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작별하는 법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_리사 리드센, 북파머스

by 피킨무무








주인공 보는 늙어 스스로를 잘 돌보지 못하는 노인으로 여러 명의 요양보호사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의 아내는 치매로 인해 가족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로 요양원에 입원한지 오래고, 오랜 친구 투레 역시 보와 비슷한 생활을 하기에 전화로만 안부를 묻는 실정이다.


작품을 읽으며 크게 두 가지 갈래의 생각이 들었는데 첫째는 북유럽의 잘 갖추어진 복지체계에 대한 부러움이고 둘째로는 늙음과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숙명에 대한 고찰이다.


우선 상기 첫째 갈래를 이야기하자면, 보에게는 밤낮으로 그를 관찰하고 돕는 여러 명의 요양보호사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요양병원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최대한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다. 돌봄에 있어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려 한다는 것에서 작년에 읽은, 무라세 다카오의 <돌봄, 동기화, 자유 : 자유를 빼앗지 않는 돌봄이 가능할까>가 여러모로 생각나는 지점이다. 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계속하게 돕는 것을 돌봄의 최우선과제로 생각한다면 작품 속 돌봄은 이상에 가깝지 않을까.


또한 우리나라의 노인들이 죽음을 맞는 다수의 불행한 여건들과 비교해 본다면 보의 죽음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이런 점에서는 같은 북유럽 작가이면서 비슷한 분위기로 죽음을 다룬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이 떠오른다. 동일하게 생의 마지막을 다룬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대비해 이 두 북유럽 작품 속 죽음은 얼마나 고요한가.) 한국버전이라면 노인의 빈곤문제를 빼놓지 않고 다루었어야 했으리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저들의 복지체계가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이어서 둘째 갈래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신체의 작동이 나의 의지와 달리 자유롭지 않은 노쇠한 세계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들쑥날쑥한 기억의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노인의 단순한 일상을 VR 체험하듯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나이 듦은 상실의 연속이다. 기억을 잃고 능력을 잃고 자신을 잃는다. 당신이 늙은 부모님의 굼뜬 행동과 느린 반응에 한 번이라도 짜증이 인 적이 있는 자식의 입장이라면 필히 일독을 권한다.


사실 보는 겉으로 보기에는 퉁명스럽고 고집 센 늙은이다. 그는 반려견 식스텐과의 산책이 노인에게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둘을 떼어 놓으려는 아들 한스에게 큰 실망과 서운함을 느끼며 금식과 침묵으로 시위한다. 소위 꼰대(?) 세대로서 소통과 표현에 인색한 그이지만 절친 투레의 장례식을 치르고 삶의 여러 순간들을 되돌아보며, 인생이 저물 때 해야 할 말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죽는다. 이 단순한 명제 앞에 누구도 예외는 없다. 순간의 분노와 창피, 자존심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과 사랑을 전달하는 데에 저어했다면 이 명제를 기억하라.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우리는 제대로 작별해야 한다. 필히 비극으로 귀결될 인간의 운명 속에서 솔직한 사랑을 담은 작별인사만이 우리의 삶을 끝내 희극으로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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