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은 '전라도 놈들은 믿을 수 없다', '전라도 놈들과는 엮이지 마라'와 같은 말을 거리낌없이 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회사 상사 중 한 분이 다른 부서의 누군가를 언급하며 '쟤 전라도 출신이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맥락상 분명히 부정적인 의미였다.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호남에 대한 혐오는 매우 일상적이었다. 물론 어느 지역이든 그 지역에 대한 농담이나 비하하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호남에 대한 것은 그 강도가 달랐다. 이는 권력이 의도했던 것이고 지금까지 매우 잘 먹혀 들었던 전략이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호모 사케르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쓰이던 말인데 아감벤은 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는 생명(vita uccidibile e insacrificabile)
- <호모 사케르>,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진우 옮김, 새물결, 45쪽
희생물로 바칠 수 없다는 건 제사에 쓰일 수 없다는 것, 즉 신성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죽일 수는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살해한 자에 대한 사면'이 가능하다. 그리고 기득권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일반 대중에게 호모 사케르에 대한 살해를 허락하거나 부추기기도 했다. 고대에는 노예가 호모 사케르였다. 그래서 주인은 자신이 소유한 노예의 팔다리를 자르고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다. 중세에는 보호해 줄 남자 가족이 없는 여성들을 '마녀'로 몰았다. 나치에게는 유대인이 유용한 호모 사케르였다. 그렇게 대중들이 호모 사케르에게 분노와 혐오를 쏟아내는 동안 기득권은 뒤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은 호남이라는 지역 전체를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었다.
다른 지역들이 학살 피해자 개인들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 입을 막았다면, 호남은 지역 전체에 빨갱이라는 낙인이 새겨졌다. 그렇게 호남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대한 호모 사케르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어떤 집단에게는 이런 행태가 유효하게 재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집단의 사람이라고 해서 억울한 죽음을 '죽을 만했다'라며 합리화할 순 없다. 민간인 학살은 대한민국 전체의 공통된 아픔으로 기억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