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호 방구석은둔남

극혐주의

by 갱구리

502호 세입자가 야반도주를 했다.

보증금을 제하고도 모자란 밀린 월세미납된 가스료와 전기세는 일단 내버려 두고라도.

그가 살다 나간 방 안을 들여다본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뉴스에서나 한두 번 봤었던 남의 일이, 남의 일이라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했던 그 일이 바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게 현실일리 없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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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세가 한 두 달 밀리기 시작한 것은 연장계약을 하고 다시 1년쯤 더 살기로 한 이후이다. 혹시 사는데 바빠 월세 내는 걸 잊었나 싶어 일단 메시지를 보냈다. 답이 없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사정이 어려운가 보다... 남편도 나도 독하지 못해 더 이상 독촉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시간이 흘러버렸다. 시간적 여유를 좀 주며 기다려 보자 했던 것이 문제였나... 이쯤 해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시간들이 후회가 되었다. 이후 다시금 문자를 하고 전화를 해도 도통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밀린 월세는 그대로 차곡차곡 쌓여 목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우편함에는 찾아가지 않은 각종 고지서들이 빽빽했고 요금을 미납하고 있다는 독촉 문자도 가끔씩 우리에게 날아왔다.


그 와중 밤. 낮 상관없이 몸을 창밖으로 내밀고서 담배를 피우고 이따금씩 가래도 거하게 뱉어가며 큰 소리로 통화를 하곤 했다. 지독한 담배냄새와 욕설이 잔뜩 섞인 개인적인 그의 통화내용, 듣기 심히 거북한 가래 뱉는 소리...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듣고 싶지 않아도 계속 들어야 했다. 덕분에 창문도 맘대로 열어놓지 못했다. 맘 같아선 그가 내뱉는 저급한 욕설을 다시 그에게 되돌려 다다다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욕하는 기세가 너무 사나워 아뭇소리도 못하고 쾅! 하고 소리 나게 창문을 닫는 것이 고작이었다. 다른 세입자들의 민원 역시 빗발쳤다. 502호 때문에 힘들어 못 살겠다고.


주의와 경고문자를 하고 그래도 소용이 없어 통화를 시도했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참다 참다 하루는 남편이 작정을 하고 문 앞에 가서 두들겼다. 한 20분쯤 두들기고 서 있자 문자가 왔다. 문자에 답을 할 테니 두들기지 마시라고. 물러나 문자를 다시 했다.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에 대한 자각이 있는지와 밀린 월세와 가스료 전기세 등을 인지하고 있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곧 내겠단다. 들어 올 돈이 아직 안 들어와서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고 우리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이 났다. 답도 없는 문자와 받지 않는 전화를 하고 이따금 그의 방문을 줄기차게 두드려 보는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참다 참다 계약서에 적힌 비상연락망, 그 부모의 연락처로 연락을 했다. 그 부모 역시 전화를 받지도 문자에 대한 답도 하지 않았다.


점잖게 보내던 메시지에 점점 감정이 실렸다. 그리고 강력한 문구로 통보를 했다.... 더 이상은 당신과 계약을 유지하고 싶지 않으니 이번 해 계약만료일에는 반드시 방을 빼주셔야겠다... 고. 그런 문자를 보내면서도 사실 걱정은 되었다. 저렇게 방구석에 들어앉아 월세도 세금도 계속 밀리면서 방을 안 빼주면 어떡하나. 밀린 월세보다 저 방에서 영영 나가지 않을까 봐 고민스러웠다.


계약만료일이 되었고 오전 11시쯤에 이사를 하겠다 했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전화를 해도 또 받질 않아 내려가서 문을 두들겼다. 30분쯤 두들겼더니 문자가 왔다. 왜 그러 시냔다.....................................;;;;

이사업체가 시간을 바꿔서 오전이 아니라 밤 11시에 이사를 하겠단다. 자기도 어쩔 수가 없단다. 어이가 없고 화가 났지만 또 참았다. 그래 밤 11시. 그때까지만 참겠다. (참지 않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알 수없었지만) 여하튼 계약만료일. 당일까지는 참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밤 11시.

약속한 시간이 또 넘었지만 이사를 하기 위한 기척은 역시 들리지 않았다. 방으로 찾아갔다. 우리에게 단 한 번도 열어주지 않았던 방문이 아주 조금 열려있었다.

문을 열고 마주한 방은 저런 상황이었고.............................................................. 세입자는 보이지 않았다.


CCTV를 돌려 보았다. 밤 11시가 되기 바로 몇 분 전 택시를 불러 타고 급하게 떠나는 모습이 찍혔다. 검은 옷보따리 하나와 노트북만 챙겨서.

황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했다. 이번엔 아예 전원도 꺼져 있었다. 시간은 밤 12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뭘 어째야 할지 우왕좌왕. 처음 겪어보는 일에 남편도 나도 멘붕이었다.

그 부모에게까지 다시 연락을 했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받지 못한 밀린 월세와 세금보다도 지금 저 방구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그 걱정이 더 크게 몰려왔다. 도저히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사진을 찍어 그 부모에게 전송하고 당신네 아들이 이렇게 해놓고 도망을 갔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곤 특수청소업체를 그 밤에 써치 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청소업체 두어 곳에 견적을 받고 한 곳을 선정 청소를 맡겼다. 업체가 출동하여 저 엄청난 쓰레기를 치우고 빈 방이 되자 파손되고 복구하기 힘든 부분들이 여기저기 발견되었다. 몰딩과 벽지를 비롯 방 안 전체에 곰팡이가 잔뜩 내려앉았고 이 한겨울에 시꺼먼 날파리와 작은 거미가 어디선가 자꾸만 나타났다. 굳이 저 험한 사진을 첨부한 이유는 이후의 청소와 복구 작업을 일일이 열거하기 싫어서이다. 분명한 감정은 그 방에 들어가 여기저기 청소하는 동안 단 1초도 예외 없이 도망간 그놈을 잡아다가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분명 그는 정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뭔가 문제가 있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해놓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시간이 지나고 방이 정리되어 가면서 분노도 조금 가라앉기 시작하자 그래도 만료일에 약속대로 방에서 나가주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 그대로 계속 눌러앉아 있었다면... 어떻게 감당했을 거였겠나. 그리고 비록 야반도주는 했지만 (비번을 가르쳐 주지 않은 대신) 문이라도 그렇게 열어놓고 갔단 사실이... 어쩐지 영 나쁜 놈은 아니구나... 싶기까지 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신기하게도 그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신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시며 우셨다. 아들이 그렇게까지 해놓고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며 일이 바빠 도통 신경을 못 쓰고 1년을 방치했더니 그 지경이 되었다며. 자신과도 지금 연락이 닿지 않아 애가 타는 중이시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 엄마의 울음과 절절한 사과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자식 키우는 같은 부모입장에 진심 어린 사과를 받자 이미 맘이 많이 녹았고 거기다 밀린 월세와 세금 그리고 쓰레기 처리 비용까지 전부 입금을 해 주셨다. 영영 못 받을 돈이라고 생각했다가 받게 되니 감사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여하튼 502호는 다시 깔끔하게 청소하고 도배도 하여 이제 새로운 세입자를 맞을 준비를 마쳤다. 앞으로 웬만해선 놀랍지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제발 좀 깨끗하게 살다 나갈 세입자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그런 걸 꿰뚫어 볼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정말이지 좀 갖고 싶은데... 그런 건 관상으론 알 수가 없는 거겠지? 504호 여신을 겪고도 관상타령...?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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