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는 이미 내 안에 있다

<어디서도 상영되지 않는 영화>_요릭 홀데베이크, 시금치

by 피킨무무




사진은 기록하는 데에 있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우리는 그 기록을 통해 순간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책의 제목인 <어디에도 상영되지 않는 영화>란 우리의 기억을 의미한다. 하나의 기억을 명확하게 채우는 온도와 습도, 그리고 채도(feat. 이동진)까지 사진 한 장을 통해 소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이 시간 여행의 매개체로 사진을 선택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제 막 열세 살이 된 카토는 태어나면서 엄마를 잃었다.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자기 혐오감에 빠진 채로 어른의 도움을 구하지만 아빠는 이미 자신의 슬픔과 연민에 빠져 익사하기 직전의 상태고 은근슬쩍 엄마역할을 하려는 코르넬리아 아줌마에겐 침입자라고 칭할 만큼 반감이 심하다.


그녀에게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 들판"p.21처럼 세상에 비존재하며 겨우 원피스 한 벌과 사진 한 장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특이함을 들어 세상과의 고립을 자처하며 자신을 제외한 타인을 "어항 속 물고기"p.122로 치부한다. 그녀는 <취권> 같은 쿵후영화를 좋아하고 이소룡을 동경하지만(사실 열세 살 소녀치곤 꽤나 올드한 취향이다.) 이와 같은 취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렇듯 길을 잃은 그녀에게 이세계로부터 온 것만 같은 독특한 가이드가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메리포핀스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은 카노부인은 항상 시간에 쫓긴다. 그녀에겐 돌아가야 할 집이 세계 밖에 존재한다. 시간여행 속에서 다시 한번 시간여행을 하는 놀라운 기술을 가진 그녀는 카토에게 다른 할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대며 조수가 되어달라 도움을 요청했으나 사실 진짜 목표는 카토를 돕는 것이다. 결국 시간여행이란 과거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카노부인 버전 1.0과 2.0은 적재적소에 나타나 카토가 아빠를 이해하고 세상과 화해할 수 있는 길로 다가갈 수 있게 등을 떠밀어준다.


결국 이런 물밑작업들로 인하여 카토는 어린 시절의 아빠와 절친이 되고, 아빠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코르넬리아 아줌마의 슬픔을 이해하며, 엄마의 사랑을 깨닫는다. 마침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따지고 보면 그녀가 스스로 해 낸 것이다. "결국은 무언가를 잃는 것"p.247이 인생이라면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한 용기 또한 우리 안에 있다.


카노부인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적당한 시기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여행을 했을지, 실패를 받아들이는 의지를 상상해 본다. 사랑하는 헨드릭을 잃었을 때 그녀가 기억여행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강아지 헨드릭과 함께 늙어가며 시간여행과 인생의 마지막 장을 객관적으로, 동시에 의연히 받아들이는 대담한 용기를 떠올려 본다. 모든 것은 이미 그녀 안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어. 우리가 평생 호기심을 잃지 않고 똑똑하고 고집스럽게 살아간다면 말이야."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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