그녀는, 눈앞의 현상을 분석하고 있었다. 강력한 저주파, 혹은 미지의 에너지장이 주변의 분자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아니면 집단 환각을 유발하는 음파인가. 하지만 무당의 피를 이은 그녀의 영혼은, 알고 있었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격(格)의 차이. 절대자가 내뿜는, 순수한 권능이었다.


“멈춰!”


최 형사가 결국 소리쳤다.


“증거물에 손대지 마!”


왕은 그의 외침을 무시했다. 그는 부검대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시신을 덮고 있던 하얀 천을 들어 올렸다. 드러난 것은, 인간의 시신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바싹 마른 미라. 생명의 흔적이라곤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텅 빈 껍데기. 왕은 미동도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슬픔도, 분노도 없었다. 마치 잘 만들어진 공예품을 감상하는 듯한, 차가운 무심함. 하지만 그 순간.


‘아버지….’


다시, 한지운의 목소리였다. 왕의 심연 속에서, 그의 영혼이 절규하고 있었다. 왕의 비취색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시신을 향해 뻗어 있던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감히…!”


왕이 속으로 포효했다. 그는 이 하찮은 필부의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핏줄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연결고리는 그의 권능으로도 쉽게 끊어낼 수 없었다.


“지운씨, 안 돼!”


그때, 장서린이 외쳤다. 그녀는 공포를 이겨내고, 옛 연인의 이름을 불렀다.


“만지지 말아요! 그 시신은… 오염되어 있어! 정체불명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웬 계집이, 짐에게 명령하는가.”


그의 눈에서, 검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와 장서린을 덮치려 했다.


화악-!


하지만 그 기운은, 그녀에게 닿기 직전에 스르르 사라졌다. 한지운의 의식이, 필사적으로 왕의 힘을 막아낸 것이다.


‘그녀는… 건드리지 마….’


왕은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이 성가신 껍데기와의 주도권 싸움. 그는 다시 시신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미라의 왼쪽 쇄골에 새겨진 기이한 문양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 순간.


화아아악-!


지운의 머릿속으로, 아버지의 마지막 ‘기록’이 폭풍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안개 낀 한강. 낡은 나룻배. 비릿한 물냄새와 함께 스며드는 죽음의 한기.


“아들아… 지운아… 보고 싶구나….”


자신을 부르며, 홀린 듯 배에 오르는 아버지. 그의 얼굴에 떠오른 반가움과 의심. 삿갓을 쓴 뱃사공이, 그에게 녹슨 엽전 하나를 건넨다.


“이 강을 건너는 자는, 노잣돈을 받는 법이지요.”


그것은 뱃삯이 아니었다. 저승길에 오르는 자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혹은 되돌릴 수 없는 계약의 낙인이었다. 아버지가 의심 속에서도 아들을 만나고픈 마음에 엽전을 받는 순간, 그의 몸이 급속도로 말라붙기 시작한다. 생명력이, 영혼이, 기억이 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의 눈에 떠오른 극심한 고통과, 아들을 향한 마지막 그리움. 그리고, 뱃사공이 삿갓 아래에서 고개를 든다. 그의 얼굴에는, 눈도 코도 입도 없었다. 오직, 비웃는 듯한 하나의 거대한 상처만이 있을 뿐이었다.


“크아아아아아-!”


지운의 입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뒤섞인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왕의 분노. 그리고, 아들의 절규. 그의 비명과 함께, 미라가 된 시신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파피루스처럼. 바싹 마른 피부가 갈라지고, 뼈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뱃사공이 남긴 마지막 흔적마저, 이 세상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이런… 맙소사….”


장서린은 눈앞의 비현실적인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먼지가 모두 가라앉았을 때, 부검대 위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녹슨 엽전 하나만이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지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비취색 눈동자는, 이제 그 어떤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오직,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차가운 분노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왕의 분노도, 아들의 분노도 아니었다. 자신의 ‘근원’을 더럽힌 자에 대한, 한 존재의 순수한 살의였다.


그는 최 형사와 장서린을 돌아보았다.


“이것으로, 볼일은 끝났다.”


그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는 부서진 문을 지나, 복도를 걸어 나갔다. 그의 등 뒤로, 최 형사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한지운 씨!”


지운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로비의 의자에 쓰러져 있던 서화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리고, 국과수의 깨진 유리문 밖으로 나서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오직 최 형사와 장서린에게만 들렸다.


“사냥하러 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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