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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마조히즘: 성향인가 이상행동인가

by 따뜻한꼰대 록키박

고통 속 쾌락, '마조히즘'은 어디에서 오는가?


마조히즘이란 무엇인가

마조히즘(Masochism)은 타인으로부터 신체적 혹은 심리적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쾌락을 느끼거나 만족을 얻는 심리적 성향 또는 행동을 말한다. 이는 단순한 고통 수용이 아닌, 고통이 존재해야만 만족이나 안정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흔히 '성적 일탈'이나 비정상적 성향으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자기 정체성, 권력 관계, 심리적 안정에 대한 복합적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반드시 성적인 맥락이 아니더라도 마조히즘적 행동이 관찰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이러한 행동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직장에서 무리한 요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탓하는 태도,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희생하거나 감정적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그 관계를 유지하려는 심리가 그 예다.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자기부정이나 자기처벌의 패턴 또한 마조히즘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마조히즘은 특정 집단만의 성향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심리 이면에 존재하는 감정일 수 있다.


역사적 기원과 학문적 발전

마조히즘이라는 단어는 19세기 오스트리아 작가 레오폴드 폰 자허-마조흐(Leopold von Sacher-Masoch)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는 소설을 통해 고통 속에서 쾌감을 느끼는 주인공을 그려냈고, 프로이트를 비롯한 정신분석학자들이 그의 작품을 성적 도착 경향의 사례로 분석하면서 용어가 정착됐다. 프로이트는 이를 성적 일탈 행동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현대에 이르러 마조히즘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임상심리학에서는 정신질환과 관련된 성향 진단 및 치료에 활용되며, 성심리학에서는 성적 취향과 성향 분석 연구의 주제가 된다. 범죄심리학에서는 가해자·피해자 관계 분석에, 사회학에서는 권력관계와 자기희생 구조 분석에 쓰인다. 문학비평에서는 등장인물의 심리와 내적 갈등을 해석하는 도구로, 대중문화연구에서는 BDSM 및 성적 코드 분석에 활용된다. 상담치료 분야에서는 관계 중독과 자기파괴 행동 상담에, 철학에서는 욕망과 자아 인식의 존재론적 고찰에, 법학에서는 동의 기반 성적 행위의 합법성 연구에, 영화연출에서는 인간 심리의 심층 묘사에 이용되고 있다.


현대 정신의학의 관점

현대 정신의학에서 마조히즘은 '성적 마조히즘 장애(Sexual Masochism Disorder)'로 분류된다. DSM-5 진단 기준에 따르면, 고통받는 환상이나 행동이 일상생활에 현저한 지장을 줄 정도로 반복될 때 병리로 간주한다. 임상심리학에서는 이를 성도착 장애의 일종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마조히즘이 병리적인 것은 아니다. 최근 심리학계는 마조히즘을 더 넓은 관점에서 해석한다. 성적 쾌락뿐 아니라 감정적 불안정성, 자기 처벌,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자기파괴적 심리까지 마조히즘적 성향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성인 간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BDSM 관계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거나 관계 만족도를 높이는 경우도 많다. 최근 연구에서는 성적 마조히스트들이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자기 인식과 감정 조절 능력을 보일 수 있다고 분석되었다.


생각보다 흔한 마조히즘적 성향

이런 성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흔하다. 미국 킨제이 연구소(Kinsey Institute)의 2017년 연구에 따르면, 성인 남녀의 약 12~14%가 BDSM(속박, 훈육, 지배, 복종, 가학, 피학) 성향을 경험해봤다고 답했다. 이 중 30%는 "고통을 통해 더 큰 감정적 친밀감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국내에서도 주목할 만한 통계가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가 2021년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8%가 "고통이 관계 유지에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 응답자의 35%는 "수동적 역할에서 안정감을 느낀다"고 응답해, 사회적 맥락과 성 역할 인식이 마조히즘적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줬다.


일상 속 마조히즘의 다양한 얼굴

이러한 경향은 성적 맥락을 넘어 현대사회 전반에서 나타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자기희생적 태도나 권위적 관계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안정감을 느끼는 문화적 마조히즘이 종종 관찰된다. 직장 내 수직적 조직문화에서 상사의 폭언이나 과도한 업무를 '참아야 할 일'로 받아들이고 자기비난으로 이어지는 태도는, 스스로 고통을 내면화하며 그 안에서 일종의 정체성과 안정감을 찾는 마조히즘적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직장 내 상하관계에서 과도한 희생이나 억압을 내면화하고 이를 당연시하는 태도가 그 대표적 예다.


SNS에서 자기비판이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반복적으로 노출하며 '좋아요'나 '공감'을 구하는 행위 역시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자기 처벌적 태도일 수 있다. 한편, 동의와 안전이 확보된 조건 하에서 이루어지는 성적 역할극에서는 이러한 마조히즘적 행위가 심리적 해방이나 관계의 긴장 완화로 작용하기도 한다.


정신의학계는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환자 중 일부가 자기 처벌적 사고패턴과 수동적 태도를 지속하며 반복적으로 고통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보고한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마조히즘 성향의 캐릭터가 종종 등장하여 극적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신호로서의 마조히즘

마조히즘은 분명 병리적 측면을 지니지만, 모든 경우를 질환으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그것은 자아가 고통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거나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는 복잡한 심리적 기제일 수 있다. 권력, 감정, 정체성이라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괴롭히며 존재감을 확인하고, 그 고통을 통해 안정감을 얻으려 한다.

마조히즘은 병이 아니라 신호다. 그 신호를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타인뿐 아니라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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