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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Apr 23. 2024

제주 4.3의 백비에 뭐라고 새겨야 할까?

<빗창>_김홍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창비






제주 4.3을 알아보면 그 기원이 제주해녀항일운동에 다다른다. 1920년 바깥물질을 하는 해녀들을 보호하고 채취한 해산물을 공동판매하기 위해 설립된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이 일본인 제주도사로 인해 그 취지가 무색하게 수탈정책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해녀항일운동이 시작된다. 그녀들은 물질작업에 사용하는 호미와 빗창을 들고 시위했는데 이들을 주도적으로 이끈 이들이 야학의 교사들에게 교육을 받았기에 단순한 생존권 투쟁을 넘어선 항일민족운동으로 평가된다.


제주도민은 이렇게 일본의 압제에 저항하여 해방을 기꺼이 맞이하였으나 미군정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정하고 과거 총독부의 조직과 행정관리를 그대로 인계받아 통치에 활용했으므로 이때 이를 이용한 친일파의 신분세탁이 거하게 이루어지면서 그들의 횡포는 계속되었으므로, 해방이나 해방이 아닌 기묘한 상황이 지속된다.


47년 3월 1일에 열린 삼일절기념행사에서 경찰에 의해 민간인이 죽고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으나 사과도 그 어떤 후속 조치도 없음에 분개한 제주도민은 민,관 총파업을 벌이는데 이때 제주 전체 직장의 95%가 참여했다고 하니 그들의 분노와 단결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가능하다. 당시 미군정은 하루빨리 남한단독선거를 치러 친미단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말을 안 듣는 반항아 같았던 제주가 눈엣가시가 되었다.


48년 4월 3일, 미군정은 제주도민을 반동분자, 즉 빨갱이로 보아 학살하라는 명령을 군에 내리지만 그에 불복한 14 연대 군인들이 탄압에 앞장섰던 경찰과 서북청년단체를 공격하며 무장봉기가 일어난다. 같은 해 5월에 이루어진 남한단독선거에 제주도민은 '참여하지 않음'으로 저항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그 선거로 당선된 이승만 대통령의 '초토화 작전'이었다. 무려 7년 동안의,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학살작전이 개시된 것이다.


제주 평화기념관의 상설전시실에는 백비(글씨가 새겨져 있지 않은 비석)가 있다고 한다. 긴 세월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언제쯤 백비에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비문을 새길 수 있을까? 작가는 항일해녀운동과 4.3을 연결시킨 이야기로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역사를 드러내어 보이며 이유 없이 잔혹하게 희생된 이들과 언제 또 빨갱이로 몰려 죽음 당할지 몰라 숨죽여 살아온 생존자들을 동시에 위로한다. 대통령이 4.3 추모식에 연이어 불참하고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는 영화가 상영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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