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각방을 쓴 지 2년쯤 되어간다.
각방을 쓰게 된 이유에는 나의 갱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과 이제 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남편의 코골이가 주된 이유이다. 남편의 코골이는 그 역사도 유구하며 데시벨 또한 거의 폭력에 가깝다. 결혼해서부터 각방 이전까지 한 방에서 자는 동안 나는 정말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더랬다. (낮동안은 멀쩡했던 사람이 밤에 잠만 들면 포효하는 짐승으로 변한다. 아!! 정확히 낮, 밤을 따질게 아니라 깨어있을 때와 잠에 들었을 때로 나눠야 정확하겠다. 남편의 코골이는 낮, 밤을 가리지 않으니 말이다) 코를 곤다는 남편을 가진 친구들 얘길 들어보면 발로 차 침대에서 떨어뜨렸다거나, 코 고는 그 면상에 치솟은 짜증게이지만큼 베개로 펑펑 내리쳤다거나, 아예 방 밖으로 베개 들려 내쫓았다거나 하는 '진짜??... 그렇게까지??' 싶은 응징스토리들이 있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너네 남편들이 아무리 코를 곤다 해도 우리 집 코골이대마왕만큼은 아닐껄??' 자신(!!)했다.
우리 집 코골이 대마왕은 코를 골아도 꼭 내쪽으로 향해 코를 골았는데 나는 그런 그의 머리통을 반대편으로 살며시 돌려놓는 게 응징의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천둥같이 코를 골며 분명 아주아주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은데도 조심스러운 그 움직임 하나에 번쩍 잠에서 깨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거실 소파에 나가 쪽잠을 자거나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고 귀를 막거나 그렇게 몸부림쳐도 잠에 들지 못할 땐 잠을 포기하고 일어나 앉아 어느새 또 내 쪽으로 돌아온 그의 머리통을 노려보며 너무했다 싶었던 친구들의 응징스토리가 외려 애교로 느껴질 만큼 머릿속에서는 온갖 폭력적 상상들을 하며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렇게... 이해하려다 짜증 나고 화가 나고 미워지고... 견디고 견디다 어느새 적응도 얼마쯤 해가며 꼬박 22년을 한 방에서 잤다.
그러나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이전보다 많이 예민해졌고 (남편의 엄청난 코골이는 둘째 치고라도) 각자 잠드는 시간과 좋아하는 방 안 온도 등 작고 사소한 것부터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려고 누운 잠자리에 미묘하게 짜증지수가 높아졌고 감정도 상했으며 수면의 질도 크게 떨어져 있던 차. 큰 아이가 독립 아닌 독립을 하게 되어 방이 하나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끼리 각 방을 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남편의 코골이가 정말 살인적이었던 어느 밤. 어둠 속에 짜증만땅으로 일어나 앉아 그야말로 그 순간 세상 징글징글한 웬쑤 같던 남편을 또 조용히 노려보다가 아들의 빈 방이 퍼뜩 생각났다. 조용히 베개를 들고 일어나 건너 간 아들 방에서 정말이지 세상 편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 밤이 시작이었다.
그 뒤로 나는 시끄럽고 불편한 그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며칠 뒤 비어있는 아들의 방을 온전한 나만의 공간으로 꾸며버렸다. 조용하고 오붓하고 아늑한, 나만의 물건들로 가득 찬 나의 공간에서 전에 없이 나는 자유로웠다. "그만 자자, 불을 좀 꺼달라, 춥다, 덥다..." 나와 자는 시간대도, 좋아하는 방 안의 온도도 다른 그에게 신경질 낼 필요도 없고 천둥 같은 코골이 소리에 놀래 깨는 일도 없었으며 책을 읽고 싶으면 책을 읽고 일어나 글을 쓰고 싶으면 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기도 했다. 물론, 그 자유함을 나만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얼마동안 남편은 떨어져 자는 마누라를 이해하지 못했고 애정이 식었네 어쩌네 투덜거렸다. 그러나 며칠 지나 보니 이제 알게 된 것이다. 남편 역시 자고 싶을 때 자고 춥다 덥다 변덕 심한 마누라 장단에 인내심 발휘할 일도 없어졌으니 둘이 뭐 꾸역꾸역 꼭 붙어 자야 할 이유는 없겠다 싶어 진 것이지... 불평은 곧 없어졌다.
각 방을 쓰며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각자의 방에서 문을 열고 나와 잘 잤냐는 인사를 반갑게 하게 되었다. 거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잘 시간이 되면 또 각자의 방으로 헤어지며 잘 자란 인사도 진심 담아 주고받는다.
눈치 볼 사람 없이 내 시간을 만끽하고 신경 쓰거나 방해받는 것 없이 잠을 잘 수가 있어지자 컨디션도 좋아지고 이전보다 서로가 더 사랑스러워졌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는 더 이상 그와 함께 한 공간에서 잠을 잘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제는 그의 코골이가 아니라 소변이 마려워 한 번씩 꼭 깨곤 하는 새벽. 화장실 오가다 듣는 그의 코골이는 새삼 놀랍다. 저 소리를 듣고도 함께 잠이 들었던 과거의 내가 믿기지 않았다. 놀라운 그 소리를 뒤로 하고 조용하고 아늑한 내 방으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며 매일 새벽 잠결에도 어김없이 감사가 절로 넘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