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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와 MBTI로 적합한 직무를 찾아준다고??(1)

HRD 현장에서 벌어지는 위험한 오류

by 박군
HRDer는 논쟁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아무리 권위있는 누군가가 한 얘기라고 해도 톺아봐야 합니다.
HRD담당자마저 논쟁과 토론을 하지 않는다면, 조직 전체에 그것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울러 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내용에 대해서도 반론은 언제든지 격하게 환영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이다. 협상력이나 문제해결, 프레젠테이션 스킬, 보고서 작성 등 기본적인 직무역량 중 많은 부분의 바탕에는 커뮤니케이션이 깔려 있다. 직무뿐 아니라 코칭, 멘토링 등 리더십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기업교육에서도 커뮤니케이션 관련 교육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명제가 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수준은 청자가 결정한다


이는 내 의도를 아무리 온갖 방법을 써서 전달해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면 그 커뮤니케이션은 잘못된 것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내가 말을 좀 어눌하게 해도 상대방이 잘 이해한다면 그 커뮤니케이션은 잘 된 것이다. 결국 상대방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거기에 기반하여 의사소통을 하는 내용이 커뮤니케이션 교육에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타인의 성향을 알기 위해 DISC나 MBTI, 애니어그램 등 수많은 도구가 사용된다. 혈액형이나 별자리에 비해 과학적 방법론으로 검증받은 이런 도구들은 우리가 상대방의 성향을 이해하고 원활한 소통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 소통 과정에서 상대방이 성향에 따라 어떻게 나올 것인지 '예측'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이에 맞추어 대화 방법을 조정하다 보면 좀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물론 여러 학자들에 의해 검증받았다고 해도 이는 전적으로 참고사항일 뿐 여러 상황과 주제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맹신할 수는 없다. 그런데 HRD 현장에서는 이 예측을 과도하게 남발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경우가 있다.


특정 직무에 적합한 성향이 있다고?


우선 여러 성향 진단 도구 중 DISC만 간단히 알아보자. 많은 사람들이 잘 알겠지만 DISC는 사람의 성향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눈다.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그리고 과제(업무) 중심인지 사람 중심인지로 사분면을 그린다. 외향적이며 과제 중심적인 성향은 주도형(Dominance), 외향적이며 사람 중심 적인 성향을 사교형(Influence)이라 부른다. 그리고 내향적이며 사람 중심적인 성향은 안정형(Steadiness), 내향적이며 과제 중심적인 성향을 신중형(Compliance) 혹은 분석형으로 구분한다. (전문가들마다 용어는 조금씩 상이한 경우가 있다.)



물론 사람은 한 가지 성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두 가지 이상의 여러 성향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다. 또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성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 글은 DISC나 MBTI 그 자체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므로 이 정도로 하겠다.


어쨌든 이런 성향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근거하여 그 사람의 성향을 유추하면 대화 전략을 짜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전문가들의 잘못된 행태에 있다.


이들은 강의 장면에서 DISC 유형에 따라 적합한 직무가 있다고 제시한다. 단순히 재미가 아니라 정말로 특정 성향과 특정 직무나 직업을 직접적으로 연결한다. 예를 들면 사교형이 영업 직무에 적합하다거나, 회계 관련 직무에는 분석형이 적합하다는 식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잘못된 전문가들이 전파하는 내용의 위험성


TV에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은 어떤 성향이 적합할까? 위와 같이 강의하는 사람들은 개그맨이 외향적이고 사람을 많이 상대하기 때문에 사교형이 적합하다고 할 것이다(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된다. 유명한 코미디언 몇 명을 예로 들어보자. 유재석, 김구라, 강호동이 모두 사교형으로 보이는가?


실제로 진단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TV에서 보여주는 말과 행동을 보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할 거 같다. 유재석은 다른 출연자를 배려하고 전체를 다독이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에 안정형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김구라는 몸을 쓰기보다는 자신의 지식을 차분히 나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독설도 내뱉는다. 이는 분석형의 특징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강호동은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앞장서 전체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면 주도형의 성향이 강해 보인다.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특정 성향이 특정 직업이나 직무에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다.


코미디언이라고 사교형이 적합한 게 아니라 각자 성향과 스타일에 따라 자신의 방식대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영업 직무도 별생각 없이 본다면 사교형이 적합할 거 같지만 잘못된 것이다. 영업 환경이나 고객 성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 영업이라는 직무 그 자체가 사교형에 딱 적합한 것은 아니다. 이렇듯 특정 직무나 직업에 적합한 성향은 없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특정 성향과 직무를 연결시키면 일단 교육생들이 흥미로워한다. 그런 반응을 보면서 강사도 자기가 정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이런 방식으로 성향 진단을 풀어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여러 문제점을 가진다.


첫 번째, 교육 장면에서 이루어지는 진단은 대부분 횡단적 접근이라는 점을 간과한다. 이는 '특정 시점'에 그 사람의 성향을 진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떤 경험을 쌓아왔는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해왔는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실제로 환경이 바뀌면 진단 결과도 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교육을 하는 그 특정 시점에 실시한 진단 결과 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직무에 적합하다고 조언하는 것은 매우 큰 왜곡을 불러온다.


두 번째, 사람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다. 그리고 성향 진단은 이런 복잡한 인간의 특성을 편의상 구분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 내면에는 모든 성향을 다 가지고 있고 환경에 따라 필요한 성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사람마다 어떤 성향을 발휘하는 게 더 쉬운지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만약 나와 맞지 않는 성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조금 힘들 수는 있겠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래되면 그 성향을 발휘하는데 익숙해진다.


예전 한 중소기업 사장님이 DISC 특강을 듣고 나서 인사팀장에게 앞으로는 안정형만 뽑으라고 지시하는 것을 듣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었다. 본인이 보기에는 안정형 직원이 제일 괜찮아 보인 거다. 이런 상황이 무섭지 않은가? 성향에 따라 직무를 제한하는 것은 인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고, 이는 조직에게도 큰 기회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진단 도구의 의미가 왜곡된다. 성향 진단 도구는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지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 성향에 맞는 직무를 점쟁이처럼 짚어주는 재미에 빠지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보다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인지 알아맞히는 데에만 급급해지고 그걸로 사람을 쉽게 판단해 버린다. 이렇게 되면 혈액형이나 별자리로 보는 성격과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이란 그렇게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성향 진단 도구로는 누군가에게 적합한 직무를 찾아줄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인간은 무궁한 가능성을 내면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진단 도구가 각 학교에도 도입되어 학생들에게 미래의 직업을 추천해주고 있다. 우리 젊은 다음 세대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고작해야 몇 십분 만에 마킹하는 것만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대부분의 좋은 상담 선생님들이나 강사들은 이런 진단 도구를 그 목적에 적합하게 잘 활용한다. 하지만, 깊이 공부하지 않고 어설프게 배운 가짜 전문가들이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 보통 이런 이들은 얕은 지식을 포장하는 달콤한 혀를 가지고 있다. 정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게 딱 맞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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