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수리 보고서>_김금희, 창비
"산아는 왜 옛날이야기들은 이렇게 슬프게 끝나는지 모르겠다고, 역사책 읽을 때마다 해피엔드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너무 옳은 말이라서 또다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역사가 슬픈 건 죽은 이들 때문일 수도 있고, 늘 미완으로 남는 소망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p.267
영두는 어느 날 대온실의 수리를 맡은 건축 사무소에서 수리과정 보고서 작성 작업을 제의 받는다. 그녀는 창경궁 근처 하숙집에서 중학교 시절 하숙하였으나 그곳에서 받은 깊은 상처로 다시 석모도로 귀환한 경험이 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서울로 돌아간다는 것은 통째로 지웠던 그 시절의 기억을 다시 소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가 대온실의 수리 과정을 쫒으며 그녀의 기억을 재생시키면서 그 공간을 스쳐 지나간 많은 인물들의 서사도 동시에 재생된다. "세상 어딘가에 지금이 아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p.403이라는 대사를 증명하듯 여러 층의 이야기들이 매끄럽게 진행되며 말미에 하나로 모아지는 것에서 작가의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역사 속 한 공간에 감추어진 개인의 이야기들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과 문장들로 엮은 것도 좋다.
다만 해방 후 잔류 일본인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남은 문자 할머니보다 친일부역자의 손에 희생된 양부의 사정이나 마리코가 신뢰한 조선인 식모 두자의 이야기가 좀 더 궁금해지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어서 그런 것인지. 문자할머니가 좋은 개인이라는 것은 알겠으나 역사적 의식이 있는 인물로 그려지지는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때는 근대의 가장 화려한 건축물로,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대중적 야앵의 배경지로, 역사 청산의 대상으로 여러 번 의의를 달리 한 끝에 잔존한 창경궁 대온실은 어쩌면 '생존자'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건축물과 함께 그 시절 존재들이 모두 정당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에게도 이해되기를."p.410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