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_김금희, 출판사 무제
"여름을 왜 식히넌 겨, 여름이 여름다워야 곡식도 익고 가을, 겨울이 넉넉해지지. 순리를 거스르믄 좋을 거 읎어. 털도 내리쓸어야 빛이 나는 겨."p.123
"근데 그렇게 심각할 필요 없어. 인생은 독고다이, 혼자 심으로 가는 거야. 닭알도 있잖여? 지가 깨서 나오면 병아리, 남이 깨서 나오면 후라이라고 했어."p.186
최애 영화배우, 박정민님(하트 뿅뿅)의 출판사에서 출간 된 세 번째 작품. 그의 책방 <책과 밤, 낮>이 문을 닫은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아예 출판사를 차려버리는 기개!
작가가 작가이니만큼 물 흐르듯이 진행되는 이야기, 개성이 돋보이는 캐릭터, 맛깔나는 대사로 음, 이것이 프로의 글이로군, 이라는게 느껴진다. 중간중간 신해철의 음악도시의 사연을 차용한 대사들로 인한 추억방울들은 덤이다.
가장 돋보이는 특징은 애초에 오디오북을 목표로 집필되었기에 대본집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 손열매의 직업도 성우인지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눈으로 읽기보다 소리 내어 목소리 연기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독서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우로서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찬스! 다가올 올 여름을 읽고, 듣고, 맛보고, 즐기고 싶다면 완주하라.
마지막으로 신해철님이 음악도시 막방에서 읽었던 마지막 편지를 인용해 볼까 한다. 결국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신해철님의 목소리로 플레이 온.
"(...) 우리가 왜 사는가 하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자아실현, 이런 거창한 얘기 말고 그냥 단순무식하게 얘기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찾고 있는 행복은 남들이 우와, 하고 바라보는 그런, 빛나는 장미 한 송이가 딱 있어서가 아니라 수북하게 모여있는 안개꽃다발 같아서 우리 생활 주변에서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조그만 한 송이, 한 송이를 소중하게 관찰하고 주워 모아서 꽃다발을 만들었을 때야 그 실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도시에서, 우리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있죠, 인생은 경쟁이다, 남을 밟고 기어 올라가라, 반칙을 써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딴 놈들은 멀거니 쳐다 볼 수밖에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반납하라, 인생은 잘 나가는 게 장땡이고 자기가 만족하는 정도보다는 남들이 부러워해야 성공이다, 이런 논리들이요.
우리는 분명히 그것을 거절했었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고 현실적으론 아무런 힘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랑 같은 사람들이 있다,라는 걸 확인한 이상 언젠가는 경쟁, 지배 이런 게 아니라 남들에 대한 배려,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감, 이런 걸로 가득한 도시가 분명히 현실로 나타날 거라 믿어요.
잘 나가서, 돈이 많아서,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거.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대통령도, 재벌도 우리랑 비교할 필요가 없을 거고요. 여러분들이 그 안개 꽃다발, 행복을 들고 있는 이상 누구도 여러분을 패배자라고 부르지 못할 겁니다." 1997년 9월 30일 <신해철의 FM 음악도시> 마지막 방송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