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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Apr 16. 2024

거북이처럼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또렷한 눈빛으로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_유가영,  <응시>_김휘훈





<응시>_김휘훈, 필무렵


칠흑과도 같은 어두운 바닷속을 비추는 빛이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영혼들을 이끌기 위해 찾아온 바다 거북이의 눈이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다. 오히려 결연에 찬, 형형한 눈빛이다. 이는 지상에서 이들을 목격하는 사람들의 눈빛과 대조된다.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_유가영, 도서출판 다른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글을 본 적 있다. 트라우마도 장애의 일종이다. 세월호 생존학생이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이 글에서 우리는 수많은 재난을 겪은 이들을 떠올릴 수 있다. 군사독재시절 국가폭력 피해자, 씨랜드 참사의 유가족, 동해 산불 피해자, 가장 가까이로는 이태원 참사의 유족들까지. 여전히 국가 행정력의 배려 없이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역경을 극복해야 한다고도, 다 잊고 가슴에 묻으라고도 말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묵묵히 그들의 곁에 함께 서 있어 주는 것, 그뿐일 테다.



<응시>+<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호주 크라이스트처치의 주민들이 대지진을 겪었음도 불구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 지역에 지진이 흔하게 일어나서여도 있지만 재난 이후 그 지역의 건물을 모두 내진설계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슬픈 일이었으므로 덮어놓고 외면하는 것보다는 계속해서 상기시켜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이 모두에게 이롭다는 반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가 참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또 재발방지를 위해 어떤 대책과 방안을 세우는지 꾸준하게 지켜볼 바다거북의 형형한 눈빛이 필요하다. 그래야 <응시>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미래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으리라. 우리가 느리지만 꾸준하고, 또렷한 눈빛을 가진 거북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결국 사람들에게는 어떤 재난이 닥쳐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힘이 있다는 것을요."p.111,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만약 거북이가 본다면 코웃음 치면서 저를 밟고 갈지도 모르죠. 취업을 하지도 못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직한 사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어 주지도 못했고, 여전히 우울증 약을 먹고 있거든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느리지만 분명히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어요. 제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요."p.150,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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