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걸은 회복의 기록
두브로브니크는 처음부터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렸다.
이 문구가 단순히 물리적 아름다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세월을 견뎌온 고도의 문화적 가치와
크로아티아인의 자부심이 그 이름 안에 응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도시를 걷기 시작하면서,
그 찬란한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무게를 느끼게 된다.
1991년, 크로아티아의 독립 선언은 곧 폭풍의 시작이었다.
세르비아가 주도하던 유고 인민군은 이 도시를 포위하고 공격했다.
도시는 군사적 가치가 아닌,
상징 그 자체로 공격받았다.
크로아티아인의 자부심이자 문화유산의 중심이던 이곳을 무너뜨리면,
그들의 마음까지 무너질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아직도 가장 참혹하게 기억하는
1991년 12월 6일, '검은 금요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구시가지에
수백 발의 포탄이 쏟아졌다.
오랜 시간 붉은 기와로 이어지던 지붕들은 불에 타 무너졌고,
수도원과 성당, 귀중한 고문서와 장서들까지
속수무책으로 사라졌다.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들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두브로브니크가 불타는 장면은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었고,
인류의 문화유산이 무너지는 모습에
수많은 이들이 경악하며 분노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뒤,
도시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를 되찾기 위한
기나긴 복원의 여정을 시작했다.
단순히 건물을 다시 짓는 것이 아니었다.
그 시절의 모습 그대로 되돌리기 위해
전통 가마부터 다시 지어야 했다.
크로아티아의 역사가 담긴 붉은 기와를 구워내기 위한 헌신이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시간의 층위를 다시 쌓아 올렸다.
수많은 나라의 손길과 마음이 모여,
몇 년에 걸쳐 두브로브니크는 기적처럼 다시 태어났다.
1998년, 이곳은 비로소
유네스코의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에서 제외되며
다시 평화로운 도시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시의 복원 과정을 상상하며
회복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회복은 거창한 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조각들이 다시 제 자리를 찾는 과정이었다.
전통 방식으로 구운 기와 한 장씩을
다시 얹어 올린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작은
조각 하나가 제자리를 찾을 때부터
다시 시작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지금 걷는 이 평화로운 거리는,
바로 그 회복의 증거였다.
그렇기에 발을 내딛는 순간순간이 더없이 소중했고,
딸과 나란히 걷는 이 걸음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마치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듯,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꾹꾹 눌러 담으며 도시를 깊이 음미했다.
숙소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구시가지로 향했다.
호스트는 걸어서 15분이라 했지만, 막상 걸어보니 그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오전 10시 무렵이었지만 태양은 이미 강렬했고,
구시가지로 향하는 좁고 경사진 골목마다 계단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두브로브니크는 평지가 아닌 가파른 바위 지형 위에 자리 잡아은 도시다.
그래서 도시로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바다도, 성벽도 아닌 이 끝없는 계단들이었다.
문득 ,
이 계단은 단순한 도시 구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살아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삶의 지형'에 가까웠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뻐근해질 무렵에야,
비로소 우리는 도시의 맨얼굴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필레 관문을 지나 구시가지에 들어선 순간,
눈앞에 펼쳐진 인파에 숨이 턱 막혔다.
오노프리오 분수 앞은 전 세계 여행객들로 가득했고,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졌다.
수많은 여행자의 로망이자 동경이었던 이 장소 위에
우리의 발걸음이 겹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참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성 블라이세 성당으로 들어섰다.
둥근 돔과 하얀 외벽이 고풍스러운 정서를 자아냈고,
내부의 붉은 좌석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낮의 열기는 멀어졌다.
수호성인이 두브로브니크의 모형을 들고 서 있는 조각상을 바라보며,
짧은 정적 속에서 한 도시의 내면은
길 위의 시간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는 걸 알았다.
광장을 걷다 만난 군두리치 광장에서는
현지인들이 올리브유, 말린 무화과 같은 지역 특산물들을 펼쳐놓은
작은 재래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활기차지만 소박한 그 모습 속에서
이 도시의 살아 숨 쉬는 일상이 느껴졌다.
구시가지의 동쪽 끝, 구 항구에 서면
돌담과 붉은 지붕, 파란 하늘과 바다가
한 장의 풍경화처럼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사람들로 가득하던 구시가지의 소음을 뒤로하고
성벽 바깥으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마치 시간의 소음이 꺼진 듯 조용한 슐리치 해변이 펼쳐졌다.
사람 냄새 가득한 구시가지를 벗어나 성벽 밖으로 나가면,
거짓말처럼 고요한 슐리치 해변이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는 인파에 휩쓸려 1분이 1초처럼 빠르게 흘러갔다면,
이곳에서는 1분이 1시간처럼 느긋하고 길게 느껴졌다.
같은 시간이라도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여행이 끝난 뒤 마음에 남는 것은,
바쁘게 돌아다닌 관광지에서의 기억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머물렀던,
그 느릿한 시간들이었다.
진짜 소중한 시간은 속도계로 잴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 남겨진 깊이로 알 수 있는 법이다.
해변의 고요함에서 벗어나 숙소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해결한 뒤,
늦은 오후에 다시 두브로브니크의 밤을 맞으러 나섰다.
붉게 물든 노을이 도시의 실루엣을 부드럽게 감쌌다.
저녁노을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
낮의 열기가 식은 대리석 바닥 위로
꿀처럼 녹아내린 가로등 불빛이 도시의 윤곽을 어루만졌다.
수백 년의 발길에 반질반질하게 닳은
돌길은 은은한 광택을 뿜어냈고,
바닷바람을 머금은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가볍게 닿았다.
발소리마저 고요한 골목 안으로 울려 퍼지는 밤이었다.
낮 동안의 소란스러움이 걷힌 자리에는,
수세기 전의 공기와 오늘의 밤바람이 경계 없이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마치 성벽의 돌 하나하나가 긴 잠에서 깨어나,
지나간 시간의 이야기를 조용히 읊조리는 듯했다."
이곳은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였다.
성 안 어귀의 작은 카페에 앉아
낯선 도시의 밤과 함께 잔을 나누었다.
대성당의 웅장한 아치 아래에 앉아 올려다본 하늘에는
지상의 불빛에 가려 별 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벨벳처럼 깊고 아득한 어둠이 펼쳐지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웃음소리와
잔 부딪히는 소리만이 이 고요를 천천히 채웠다.
마음속 복잡한 생각들은
이 도시의 밤공기에 씻기듯 조용히 가라앉았다.
두브로브니크는 그저 예쁜 해안 도시가 아니었다.
무너졌지만 다시 일어선, 상처 위에 피어난 회복의 도시였다.
그 모든 복원 과정은 수많은 나라의 손길과 마음이 모여 돌아온 결과였다.
"도시는 결코 혼자 힘으로 복원된 것이 아니었다.
무너진 돌을 일으켜 세운 수많은 손길처럼,
그 사실은 지금 내 곁을 묵묵히 걷고 있는
딸의 존재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내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수많은 이들의 온기와 도움이 필요했던 지난날처럼,
이제는 그 넘치는 사랑을 먹고 단단하게 자라난
딸이 거꾸로 서툴고 여린 엄마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마치 딸을 통해,
세상의 수많은 손길이 다시 나를 키워내고 있는 기분이었다.
회복은 결국 관계에서 일어난다.
사람은 혼자보다,
함께 걸을 때 더 잘 회복된다는 사실을,
엄마인 나는 딸과 함께 걷는 이 도시 위에서 다시금 배웠다.
숙소 테이블 위에 놓인 차 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일 오전 11시 30분,
두브로브니크 공항에서 이 열쇠를 반납하는 순간,
우리의 첫 렌트카 여행은 공식적으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자그레브로 돌아가기 위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셈이다.
기억의 필름이 되감겼다.
처음 낯선 이국땅에서 핸들을 잡았을 때,
내 손바닥은 긴장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세계적인 절경이라 칭송받는 아드리아해의 해안도로였지만,
내 눈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끝이 보이지 않는 구불구불한 커브 길만 들어왔다.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야."
핸들을 꽉 쥔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나는 무서움에 안절부절못했었다.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과 암호 같은 도로 표지판 앞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구원한 것은 조수석의 딸이었다.
"엄마,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붙어봐."
딸의 차분한 목소리는
내비게이션보다 정확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어느새 이방인의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는 베테랑 운전자가 되어 있었다.
운전이라는 낯선 도전,
낯선 마트에서 서툰 영어로 장을 보고,
숙소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며 밥을 해 먹던
그 소소하고 불편했던 일상들.
모든 것이 조금씩 어설펐기에,
그래서 더 선명하게 기억될 시간들이었다.
우리가 달려온 1000km.
그 길 위에는 구글 지도 대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만의 지도'가 그려졌다.
자그레브의 분주한 도심 회색빛에서 시작해,
플리트비체의 시리도록 푸른 초록빛을 지나,
아드리아해의 눈부신 코발트블루를
옆구리에 끼고 달렸던 해안도로를 거쳐,
마침내 이곳 두브로브니크의 붉은 지붕까지.
그 마음의 지도 위에는
아찔한 절벽 길에서 터져 나온 나의 낮은 비명과,
"엄마 표정 좀 봐"하며 웃던 딸의 웃음소리,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풍경에 압도되어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던 침묵의 순간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딸의 손끝이 가리킨 방향과
나의 시선이 머물렀던 풍경이 겹쳐져 완성된 지도.
그것은 그 어떤 기념품 가게에서도 살 수 없는 우리의 보물이었다.
렌트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행 중이었다.
두브로브니크의 밤이 알려주었듯,
낯설고 어두운 길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배웠다.
창밖으로 두브로브니크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 하루와 밤은,
오래도록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서 꺼지지 않는 등대처럼 조용히 빛날 것이다.
"지도는 접었지만, 우리 안의 용기는 이제 막 펼쳐졌다!"
오전 11시 30분, 두브로브니크 공항.
손때 묻은 차 키를 건네며 1,000km의 대장정이 막을 내립니다.
아찔한 절벽과 낯선 도로 위에서
두려움에 떨던 엄마를 목적지까지 이끈 건,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조수석의 딸이었습니다.
"너는 나를 보았고, 나는 길을 보았다."
트렁크가 아닌 마음에 '용기'라는 짐을 싣고
이제 다시 일상이라는 여행을 시작하는 두 사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지도를 완성한 모녀의 마지막 기록!
<에필로그. 1,000km, 우리만의 지도>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