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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우주 속에 단 한 사람만을

<단 한 사람>_최진영, 한겨레출판

by 피킨무무








태초에 나무가 있었다. 영겁과도 같은 세월을 모질고 거친 자연에서 살아남은 나무는 어느 한순간 인류라는 영장류에 의해 파괴당한다. 한 사람이 탄생하여 죽음에 이르는 시간은 이토록 긴 우주의 시간 속에 한 점으로 표시될 것이다. 그 시작과 끝을 알아볼 수 없이 뭉개진 한 점. 즉 탄생은 죽음이요, 죽음이 곧 탄생이다. 생명이란 본디 그렇게 하찮고 가볍다가도 바로 그렇기에 소중하고 무겁다.

잠이 들면 당신은 수많은 죽음을 간접경험 할 수 있다. 다양한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들의 죽음, 교통사고로 인한 대량 사망, 살인, 방화, 폭력으로 말미암은 죽음, 자살로 인한 수많은 죽음까지. 인류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그 셀 수 없는 죽음 중에 당신은 절대자의 지시에 따른 단 한 사람만을 살릴 수 있다. 그것은 능력일까, 저주일까?

누군가는 그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하고,
누군가는 저 많은 이 중에 겨우라 했으며,
누군가는 단 한 사람일지언정 그 자체로 완전하다 한다.
당신은 무어라 할 것인가?

"수학의 난제 같아요. 전문가들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것에 열광하잖아요. 그거 아세요? 모든 과학에는 수학식이 있는데 비행기가 나는 원리 중에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방정식이 있대요.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이라고, 3차원에서도 해가 항상 존재하는지를 아직 증명하지 못했대요. 그러니까... 답이 없어도 비행기는 나는 거죠.
목화는 남자의 말을 되풀이했다.
답이 없어도 비행기는 나는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가 말했다.
이유를 몰라도 좋은 건 좋은 거고.
목화가 말을 이었다.
왜 사는지 몰라도 계속 사는 것과 비슷하네요."p.117

"금화는 말했다. 너를 돕지는 못하지만 지켜주겠다고. 그 말을 수백 번 곱씹으며 목화는 희망과 가능성을 찾으려고 했다. 미로에 이정표를 세우고 싶었다. 금화 언니는 진실을 말했다. 여기 없는 사람이 나를 도울 수는 없다. 그러나 지켜줄 수 있다. 그 믿음은 내 안에 있다."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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