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종말을 앞당긴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③
자유 낙하 실험이 균열의 시작이라면 목성의 위성 발견은 공고한 벽에 뚫어버린 큰 구멍이었다. 그리고 목성의 위성에 이어 갈릴레오는 로마 방문 중이던 1611년 4월 망원경으로 태양의 흑점을 관찰한다. 망원경으로 태양을 직접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망원경 뒤에 막을 설치한 다음 여기에 생기는 태양의 형상을 관찰했다.
태양의 흑점 관찰은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을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천상의 물체들은 영원불변하고 완전해야 한다. 그런데 달에 이어 태양도 얼룩덜룩한 흑점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이에 독일의 예수회 천문학자인 크리스토퍼 샤이너(Christoph Scheiner, 1575~1650)는 태양의 흑점이 태양 표면이 아니라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흑점의 이동 경로와 주기를 관찰했을 때 구름처럼 태양 표면에 있는 얼룩이라고 주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세계관에 대한 공격은 매우 위협적인 수준으로 커졌다. 우회적으로만 우려와 경고를 보내던 교회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15세기 메디치 가문이 수많은 인문학자들을 후원해 부활시킨 고대 철학이 이제 메디치의 '최고 수학자 겸 철학자'인 갈릴레오에 의해 무너지고 있었다.
거듭된 말실수와 잘못된 정세 판단
갈릴레오는 자신의 발견과 논리로 증거를 제시하면 교회를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교회가 새로운 발견을 거부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성경에 하늘이 움직인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서 자연과학적 관점이 전혀 없이 만들어진 것이 교회의 세계관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증거를 들이밀어도 소용없었다.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사실 성경 구절들의 앞뒤 맥락을 조금만 살펴본다면 상당히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교회는 신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가 그대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성서 무오설).
교회와 의견 충돌이 계속됐지만 갈릴레오는 한 번도 자신의 신앙을 부정한 적이 없었다. 1613년, '카스텔리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소논문에서 '성경은 오류가 없으나 주석가는 실수를 할 수 있다'라고 적는다. 갈릴레오는 신학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다를 뿐이며, 오히려 과학이 신의 섭리와 위대함을 보여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말은 기존 성직자들에게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공격으로 인식됐다. 결국 이 실언은 반대파의 분노를 더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1614년 강림절 넷째 주 일요일인 12월 21일, 명예욕 넘치는 젊은 도미니코 수도사 톰마소 카치니(Tommaso Caccini, 1574~1648)가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강단에 섰다. 그는 수학은 악마의 기술이며 과학자들은 이단이고 정부의 적이라고 공격했다. 특히 갈릴레오를 맹렬하게 비난한다.
성경에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사도행전 1장 11절)'라는 구절이 있다. 카치니는 '갈릴리 사람들(Men of Galilee)'의 라틴어 'Viri Galilei'가 '갈릴레이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했다. 망원경으로 하늘만 쳐다보는 갈릴레오와 그 추종자들을 조롱하는 말장난이었다.
교황청도 갈릴레오의 주장에 대한 검토를 시작한다. 1615년 말, 갈릴레오는 교황청의 검사성성(이단 여부를 조사하는 기관)에 소환된다. 조사를 받고 이듬해 초, 검사성성은 갈릴레오에게 '앞으로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며 지구가 그 주위를 돈다는 견해를 말과 글 어떤 방법으로도 가르치거나 옹호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 경고는 문서로 작성돼 교황청 문서고에 보관된다.
1623년 새로운 교황 우르바노 8세가 교황에 올랐다. 우르바노 8세는 교황이 되기 전 추기경일 때부터 갈릴레오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래서 갈릴레오는 이제 분위기가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릴레오의 착각이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종교재판까지 가지는 않았다. 1543년에 펴낸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가 금서로 지정됐을 뿐이다.
하지만, 갈릴레오가 활동하던 17세기에 교황청은 신교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었다. 거기에 구교와 신교 국가 간의 30년 전쟁까지 터졌다. 때문에 교황청은 반체제 행위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히스테리적으로 반응했다. 우르바노 8세 역시 밤에 새들이 정원에서 지저귀자 잠을 잘 수 없다며 모든 새를 잡아 죽이라고 명령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로마에 있던 피렌체 대사를 비롯해 주변인들은 계속 위험을 경고했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자연에 대해 뛰어난 관찰력을 보여준 것에 비해 정작 자신을 둘러싼 주변 정세는 마음대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상황을 낙관한 갈릴레오는 <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한 대화(Dialogo sopra i due massimi sistemi del mondo, 이하 '대화')>를 1632년에 펴낸다. 이 책은 세 명의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지동설을 증명하는 내용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들에게 날리는 결정타였다.
천동설에 날리는 마지막 결정타, <대화>
당시 모든 책은 출판 전에 로마 교황청의 검열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 1630년, 독일을 휩쓸던 흑사병이 이탈리아까지 번지면서 통신(서신교환 등)이 마비돼 버린다. 이 때문에 <대화>의 원고를 로마로 보낼 수 없었다. 아직 흑사병이 퍼지지 않았던 제네바를 경유해 겨우 로마로 보낸 편지에서 갈릴레오는 피렌체의 종교재판관에게 검열을 받은 후에 출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여러 번의 재촉 끝에 원고 전체가 아니라 머리말과 끝말을 로마로 보내면 검열 후 출판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회신이 왔다. 여기서 갈릴레오는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머리말을 교묘하게 고친다.
몇 년 전에 로마 교황청은 지구가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의견을 금하는 칙령을 내렸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유행하는 위험한 사조를 막기 위한 온당한 조치였다. (중략)
나는 이 책에서 코페르니쿠스 편인 것처럼 꾸몄다. … 지구에서 행하는 모든 실험은 지구가 움직이지 않음을 증명할 수 없음을 밝혔다. … 그러나 자연이 실제로 그렇게 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중략)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믿는 까닭은 … 우리의 종교, 신앙심, 하느님의 전능함, 사람의 사고 능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대화-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하여>, 갈릴레오 갈릴레이 지음, 이무현 옮김, 사이언스북스, 35~36쪽)
1631년, 머리말만 검토한 교황청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왔고 책은 6월부터 인쇄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출판되는 서적들은 보통 라틴어로 쓰였다. 하지만 <대화>는 이탈리아어로 쓰였고 나중에 라틴어 번역본이 나온다. 갈릴레오는 '상식적이고 건강한 이성을 가진 일반인들'이라면 자신의 주장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일반 대중의 지지를 모으고자 한 것이다.
<대화>로 인해 세상은 다시 충격에 휩싸였고 그만큼 반대파들의 공격도 거세졌다. 과학적인 논리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무턱대고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피사 대학의 철학 교수인 시피오 키아라몬티는 역사에 남을 희대의 망언을 내뱉는다.
동물들은 팔다리와 근육이 있어서 움직이지만, 지구는 팔다리와 근육이 없어서 움직일 수 없다
종교재판의 진짜 이유
<대화>에 대한 고발이 교황청으로 빗발쳤고 그제야 교황청의 조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책을 모두 회수하려고 했지만 이미 수없이 팔려나간 뒤라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1633년,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1982년과 1999년 교황청 문서 보관소에 묻혀있던 새로운 문서가 발견됐다. G3와 EE291이라는 분류 번호가 매겨진 이 문서들을 검토한 학자들은 놀라운 주장을 한다.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 회부된 것은 지동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따르면 교회가 갈릴레오의 입을 막으려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참고자료]
갈릴레오 갈릴레이, <새로운 두 과학>, 이무현 옮김, 사이언스북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이무현 옮김, 사이언스북스
마이클 화이트, <교회의 적 과학의 순교자 갈릴레오>,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윌리엄 쉬어&마리아노 아르티가스, <갈릴레오의 진실>, 고종숙 옮김, 동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