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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군 Nov 28. 2020

겔프 VS 기벨린

르네상스로 가기 위한 투쟁(1)

피렌체는 자유를 열렬히 사랑했다. 2백년 가량을 끈질기게 투쟁하면서 먼저 황제의 멍에를 점차 벗어던진 뒤 귀족과 맞서 싸워 그들의 멍에를 떨쳐 버렸으며, 마지막에는 “세계가 목격한 가장 공화국다운 공화국”을 세웠다.(G.F. 영 지음, 메디치, 이길상 옮김, 현대지성사, 29쪽)


피렌체는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봐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이 미켈란젤로 언덕을 찾는다. 이곳에서 길거리 가수의 음악을 들으며 석양이 지는 피렌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미켈란젤로 언덕 근처에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Basilica San Miniato al Monte)’이 있다. 이곳도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곳인데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이 적다. 그래서 더 여유 있게 경치를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성당 마당에 있는 벤치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던 기억은 언제나 가슴 한 켠을 차오르게 한다.


이 성당 내부의 아치를 받치는 기둥 서른여덟 개는 피렌체 외곽에 있던 로마 시대 신전의 기둥 서른여덟 개를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이런 성당 내부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이 성당은 1018년 공사를 시작해 1200년대 후반에 완공되었다. 알 몬테란 ‘언덕 위’를 뜻하는데, 이름을 풀어보면 ‘미니아토 성인을 기리는 언덕 위의 성당’이 된다. 미니아토는 피렌체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피렌체가 로마 제국의 일부였던 250년, 시리아 출신의 왕자였던 미니아토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목이 잘렸다. 그는 자신의 잘린 머리를 직접 들고 비틀거리며 언덕을 올라와 죽었다고 한다. 산 미니아토 성당은 바로 그 자리에 세워졌고 성인의 유골이 안치되었다. 


산 미니아토 성당은 고즈넉한 언덕에 자리 잡고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이 성당은 피렌체가 르네상스로 들어가기 위한 파벌 간 투쟁이 시작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종교권력과 세속권력 모두를 움켜진 주교


다른 모든 문명이 그렇듯이 피렌체의 르네상스도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뛰어난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이 나오기까지 여러 집단과 세력 간 오랜 투쟁의 역사가 있다. 이런 투쟁을 거치면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시민의식이 발전하게 되었다. 르네상스를 열기 위한 첫 번째 투쟁은 겔프(Guelfi)와 기벨린(Ghibellini)의 대립을 들 수 있다.


겔프와 기벨린은 피렌체를 여행하거나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접하게 되는 단어들이다. 겔프는 교황파, 기벨린은 황제파로 흔히 번역된다.


과거 피렌체의 대주교는 종교권력을 가지고 시민들의 신앙생활을 총괄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종교와 삶이 분리되지 않은 사회였다. 주교는 교회법에 기반하여 재판을 주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십일조와 헌금은 물론 세금까지 징수했다. 행정구역은 큰 성당을 중심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성당의 사제는 해당 구역 주민들의 이해관계(각종 임대료 등)를 조정했다. 그런데 이 사제들의 임명 권한은 주교에게 있었다. 그야말로 주교는 종교권력뿐 아니라 세속권력까지 장악한 피렌체의 실제적인 통치자였다.


갇힌 강물은 썩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고위 성직자의 부정부패는 점점 심해졌다. 11세기 피렌체 대주교였던 힐데브란트(Iilderbrand)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성직자의 신성한 의무보다는 권력을 쥐고 재산을 축적하기에 바빴다. 


성직자에게 금지된 부인을 거느리고 슬하에 네 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돈을 받고 사제직을 팔았다. 여기에 전통적인 귀족들이 주교와 결탁한다. 귀족들은 넓은 농장과 영지에서 높은 소작료를 챙겨 부를 쌓았다. 


현재의 두오모 성당 자리에는 산타 레파르타 성당(Chiesa di Santa Reparata)이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주교의 관저가 있었고 그 인근에 귀족들이 주거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사병으로 주교를 보호해 주었다. 귀족들은 주교의 종교적 권위를 받쳐주고, 주교는 신의 이름으로 귀족들의 특권을 보호해 줬다. 세력이 커진 주교는 점점 로마 교황청의 통제권을 벗어나게 된다.

산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 전경. 1530년 독일 황제군이 피렌체를 침공했을 때, 당시 성벽 책임자였던 미켈란젤로가 왼쪽 종탑을 보호하기 위해 매트리스를 쌓아올렸다는 일화가 있다.
성당 내부. 내부에 있는 기둥들은 로마 시대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권력 강화를 위해 지어진 성당


당연히 이런 주교의 행태를 비판하는 수도사들이 등장한다. 주로 개혁 성향을 지닌 도미니크회 소속 수도사들이었다. 교황은 도심 인근의 한 수도원을 주교가 아닌 교황 직속으로 바꾸어 수도사들에게 근거지로 제공해주었다. 여기에 주교와 척을 진 또 다른 귀족 세력들이 합세한다.


반대세력의 공격이 커지자 힐데브란트 대주교는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종교권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를 위해 성당을 건축하는데 바로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Basilica San Miniato al Monte)이다. 


산 미니아토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는 얘기에 순박한 시민들은 몰려들었고 자신들의 재산을 바쳤다. 성인의 유골은 그 자체가 절대적인 종교적 권위를 상징했다. 그래서 유명한 성당들 중에는 예수나 성인들의 시신 일부와 각종 성물을 안치한 곳이 많다.


주교의 재산은 더욱 불어났다. 이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주교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성당에 기부한다. 하지만 성당의 재산 관리인으로 자신의 아들을 임명한다. 재산을 지키기 위한 꼼수였다.


수도사들이 힐데브란트 주교의 부정부패에 대한 항의를 하기 위해 산 미니아토 성당을 찾아갔다. 하지만 주교의 부인이 앞을 막으며 자신에게 안건을 얘기하면 주교에게 전해주겠다고 말한다. 타락한 주교의 정부가 거만하게 앞길을 막자 수도사들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수도사들은 주교와 부인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돌아갔고 200년 이상 이어지는 대립의 시작이 된다. 


당시에도 미니아토 성인의 이야기는 주교가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지어 내었고, 성당 내부에 안치되어 있는 유골도 가짜라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여러 현대 학자들도 여기에 동의한다. 진위가 어찌 되었든 주교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미니아토 성인을 이용한 것은 분명하다.


성당 내부의 제단. 저 제단 안쪽에 성미니아토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기벨린과 겔프의 시작


교황은 이러한 주교를 두고 볼 수 없어 징계하려고 했다. 그러자 주교는 오히려 독일 황제(신성로마 제국)에게 뇌물을 바치며 충성을 맹세한다. 당시 황제와 교황은 이탈리아의 주도권을 놓고 대립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교가 교황의 적과 손을 잡고 대항하니 교황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이 주교와 전통 귀족 세력들이 훗날 피렌체의 기벨린파(황제파)가 된다.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개혁적인 수도사들과 귀족들은 겔프파(교황파)가 된다. 주교의 권력욕에 의해 건설된 산 미니아토 성당과 거기에서 수도사들이 모욕을 당한 뒤 시작된 두 집단의 대립은 12세기 말까지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겔프파에게 패배한 기벨린파는 피렌체에서 추방되었다하지만 1260년 테아페르토 전투에서 기벨린파가 이기자 이번에는 겔프파가 쫓겨났다이런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피렌체는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이 두 파벌의 마지막 충돌은 1289년 캄팔디노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Battaglia di Campaldino)였다겔프파가 승리한 이 전투에 당시 젊은 단테도 참전했다그동안 상대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쌓였던지 겔프파는 기벨린파를 처참히 살육한다그 현장을 목격한 단테는 “노예 같은 이탈리아(Serva Italia)”라며 탄식했다.

 

이후 기벨린파는 힘을 잃고 서서히 역사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기에는 아직 더 많은 투쟁이 필요했다겔프와 기벨린의 대립은 끝났지만이후 겔프 백당과 흑당귀족과 신흥 상인의 싸움이 다시 시작된다그리고 부유한 상인에 대해 자신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노동자의 투쟁도 기다리고 있었다


[참고자료]

성제환 <당신이 보지 못한 피렌체> (문학동네)
조르조 바사리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이근배 옮김, 한길사)

김상근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21세기 북스) 

리사 맥개리 <이탈리아의 꽃 피렌체> (강혜정 옮김, 중앙북스)

G.F. 영 <메디치> (이길상 옮김, 현대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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