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혐 비둘기

by 갱구리

신림으로 이사와서 제일 인상적이었던건 다름 아닌 비둘기이다.

서초에 살때도 비둘기야 뭐 흔하게 보고 지나다녔고, 횡단보도 건너는 인간들을 신호등 꼭대기에서 위엄있게 내려다보고 앉아있던 시꺼멓고 등치 큰 까마귀도 보았고, 가끔은 저만치 길위에 통통통~ 아주 귀엽게 뛰댕기던 까치도 흔히 보았더랬다. 그리고 지나는 화단 나무숲에 한가득 숨어 앉아 짹짹거리다 오로로~ 땅으로 쏟아지던 참새들도, 근처 우면산에서 날아왔을게 분명한 멧(산)비둘기도 전깃줄 위에 앉아 구구국구구국~ 하며 울고 앉았는걸 일상으로 보아왔다.


신림에도 역시 까마귀, 까치, 비둘기 다 있다.

그 중에서도 비둘기는 많~~이 보인다. 엄청 가까이에서 많~~이 보인다. 늘상 상주하는 건물 난간에서 봄이 되면 매우 시끄럽게 짝짓기를 하거나 울어대거나 퍼드덕퍼드덕~~ 날갯짓 소리도 요란하고 끊임없이 똥을 싸댄다. 건너편 건물 에어컨 실외기는 그곳에 살림차린 비둘기 몇 쌍이 아주 똥으로 도배를 해놨다.



하루는 둘째가 지 방 창문을 열었는데 창 난간에 이미 떡하니 앉아있던 비둘기와 눈이 마주쳤댄다. 푸드득~ 비둘기도 놀래서 날아가 버리고 평소 깜짝깜짝 잘도 놀래는 아들놈 역시 놀랜가슴을 한 손으로 부여잡고 나와서 엄마한테 하소연이다. 비둘기 때문에 도대체 못살겠다고...

"자주 좀 창문을 열어놓고 니가 거기 있음을 비둘기들한테 어필을 해라. 그렇게 꼭꼭 닫아만 놓으니 와서 평화롭게 앉았는 쉼터지 뭐야..." 했더니

"아... 시끄러워서 열어 놓을 수가 없다구요..."

하며 놀랜가슴에 더 짜증이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열심히 써치. 난간에 날아와 앉는 비둘기 퇴치용 뾰족뾰족 가시같은 것을 사서 붙였다.

그것을 아들과 둘이서 낑낑대며 창가에 붙이는 동안도 건너편 건물 옥상 난간에서 비둘기 몇 놈이 요로~~고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날 버스를 탄다고 정류장에 섰는데 서 있는 사람들 사이 땅바닥에 비둘기가 한 마리 보였다.

'엥? 쟨 뭐지? ...' 내려다봤더니 녀석도 훽~ 나를 올려쳐다보는데 눈동자가 빨갛다.

순간 소름이 쫙 끼치고 무섭기까지 했다. 목덜미에서 부터 뒷통수를 거쳐 이마까지 역으로 쓸어올린듯 머리깃털은 삐죽삐죽 마구 흐트러져 있고 지저분~한것이 밤새 인근 술집에서 거하게 마신 취객같은 몰골이었다. 눈까지 빨개선 정류장에 섰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사람 무서워도 않고 "왜?.. 뭐?..." 아주 불량스러운 눈빛으로 훠이~ 쫓기라도 하면 콕!!하고 쪼아댈 기세다.


순간 지난 밤 술독에 빠졌던 어떤 인간이 그 비둘기로 변해버렸나보다... 그래서 지금 어이없고 화가 나는데 날아가는 법은 모르겠고 집에는 가야겠기에 저러고 사람들 틈에 섞여 정류장에 섰나... 싶은 뻘생각이 들었다. 이내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오는 바람에... 상상은 그쯤하고 버스에 올랐지만 말이다.


또 언젠가는 어떤 인간이 해물찜을 시켜 먹고 남은 음식물 그대로 젓가락까지 딱 꽂아서 우리 집 앞에 그릇째 내놓았었는데 근처 사는 비둘기들 파티가 열려버렸다. 차들이 지나가야 할 골목길에 비둘기들이 우루루 모여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먹어대느라 차가 가까이 와서 빵빵대도 도망갈 생각도 없이 무아지경이었던 것도 보았었다.



'지들도 다 먹고 살아가야 하니 그런것이지... 본능따라 사랑도 하고 번식하는게 걔들 잘못은 아니잖아... 함께 살아야지...' 싶어도 비둘기는 이제 극혐이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 사이사이 난간마다 걸터 앉아 구구대고 짝짓기하고 똥싸고 퍼드덕~ 거리는 꼴을 더이상 이쁘게 봐줄수가 없다. 다닥다닥 붙은 그 건물 한 곳에 내가, 내 가족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새'로 봐주기엔 쟤네들은 너무 도시에 적응해 버렸고 그래서 너무 가까이에 있고 그래서 왕 민폐다.

비교적 가끔 보이는 까마귀나 까치는 아직 반갑고 신기하고 이쁜것 보면 사람이나 새나 너무 가까이서 볼꺼 못 볼꺼 다 보고 살면 서로 싫어지기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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