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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Apr 18. 2024

나의 창조자는 어디에서 왔는가?

<종의 기원담>_김보영, 아작





검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혹독한 추위로 유기체가 사라진 세상에 살아남은 것은 로봇종이 유일하다. 주인공 케이 히스티온은 유기생물학과 창조론적 세계관에 관심이 많은 로봇으로 자신과 닮은 유기생물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자신의 기원을 궁금해하는 것은 지적 생명체의 본능에 가까운 것으로 작품 속에서 진화를 거듭한 로봇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하여 로봇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인간의 이야기기도 한 이 작품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영혼이 존재치 않는 로봇의 설정에서 멈추지 않고 독립된 한 종으로서 자아와 의지를 가진 로봇을 묘사함으로써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존중과 경의를 표한다. 생명체의 한살이와 같이 유기적인 순환구조를 띈 이 작품은 총 3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며 작가가 스무 살에 1편 집필을 시작해 3편을 마흔 여덟에 완성했다고 한다.


단세포 유기체에서 인간까지의 진화과정을 분량상 점프한 부분이나 로봇의 문자체계 등 좀 더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매우 잘 쓴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런 좋은 SF를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작가가 썼다는 게 독자로서 자랑스럽다!


"후광이 걷히자 모든 것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이기만 했던 몸에 덕지덕지 묻은 지저분함이며, 부족한 식량과 물에서 오는 지릿한 냄새며, 얼굴과 손에 돋아난 무수한 염증이며,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내야만 하는 운명도. 그래도 빛나도록 살아 있는 눈을.

살아 있다. 나무나 풀과 똑같이. 로봇과 똑같이. 살아 있으므로 로봇과 같은 자격이 있다. 살고자 최선을 다할 자격이. 비록 이 생명 전체가 무가치하고,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다 해도."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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