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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pr 16. 2020

여전히 사랑이 서투른 너에게

사랑에 아파하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2


친구야, 나는 얼마 전 새벽 갑작스레 울린 전화음을 기억한다. 수화기 너머 들려온 울음소리에 들던 잠도 다 깨어 그대로 아침을 맞이했던 그날도 기억한다. 그 날 이후 너에게는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지, 너의 생활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 궁금한 건 많았지만 선뜻 그 물음을 입 밖으로 꺼내기는 꽤나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그 전화를 받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내게 상대의 장점을 늘어놓고 행복하다며 아낌없는 감정을 보였던 너였기에,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정말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 어떤 깊은 사정도 모르는 내가 감히 위로랍시고 껍데기만을 가진 아무 말이나 해줄 수도 없었다. 너는 내게 그 순간 어떤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할까,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게 너를 위한 걸까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나에게 털어냄으로써 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씻겨 내려가기를. 길어도 기다려주는 것, 너의 호흡을 살피는 것, 너의 곁에 상처 받은 그 마음을 함께 안고 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게 내가 너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의 전부였다.


너의 아픔을 전부 헤아리진 못하지만, 모두 이해한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내가 너에게 건넬 수 있는 작은 위로가 있다면 나 역시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것. 아파도 봤고, 울어도 봤고, 어쩌면 긴 시간을 힘겨워했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정신 못 차릴 만큼 아파하고 겪고 보니 그 시간만큼이나 나는 성숙해져 있었다. 이제는 그 상황을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우물 안에만 갇혀 살던 개구리가 그제야 우물 밖이 어떻게 생겼고, 얼마나 넓은지 알게 되었다고 하면 조금 이해가 되겠니. 그러니 슬퍼하고 아파한다 해도 전혀 유별나지 않다는 것. 그 감정에 충실할수록 너는 한층 더 나아지고 성숙해져 있을 것이다.


사랑이는 말을 대개는 좋은 말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썩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늘 후회되고 아픈 거거든. 순간적으로 볼 땐 참 좋은 말이지만, 길게 보면 아프기만 한 말이거든.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랑이 있지 않니. 가족과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일과의 사랑. 그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하지. 이 모든 사랑이 어떻게 늘 행복하고 좋기만 하겠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말이야, 할머니를 작년에 잃었거든. 명절이면 늘 ‘더 먹어라, 이것도 먹어라’ 끊임없이 내 배를 불리게 하는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를. 오랜 시간 아파하며 가셨는데, 주기적으로 찾아뵙던 내가 하필 찾아뵙지 못한 날에 돌아가신 거야. 분명 내 마음에는 가득한 아주 큰 사랑인데, 모든 게 후회로 남더라. ‘내가 시간을 더 쪼개서 한 번 더 보러 갔어야 했는데. 좀 더 많은 추억을 쌓을걸. 사진이라도 더 찍어둘걸’. 근데 있지, 내가 할머니와 사진을 한 500장 넘게 찍었어도 난 더 많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며 후회했을 거야. 사랑이란 게 원래 그런 건가 봐. 적당히의 기준은 원래부터 없는 거야. 내가 아무리 후회 없을 만큼 사랑하고 표현했다 해도 그보다 더 큰 후회가 자연히 생기는 거야. 그냥 모든 것이 다 후회로 남는 거야.


그러니 우리 아파는 하되, 좋은 추억은 좋게 남겨두고. 후회는 하되, 더 큰 후회를 만들지는 말자. 그 무렵의 너는 후회 없는 사랑을 했으니, 잘했다고. 나 역시 할머니와 사진을 몇 장이라도 찍어둔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 이 때라도 찍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종종해. 그 무렵의 나는 후회 없는 사랑을 했던 거야. 비록 너와 나의 사랑의 종류는 달라도, 사랑은 사랑이니까. 이 모든 것은 다 사랑이잖니. 그 무렵의 너는 후회 없는 사랑을 했을 테니, 지난 후회보다 추억을 정리해보는 게 어떨까.


추억을 정리한다는 것이 추억을 마냥 지워버리고 잊으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말 그대로 정리를 해 보는 거야. 한데 모아 분류해보는 거지. 좋은 추억은 남겨두고, 지저분한 안 좋은 추억은 날려버리는 거지. 좋은 추억은 간직해두어도 좋다고 생각해. 그 시절 행복했던 나의 모습이 남아 있고,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일부니까.


친구야, 나는 사랑은 늘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했어. 언제나 잃을 그 무엇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고. 실은 참 무서운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이 무서운 것을 시작한 건 우리 자신이니까. 대가 없이 아파하지 않기를 바라고,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슬퍼하기만 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 마음껏 아파하되, 그 아픔에 빠져 살지는 말 것. 사랑은 무서운 것이니 처음부터 시작할 때 미리 이 아픔도 감수할 것. 지난 나의 모습을 모두 부정하지 말 것. 더 큰 후회를 만들어내지 말 것. 내가 너에게 해주고픈 말은 이것들이야.


너의 행복은 이뿐만이 아니니까. 너의 주위에는, 너의 하루에는 수많은 행복이 존재하니까. 그 행복을 누릴 수 있게 조금만 아파하고, 우물 밖의 개구리가 되어 더 큰 너의 세상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감정이라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고,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너의 아픔이 길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야. ‘다 잊어라. 그 xx 나쁜 x이네’ 같은 말로 너를 위로해줄 수 없는 나라서 미안하기도 하지만, 내 진심이 너에게 조금의 힘이라도 실어 주었기를. 오늘 밤 잠이 오지 않는다면 연락을 해 줄래? 내가 해 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은 끝난 것 같으니 이젠 들어줄게. 나 들어주는 건 자신 있거든. 너의 마음에 안정이 오고, 여유가 생기는 그 날까지. 더 성숙해져 있을 너의 모습을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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