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신화의 땅이다. 제주 사람들은 섬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여러 신들을 받들며 억척스럽게 삶을 일구어 왔다. 하지만,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환경 뿐만이 아니었다. 육지와 다른 기후 덕분에 얻을 수 있는 특산물은 언제나 수탈의 대상이었다. 제주 사람들은 자신들의 식량보다 중앙 정부에 상납할 특산물 생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했고 마음대로 섬을 떠날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섬 사람이라는 이유로 육지 사람에게 천시받아야 했다.
이런 억압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려 시대에는 몽골 제국이 일본 정벌의 전진 기지로 제주를 이용했다. 이 때문에 말(馬)이 제주의 특산품이 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프랑스에서 온 파란 눈의 신부들에게도 억압을 받아야 했다. 신부들은 고종이 직접 하사한 "여아대(如我對, 짐을 대하듯이 하라)"라는 패를 내세워 제주 사람들을 핍박했다. 이로 인해 민란이 일어났고 나라는 불합리를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민란의 장두 이재수는 처형되었고 결국 변한 것은 없었다. 이후에 제주를 지배한 일본은 제주 사람들을 동원해 제주 곳곳에 침략 전쟁을 위한 비행장을 세웠다. 여기서 이륙한 비행기들은 중국 대륙으로 날아가 폭탄을 떨구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제주를 최후의 결전을 위한 전장으로 만들기 위해 남쪽 해안 절벽에 굴을 파고 포대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사람들은 매번 다시 일어났다. 해방 이후에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학교를 세우며 미래를 준비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또다시 권력의 총칼 앞에 허물어졌다.
이렇게 오랜 기간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곳곳은 피로 물들어야 했다. 그야말로 보기 좋은 곳이 죽이기도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제주의 풍광은 눈부시게 아름다우면서도 시리도록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