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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만으로 충분한가

<작은 땅의 야수들>_김주혜, 다산책방

by 피킨무무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p.603


2024 톨스토이문학상 수상작이며 한국계 미국작가가 영어로 집필한 작품이다. 1918년부터 64년까지를 배경으로 하여 굴곡진 한국사를 살아가는 여러 인물의 일대기라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작가가 한국어 버전도 집필했나 싶어 깜짝 놀랐는데 역시, 번역가가 따로 있었다. 어쩐지 한국어가 너무 수려하고 매끄럽더라. 문장은 잘 읽히고 페이지 터너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흡인력도 있다.


헌데 결말까지 읽고 고개를 갸웃한 독자가 나뿐만은 아니지 않을까.(햡, 나뿐만이면 어떡하지?) 역사소설이라 하기엔 개인의 연애와 사랑에 치중되어 있고, 여성 캐릭터는 기생이라는 조선의 계급에서 일제치하의 모던걸까지로의 변화과정만을 거칠 뿐, 역사의식은 부재하다. 특히 초반부 1세대 은실과 단이 캐릭터가 신분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독립을 지원하는 대의를 보여줬던 반면에 메인 캐릭터라 할 수 있는 2세대 캐릭터들은 그저 그 험한 시대를 살아남았을 뿐이다. 생존 역시 중요한 가치임은 틀림없으나, 정말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라는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다.


또한 이야기에 비해 제목을 너무 잘 뽑은 느낌인데(허허) 이게 약간, 한국 바깥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정체성, 뿌리찾기의 느낌도 있어서 인 듯하다. 고로 재외한인 2, 3세대가 열광할 만한 이야기 일지는 모르나, 대한민국에서 삶을 영위하는 일상적인 한국인들에게는 글쎄, 잘 먹히려나. 역사의식이 부재한 메인 캐릭터와 비슷한 역사적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최근에 읽은 <대온실 수리 보고서>도 생각나게 하는데 아마 두 작품에 불호를 표한 독자들은 이런 이유로 비슷한 감상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민감한 역사적 시기를 배경으로 두었으나 시대정신과 개인 간의 치열한 충돌, 그로 인한 세계관의 확장이 없는 그저 삶에 대한 긍정은 공허한 자기 위로에 불과하지 않나.


그래서 정말 잘 읽히는 이야기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러브스토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애매한 느낌이다. 연애와 사랑만이 삶을 충만하게 하는가, 실로 생존만으로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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