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라바스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

<영혼의 집>_이사벨 아옌데, 민음사

by 피킨무무







라틴문학 대표작 연달아 읽기, 그 후속 작품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작가라는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이다.


작품의 초입부에서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과 상당히 유사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두 작품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공통된 특징은 아마도 두 작품 모두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주술적 믿음과 예언 같은 마술적 요소를 실제 역사적 사건과 버무려 문학작품으로 잘 빚어낸 것에 기인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한 집안의 몇 대에 걸친 흥망성쇠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술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두 작품의 성향은 차이를 보인다.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이 남성 서사라면 아옌데의 이 작품은 철저히 여성 서사라고 할 수 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1인칭 화자이자 주인공 롤을 맡고 있는 캐릭터는 남성인 에스테반 트루에바이지만 그의 역할은 이후 등장하는 여성캐릭터들에게 주어진 재해라는 면이 더 부각되는 듯 하다. 모진 악연과 고통의 첫 시작이자 끝맺음이랄까.


최초의 페미니스트 니베아, 마법적 힘을 지닌 클라라, 어쩌다 보니 계급주의를 타파하고 소작농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 블랑카, 역시 급진 혁명주의자와 연애하는 알바까지 모든 서사는 4대에 걸친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고통스러운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매우 위트가 넘치기에 이야기적 재미가 굉장하다. 어찌 보면 페미니즘보다 계급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단지 계급의 최하층에 여성이 있을 뿐.


미래를 예언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클라라는 자신의 인생에 일어난 일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그녀의 노트는 그녀의 개인적 기록이자 당대의 정치상황, 사회적 분위기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 알바의 기록물로 전환되는데, 정치적 문제와 원한으로 인해 혹독한 고문과 강간을 당한 그녀의 기록물은 <백 년의 고독>과 차별성을 잘 드러내주는 장치다. 다시 말해 마술적 설정을 강조하여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냈던 '마술적' 리얼리즘의 <백 년의 고독>에 비해 마술적 '리얼리즘'에서 리얼리즘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차별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고로 <백 년의 고독>의 마지막은 예언의 완성으로 마술적 세계가 닫히고 <영혼의 집>의 마지막은 기록의 시작으로 현실적 세계가 열린다.


뱃속의 아이를 딸이라 확신하는 알바에게 있어 외할머니 클라라의 기록은 여성이자 한 개인으로서의 트라우마 치료의 시작점이 된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알바의 기록은 이에서 더 나아가 군사 쿠데타로 인한 칠레의 상처와 고통의 역사를 위로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첫걸음으로 확장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므로 오라, 바라바스여,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로.




"클라라는 나이도 어리고 세상 물정에도 어두웠지만 그 상황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클라라는 모피 코트에 스웨이드 부츠를 신고 억압과 평등, 권리에 대해 설교하는 엄마와 엄마 친구들과 투박한 면 앞치마를 두르고 손은 동상에 걸려 시뻘겋게 된, 중노동에 시달리는 여직공들의 서글프고 체념한 듯한 표정이 그렇게 대조적일 수 없다고 자기 노트에다가 적었다."1권 p.147


"얘야, 교회는 우익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좌익이었다."1권 p.270


"내가 복수를 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처절한 복수의 연장이 되기 때문에, 이제는 복수받아 마땅한 사람들 모두에게 복수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내 임무는 살아남는 것이고, 내 사명은 두고두고 증오를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원고를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2권 p.327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악의에 이유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